구운몽의 하렘은 어떻게 성립하였나: 딱 입시 게임이론 수준을 중심으로


오늘날의 오타쿠들에게야 “엥? 구운몽? 그거 완전 조선시대판 라노벨 아니냐?” 정도의 인상밖에 없을지 모르지만, 사실 <구운몽>은 17세기 치고는 꽤나 진보적인 작품이다. 이는 벡델 테스트로도 증명할 수 있다. 작품에 이름을 가진 여성이 주연급만 여덟 명이다. 이들은 남자 없이도 우정을 나누고, 서로를 존중하고, 문화와 예술에 대해 토론하고, 의자매까지 맺는다.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나오던 바로 그 17세기 작품인데도 말이다.

여덟 명의 여주인공들도 저마다 개성적이고 주체적이다.

지고는 못 사는 정경패는 양소유의 여장에 속자 분한 생각에 가춘운의 도움까지 받아 기어이 되갚아준다. 가춘운이 처음 양소유의 첩이 된 건 양소유가 좋아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아가씨 정경패와 함께하기 위해서였다. 진채봉은 선택받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구애해 마침내 양소유를 손에 넣고 만다. 이소화는 양소유를 사이에 둔 갈등도 자기들끼리 담판 짓고 사후에 일방적으로 통보해버린다. 상여자도 이런 상여자들이 없다.

물론 그 해결방식이 결국 일부다처(정확하게는 무려 2처6첩)라는 것은 분명히 <구운몽>의 구시대성이다.

시대적 한계라고 해도 좋고, 저자 김만중의 남성작가로서의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해도 좋다. 놀랍게도 김만중 본인도 일부다처제의 불합리함을 아는 듯한 서술을 남기고 있다. 작중 황태후는 이소화에게 “(양소유가)너와 혼인을 하고 정 씨 여자를 첩으로 맞아들이게 하면… 네가 원하지 않을까 하노라.” 하고 염려한다.

그러나 이소화는 “소녀 일생 투기를 알지 못합니다”라고 대답한다.

우리는 이 말이 거짓말이라고 가정해보자.

물론 이소화가 정말로 질투심도 독점욕도 없는 특이한 정신세계를 가졌거나(그럴 수도 있다.) 7세기 당나라식 현모양처 여성상 교육에 세뇌 당했거나(이것도 그럴 수 있다.) 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우리의 가정에서 이소화는 합리적 경기자[rational player]이다.

이소화는 양소유에게 환멸받을 때보다 사랑받을 때에, 양소유의 사랑을 다른 여자와 나눌 때보다 독차지할 때에 더 큰 만족을 느낀다. 사랑의 성취, 이별의 슬픔, 사랑하는 이에게 환멸받는 아픔,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은 욕망; 이러한 주관적 만족과 선호들을 우리의 합리적 경기자 이소화는 정확히 계량해낼 수 있다.

양소유의 사랑을 오롯이 독차지할 때의 기쁨: +2
양소유의 사랑을 다른 여자와 나누어 받을 때의 기쁨: +1
양소유의 사랑을 얻지 못했을 때의 슬픔: 0
양소유에게 환멸당해 영원히 작별하는 찢어지는 마음: –1

이소화는 이러한 마음의 보수[payoff]를 극대화하고자 한다.

이소화 입장에서 최고의 결과는 양소유의 사랑을 독차지해 +2의 보수를 얻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양소유를 독점할 수 있을까? 정경패의 진입을 저지하면 된다. 어떻게 정경패의 진입을 저지할 수 있을까? 정경패를 협박하면 된다. 이른바 너 죽고 나 죽자 전략이다.

“만약 정경패 당신이 나와 양소유와의 관계에 진입할 경우 나는 당신과 싸워주겠습니다. 양소유 앞에서 아주, 아주 추하게 싸워주겠습니다. 그러면 7세기 당나라 남자 양소유는 나와 당신을 모두 환멸하게 될 것이고, 나와 당신 모두 마음의 깊은 상처(–1)만 남게 될 것입니다.”

만약 정경패가 이런 협박에 굴복해 양소유를 포기한다면, 이소화는 양소유를 독차지함으로써 +2의 보수를, 정경패는 양소유의 사랑을 얻지 못함으로써 0의 보수를 얻을 것이다. 이소화의 대승리다.

문제는, 우리의 가정에서 7세기 당나라 최고 아웃풋 정경패는 딱 입시 게임이론 수준이지만 기초적인 전개형 게임[Extensive-form game]과 역진귀납법[Backward induction]의 원리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소화의 협박 내용을 게임나무[game tree] 형태로 그린 정경패는 게임의 마지막 점[node]으로부터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생각한다:

만약 자신이 협박에 굴하지 않고 정말로 진입할 경우에 이소화는 어떻게 할까?

정말로, 이소화는 협박을 실행에 옮겨 양소유 앞에서 투기하고 싸움으로써 자신과 사이좋게 –1의 환멸을 받을까?

아니다. 우리 가정의 이소화는 합리적 경기자이고, 합리적 경기자는 열등전략을 선택하지 않는다. 1:1점에서 정말로 정경패가 진입해 2:1점으로 온다면, 이소화는 자신의 보수를 극대화하기 위해 출구전략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즉, 정경패를 수용해서 함께 양소유의 부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소화와 정경패는 각각 양소유의 사랑을 나누어 받으며 +1의 기쁨을 얻을 수 있다. 아쉬우나마 양소유에게 환멸당하는 –1보다는 강우월한 전략[strongly domination strategy]이다.

그렇다면 이소화의 협박은 거짓말: 신빙성 없는 위협[empty threat]이다.

이에 정경패는 이소화의 거짓 협박에 속지 않고, 그대로 진입한다.

이소화는 깜짝 놀란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정경패의 예상이 맞다. 일단 정경패가 진입한 이상은 이소화에게도 수용이 합리적 전략이다. 결국 정경패는 양소유를 포기하지 않고 이소화는 얌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이 게임, 혹은 진입저지게임[chain store game]의 부분게임완전균형[subgame perfect equilibrium] 경로가 된다.

이러면 사실 더 이상 협박 같은 짓을 하는 의미가 없다. 하렘의 성립이 필연적이라는 것을 이소화도 알고, 정경패도 알고, 서로가 아는 것까지 모조리 다 안다. 결국 이소화와 정경패는 필연적이고 또 운명적으로 양소유의 사랑을 나누어 받는 결말을 선택한다.

합리적 경기자들이 모여서 게임이론까지 동원한 끝에 하렘이 성사된 것이다.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인간의 애정사가 이렇게 단순하고 아가페적이었다면 오늘날 보편적인 결혼제도는 일부일처제가 아니라 다부다처제가 됐을 것이다.

약을 팔긴 했지만, 사실 위의 하렘 균형에는 문제가 있다.

이소화가 가령 자기 남편이 자기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그 여자가 다음날 아침 “야 어젯밤 니 남편 쩔더라?” 하는 꼴을 보면 미쳐버리는 성격이라면(보통은 그렇다.) 사랑을 나누어 받는 것의 보수는 +1은 커녕 –1 이하로 내려갈 것이다. 혹은 내가 파멸하더라도 내 남자를 빼앗아간 정경패와 같이 망하는 너 죽고 나 죽자 전략이 +1과 같거나 더 큰 만족을 준다면(이것도 많이들 그렇다.) 수용 전략은 더 이상 강우월한 전략이 될 수 없다.

사랑은 지극히 사적인 재화다.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은 매우 한정되어 있고, 나누면 기쁨이 아니라 질투가 된다. 결국 <구운몽>의 일부다처제 균형은, 양소유와 팔선녀 모두의 무차별하며 무제한한 공공재적 사랑이라는 위태로운 전제에 기대고 있다.

물론 허황되고 비현실적인 가정이다.

그러나 <구운몽>의 내용을 다시 떠올려보자.

소설의 처음 양소유는 승려 성진이었고 여덟 부인들은 선녀들이었다. 소설은 성진과 팔선녀가 서로를 희롱하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성진도 팔선녀도 모두 감히 애정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신분이었다. 결국 헤어진 그들은 세속적 욕망을 갈망하게 된다.

성진의 스승인 육관대사는 성진의 욕망을 알아챈다. 그러나 육관대사는 그런 욕망은 헛되다고 윽박지르고 일방적으로 가르침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을 환경을 마련해준다. 아홉 사람은 구름 같은 꿈(九雲夢)을 꾸며 <구운몽>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작품을 현대어로 옮긴 송성욱 가톨릭대학교 교수는 민음사 판 <구운몽>의 해설에서 이 소설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동기로 “애정 욕구”를 꼽는다.

성진의 환생인 양소유는 끊임없이 애정에 목말라한다. 자신을 죽이러 왔던 여자객 심요연과 삼일밤낮을 사랑을 나누고, 백능파가 기다려달라고 해도 듣지 않고 미처 용의 허물을 벗지도 못한 백능파를 안는다. 팔선녀의 환생인 여덟 부인들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양소유를 만난 순간 운명 같은 끌림을 느끼고, 서로의 사랑을 갈망하게 된다. 바로 이런 갈망이 위에서 본 “하렘균형”을 성립하게 한 것이다.

결국 양소유와 그의 여덟 부인이 된 팔선녀의 사랑은 동화처럼 이루어진다. 부인들끼리도 서로 의자매를 맺고 아끼며 사랑한다. 부인들이 저마다 단 한 명씩만 낳은 자녀도 유교적인 의미의 자손의 번창보다는 차라리 양소유와의 애정의 증거물에 가깝다. 그렇게 부귀와 영화, 그리고 억압받던 애정 욕구를 마음껏 성취한 아홉 명에게, 육관대사는 다시 찾아와서 가만히 웃으며 묻는다.

“어떠하더냐?”

오랜 시대를 넘어 <구운몽>을 사랑받게 만드는 매력은 바로 이런 서사에서 발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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