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그 치열한 전쟁의 역사 : 2001-2004 소설

 


지난 역사 펼치기


01년도


테란은 약했다. 스타판의 탄생과 동시에 테란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럴커라는 엄청난 유닛이 나오면서 테란의 바이오닉 체제는 거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곂친 럴커로 입구와 마린, 메딕 방어선을 일시에 뚫어버리는 기술이 등장하고 테란 유저들은 당황했다. 테란 위기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01년도, 그때 그가 나타났다. 테란의 황제 임요환.

바이오닉의 천적이자 공포의 대상이었던 러커를 마린 한 기로 잡아버린다. 드랍쉽 한 기에 태운 마린 메딕 몇 기로 저그 멀티를 짓밟아 버린다. 앞마당 멀티 하나로 올멀티 저그를 완전히 무릎꿇린다. 그의 마린은 블리자드가 잡아놓은 천적관계를 역전시키는 '언벨런스' 마린이었고 그의 포격은 거의 신들린듯 적의 진영을 뒤흔들었다.

러커가 마린의 천적이라고? 바이오닉은 약체일 뿐이라고? 과연 그럴까? 임요환은 고개를 갸웃하고 이내 싸한 웃음을 머금었다. 두 부대 넘는 히드라와 럴커가 황제의 마린과 메딕을 향해 돌진하다가 그대로 싸그리 녹아버렸다. 사방천지에서 그의 드랍쉽이 날아들고 마린들이 뛰쳐내렸다. 드랍쉽과 정면공격으로 동시에 두 군데, 세 군데의 전선이 펼쳐지고 상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멍하니 손을 놔 버렸다. 맵 전체가 저그의 피로 물들었다.

임요환은 전술을 관리하지 않았다. 그는 전술을 넘어선 전략의 지배자였다. 난전을 관리하고 몇 군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싸움도 여유있게 치러내었다. 그는 전쟁의 천재였다. 모든 저그는 그에게 패배했다. 단 한 명, 홍진호를 빼고.

폭풍 홍진호는 분전했다. 그의 스타일은 공격형. 최소한의 드론으로 병력만을 모아 그는 시종일관 상대를 몰아쳐 짓밟고 적진을 휘저었다. 특별한 빌드도 없었다. 화려한 컨트롤도 없었다. 임요환이 천재였듯이 그도 천재였다. 순간적인 임기응변, 판단력, 과감하고 낭만적인 돌격으로 홍진호는 저그의 지배자가 되어 군림했다. 그리고 저 멀리서 임요환이 지휘하는 해병대의 총성이 아득하게 울렸다. 그러나 홍진호는 기어코, 임요환을 막지 못했다.

임요환은 스타판을 이끌었다. 스타판을 재창조했다. 그의 마우스 클릭 하나하나가 이슈였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스포츠팬들의 이목을 끌었다. 01년도 마지막 대회인 스카이 스타리그결승까지도 그의 이런 무적 행보는 계속되었다. 가림토 김동수에게 기어코 패배를 당하지만 그의 '황제'의 좌는 여전히 흔들리지 않았다.


02년도


월드컵이라는 악재 속에서 스타리그는 외면당한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스타성 있는 선수들은 16강에서 줄줄이 탈락하고, 결국 무관심 속에서 결승전이 치러졌다. 변길섭이 이겼지만 아무도 그의 우승을 기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묻힐만한 그릇은 아니었다. 불꽃테란 변길섭은 그저 그렇게 잊혀지기에는 너무도 대단한 사람이었다.

성큰? 누군가 변길섭에게 묻자 변길섭은 웃었다. 본진에 성큰 몇 개 있냐? 본진에 9개, 멀티에 5개? 본진 뚫자. 성큰 9개 별거 아니다. 딱 보니까 저 성큰들 뚫릴 관상이다. 저번에 형이 11개도 뚫어봤거든.

그리고 그는 실제로 적진을 돌파했다. 저그는 미칠 지경이었다. 성큰 없는 순 저글링만으로는 그를 이길 수 없었다. 그렇다고 성큰을 껴안고 싸우려고 해도 성큰마저 그의 적수가 아니었다. 성큰 다섯, 여섯, 아홉, 열하나. 저글링이 달려들고 그 많은 성큰이 솟아도 변길섭의 보병사단은 여유로이 저그의 본진을 짓밟았다. 그의 승리는 그만큼 값졌다. 불꽃테란의 승리였다.

그리고 02년도 중반, 임요환은 모든 이들의 머릿속으로 다시 황제의 위엄을 각인시키며 최단경기 결승진출이라는 기염을 토했다. 팬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황제가 다시 그의 좌를 되찾을 것만 같았다. OSL은 다시 그의 독무대가 될 것 같았다.

그러나 황제는 마이크로의 제왕. 그의 전략은 어디까지나 마이크로들의 단편적인 집합일 뿐. 영웅토스 박정석이 지휘하는 프로토스는 마이크로의 황제를 거대한 매크로의 전략 앞에 무릎꿇렸다. 폭발하는 엄청난 물량으로 황제의 지휘봉은 기어코 꺾였다.

문제는 물량이었다. 황제의 마이크로 컨트롤은 병력생산에 투자할 시간마저 잡아먹었다. 센터에서 한바탕 맞붙어 서로의 병력을 소진한 직후에도 박정석의 본진에는 보충병력이 나와 있었다. 황제는 전장을 관리하는 동안 아예 팩토리를 쉬어버렸다. 그 물량으로는 박정석을 상대할 수 없었다. 결국 황제의 군림을 기대하며 경기를 보러 갔던 임요환의 팬들은 영웅의 탄생을 목격해야 했다.

하지만 온게임넷 저편, MBC게임에서는 천재가 등장하고 있었다. 천재 테란, 이윤열이었다.

우스갯소리로 사람들은 그런 말을 나누었다. 다음 중 가장 확률이 높은 것은 무엇일까. 첫째, 허구한날 준우승만 하는 홍진호가 어느 날 갑자기 우승할 확률. 둘째, 황제 임요환이 뜬금없는 물량으로 프로토스를 압도할 확률. 셋째, 앞마당을 먹은 이윤열을 이길 확률. 모두의 의견은 일치했다. 세 확률 모두 다, 특히 마지막 세 번째 확률은 0에 수렴한다는 것이다.

이윤열은 '앞마당을 먹은 이윤열'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고유명사를 제시하며 불가사의한 물량을 선보였다. 그의 팩토리에서는 한 번에 탱크 두 기가 나온다는 농담마저 있었다. 배틀넷에 그가 나타나면 내로라하는 고수들은 그가 미네랄핵을 쓰는 것 아니냐고 의아해했다. 프로게이머가 되어 군림한 이윤열도 마찬가지였다. 임요환이 마이크로를 지배했다면 이윤열은 매크로와 마이크로를 두루 섭렵해 칼을 휘둘렀다. 그리고 거짓말 같지만 그게 가능했다. 이윤열은 범인과는 다른 천재였다.

공식전과 비공식전, 스타판을 구성하는 그 모든 구성요소를 이윤열은 하나도 남김없이 거머쥐었다. 임요환을 무릎꿇리고, 또다시 홍진호를 짓밟으며 이윤열은 군림하고 통치했다. 02년도 말 그는 OSL과 MSL을 동시점령한다. 이제 그는 임요환에 이은 두 번째 본좌에 등극했다. 2002년도의 주인공은 황제가 아닌 천재였다.


03년도


MSL에선 또다시 이변이 일어났다. 하늘이 천재를 버린 것이다. '몽상가' 강민의 다크템플러에 이윤열이 무참히 유린당하고 강민은 MSL을 석권한다. 게다가 OSL에서도 이윤열이 조기탈락하자 이윤열 본좌론에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아직은 충분했다. 이전까지 보여준 이윤열의 천재성은 잠깐의 부진을 잊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강민은 본좌를 제압한 프로토스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강민은 위대했다. 그의 플레이는 하나같이 새로웠고 신선했다. 프로토스의 유닛들을 예의 그 졸리고 꿈을 꾸는 듯한 눈으로 응시하며 강민은 새로운 전략, 감히 꿈도 꾸지 못한 새로운 활용을 보여주었다. 그는 꿈의 군주였다. 프로토스의 위대한 지배자였다.

한편 OSL에서는 서지훈이 결승에서 홍진호와 맞부딪혔다. 황제도 천재도 지쳐 쓰러진 이때에도 꾸준히, 홀홀단신으로 저그를 이끌던 '폭풍' 홍진호는 다시금 최초의 저그 우승을 위해 싸웠다. 그러나 이번에도 하늘은 홍진호를 원하지 않았다. 퍼펙트 테란 서지훈이 OSL의 왕좌를 차지한 것이다. 서지훈은 이후 임요환을 잇는 테란의 강자로 떠올랐고, 홍진호는 또다시 쓸쓸한 준우승에 만족하고 돌아가야 했다.

바야흐로 테란의 전성기가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OSL은 테란의 시대에 마침표를 찍었다. 사상 초유의 프로토스맵, 시쳇말로 '씹플토맵'인 기요틴과 패러독스가 정규 맵으로 투입된 것이다. 테란은 이 두 전장에서 맥을 못추고 쓰러졌고 천재 이윤열과 퍼팩트테란 서지훈의 투톱체제도 프로토스를 극복하지 못했다. OSL에서는 악마의 프로토스 박용욱, 몽상가 강민을 비롯한 쟁쟁한 프로토스들이 프로토스의 미래를 제시했다.

마침내 우승자는 몽상가 강민이었다. 바야흐로 양대 우승의 쾌거였다. 강민은 잠시동안 본좌로 추앙받으며 꿈의 군주로서 모든 프로토스 위에 군림했다. 그러나 그의 저그전은 여전히 의문의 여지가 남아있었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패러독스, 기요틴 효과가 사라지자 다시 테란에 밀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그는 본좌에 오르지 못했다.

본좌는 다른 곳에서 웅비하고 있었다. MBC게임을 폭풍처럼 제압하고 나타난 절대강자, 최연성이었다.

최연성과 홍진호가 만났다. 그리고 홍진호의 폭풍이 거칠게 몰아치다 말고, 그대로 끊겼다. 최연성은 미친 듯이 물량을 쏟아내더니 어느새 맵 전체를 통째로 휩쓸어버렸다. 순식간에 최종인구수 200이 꽉 차버리고, 소진되었다 싶으면 어느새 또 그만큼이 나와 있었다. 홍진호는 완전히 질려버려서 마우스를 놔 버렸다. 황제의 제자 최연성은 스승의 라이벌을 향해 씩 웃고, 거칠게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천재도 역시나 사람이었다. 그리고 최연성은 괴물이었다. 사방천지로 포성이 진동하고 이윤열의 하얀 얼굴로 핏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이윤열이 그 타고난 천재성으로 마이크로와 매크로를 함께 만졌다면 최연성은 매크로의 제왕. 끊임없이 빚어지고 한바탕 붙고서는 다시 그만큼이 나와 맵 전체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저, 저 거대한 기갑집단군. 이제 이윤열은 더 이상 본좌가 아니었다. 그는 이제 내리막길만을 앞두고 있었다.


04년도


바야흐로 최연성의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질레트배 스타리그에서 최연성은 이제 공포에 가까웠다. 만나는 상대마다 처참히 짓밟히기 바빴고 제대로 된 저항 하나 보여주지 못했다. 너무도 압도적인 전력차로 사람들은 '최연성이 나오면 경기가 재미없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기세등등하게 양대리그를 치고 올라가며 그는 번번이 상대를 초토화시켰다.

16강전. 그는 이병민을 만났다. '들쿠달스 백작'이라는 애칭의, 출중한 실력에 비해 유난히도 인기가 없던 이병민을 최연성은 가볍게 제압했다. 앞서간다는 생각이 들자 최연성은 체제전환조차 하지 않고 레이스와 벌처를 뽑기 시작했다. 이병민은 골리앗을 택했다. 상성상으로는 이병민이 압도적인 게임이었다.

그러나 최연성의 불가사의한 물량과 컨트롤은 이미 블리자드가 정해놓은 천적관계를 뒤집어 엎었다. 마치 럴커를 잡던 황제의 언벨런스 마린처럼.

레이스 벌처가 바야흐로 화면 가득히 펼쳐졌다. 골리앗 라인은 평소라면 제압했을 레이스 벌처에 거꾸로 완전히 전멸당했다. 천적조차 뒤엎는 최연성의 유닛에 사람들은 치를 떨었다. 경기는 이병민에 대한 최연성의 조롱에 가까웠다. '너 따위는 벌처 레이스로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는. 혹자는 이병민이 이번 경기로 완전히 끝났다고 성토했다.

최연성? 그가 왜 그렇게 강했지? 전 본좌였던 이윤열은 왜 그에게 20:6이라는 압도적인 스코어로 때려잡고 짓밟혔지? 그의 힘은 컨트롤도, 천재성도 아니었다. 최적의 일꾼수, 최적의 확장타이밍, 최적의 생산시설 확충으로 그는 콤마 일초 타이밍의 전지전능한 빌드를 구사했다. 그는 경기를 앞두고 미련하게 쳇바퀴도는 연습을 반복하는 대신 최적의 빌드를 고민하고 완벽한 판을 짜와 선보였다. 패배를 거듭하며 충격받은 이윤열은 그날로 초시계를 가져와 초단위로 빌드를 짜는 연습을 시작했다. 그런데도 상대전적 20:6. 최연성은 매크로의 지배자였고 참모장격의 전략가였다.

양산형 테란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테란들은 최연성의 경기를 보고 그 빌드를 따라했다. 최연성만큼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최연성을 흉내낸 것만으로도 테란 유저들은 저그, 프로토스 전부를 마구 짓밟고 물리쳤다. 테란의 전성기가 열렸다. 최연성은 임요환급 컨트롤이 아니더라도, 이윤열급 천재성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구사할 수 있는 테란의 교과서를 제시했다. 물론 최연성에 준하는 유저는 아무도 없었지만, 그가 던져준 빌드만으로도 테란은 바야흐로 막강한 힘을 구가하기 시작했다.

그가운데 최연성의 경기는 거의 '통치'였다. 모든 선수들은 최연성 앞에서 감히 숨도 쉬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질레트배 OSL 4강이 펼쳐졌다. 최연성의 상대는 난데없이 튀어나온 빨간 머리의 프로게이머였다. 사람들은 유난히 통통한 그를 '돼지'라고 비웃으며 그가 최연성에게 얼마나 처참히 짓밟힐지 기대했다. 이제는 홍진호가 우승할 확률, 임요환이 물량전을 벌일 확률, 앞마당 먹은 이윤열을 이길 확률에 사람들은 막 하나의 확률을 추가한 참이었다. 저그로 최연성을 이길 확률. 그 확률 역시, 0에 수렴했다.

그런데 그가 이겼다. 투신 박성준이.

현존최강 최연성은 박성준의 저글링 럴커에 너무나 쉽게 무릎꿇었다. 사람들의 동요는 엄청났다. 맞은편 4강에서 박정석이 나도현을 제압하고 결승에 올랐다. 그러나 박정석의 포스는 이미 임요환을 꺾던 그때의 그 모습이 아니었다. 저그 유저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혹시? 그들은 입을 모아 수군거렸다. 기어코 우승하지 못한 저그의 한이 이번에는 혹시?

그랬다. 투신 박성준은 기어코 영웅 박정석마저 무릎꿇렸다. 저그의 우승은 마침내 이룩되었다. 저그 유저들은 기뻐하는 한편 아쉬워했다. 저 자리에 오르지 못한 그 사람이 눈에 밟혔다. 한때 저그를 이끌던 무관의 제왕, 폭풍 홍진호.

한편 MSL에서 최연성은 그 괴물의 힘을 아낌없이 떨쳤다. 유리한 맵에 익숙해져 있던 프로토스들은 난데없는 괴물의 등장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시즈모드도 하지 않은 탱크들로 가볍게 밀어버리며, 최연성은 기어코 결승에 올랐다.

비록 OSL에서 박성준에 패배하긴 했지만 그는 여전히 본좌였다. 그 눈길 한번에 모든 선수들은 전율했고 그가 경기에 등장하면 상대편 선수를 응원하던 시청자들은 아예 TV를 꺼버렸다. 최연성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가 한 게임이라도 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때마다 최연성은 온 스타크래프트 커뮤니티의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그럴 기회가 도무지 오질 않았다. 그는 호령했다.

한 번 패했다고 감히 나를 넘보려 하지 마라. 나는 본좌다.

그는 승자조에서 결승에 올랐고, 박용욱은 강민을 잡으며 패자조에서 결승에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박용욱도 괴물에 패했다. 최연성은 이번에도, MSL의 신으로 군림했다.

이어 열린 에버 스타리그에서 최연성은 설욕의 기회를 잡았다. 이번에도 4강의 상대는 만만치 않았다. 영웅토스 박정석. 매크로대 매크로의 치열한 혈전이 벌어졌다. 황제를 무릎꿇렸던 박정석의 물량은 남달랐다. 치고박는 혈전 끝에 전장은 쇠와 초연의 열기로 지옥처럼 화했다. 온 스타크래프트 팬들이 열광하는 가운데 마침내 최연성은 이겼다. 그리고 그가 결승에 앉았을 때, 맞은편에서는 또다른 4강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천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 그 이름, 임진록이었다.

황제 임요환이 부활했다. 그의 마린들이 다시 신들린 듯 맵 위를 뛰기 시작했다. 럴커들이 무력하게 피를 뿜었고 성큰 위로 탱크의 포화가 작렬했다. 그리고 저 반대편 폭풍 홍진호가 재림했다. 그의 저글링들이 활주하며 질풍처럼 적진을 유린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두 게이머의 화려한 부활이었다. 스타판은 들끓었다. 16강, 8강, 마침내 4강. 이윽고 두 라이벌은 다시 만났다.

임진록이 기어코 펼쳐졌다.

온 스타판이 흥분했다. 사람들은 다시 펼쳐진 대결의 귀추를 주목했다. 누구나가 다 명승부를 기대했다. 그리고 임진록이 펼쳐진 당일, 엄청난 인파가 임진록을 보기 위해 모였고 다른 사람들은 TV 앞에 앉아 흥미진진하게 역사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역사가 펼쳐졌다. 임요환이 승리한 것이다. 세 번 다, 똑같은 전략으로.

첫 경기, 벙커링. 그리고 다음 경기, 또다시 벙커링. 마지막 경기, 역시 벙커링. 사람들은 거의 실신했다. 이 대결이 이토록 쉽게. 불과 30분만에 황제는 자신의 영원한 라이벌 홍진호를 제압해버렸다. 코엑스에까지 나와서 경기를 지켜보던 홍진호의 팬 한사람은 분을 못이겨 소리높여 "임요환 개새끼야!"하고 고함을 쳤다. 꼼수다 아니다로 논란이 들끓었고 저그 유저들은 절망에 빠졌다. 알고도 못막는 저 전략, 저 컨트롤, 저 빌어먹을 벙커링. 테란이라는 종족을 저주하며 홍진호는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수많은 임요환의 팬들도 임요환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임요환은 그렇게 해서라도 결승에 올라가고자 했다. 최연성이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이 발굴하고 키워낸 '황태자' 최연성. 마침내 경기에서 맞선 스승과 제자는 테란을 지휘했다. 5경기에 이르는 혈전이 펼쳐졌다. 사제는 맵에서 치열하게 처절하게 싸웠다. 그리고 마침내, 황제의 지휘봉은 다시 꺾였다.

GG를 치고 임요환은 마침내 눈물을 흘렸다. 최연성은 우승컵을 안고도 기뻐하지 못했다. 그렇게 황제는 쓸쓸히 왕좌에서 내려갔다. 그리고 최연성의 시대도 막을 내리고 있었다.


덧글

  • 바시 2010/08/29 19:47 # 답글

    정말 박성준선수가 예선에서 임요환 선수 이길 때 임빠로서 박성준 졸라 깠었음.

    "저 슈발넘이 감히 황제를 잡다니! 감히 저 슈발넘이!"
    지금 왠지 부끄러움.
  • kidovelist 2010/08/29 21:12 #

    많은 팬들로서는 그 "수박바"가 골든마우스라는 최고의 영광을 거머쥘 "투신"에 오를 줄이야 꿈에도 몰랐으니 말입니다. 최근에는 올드로서 어느 정도 추앙을 받으며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니, 그나마 박성준 선수에게는 위로가 될까요.
  • 바시 2010/08/29 21:48 #

    솔직히 말해서 박성준 선수하면 떠오르는 것이 이거죠.
    '토스전'
    정말 박성준 선수 토스전 보면 정말 환상입니다. 그 90%관광에서 부터 정말 끝없는 관광 관광 관광 괜히 토스보다 토스를 더 잘 이해한 저그 선수라는 호칭이 나온게 아니죠.

    그리고 갠적으로 토스 학살라인에 중심에는 박성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kidovelist 2010/08/29 23:53 #

    박성준은 데뷔 이후 선수생활 전부를 통틀어 토스를, 그야말로 "씹어먹었"지요. 구속당한 마 모 씨의 토스전보다 저는 오히려 박성준 선수의 토스전이 더 호쾌하고 좋습니다. 특히 안기효를 상대로 한 이른바 미니맵관광은 저프전 역사에 길이 남을 명경기라고 생각합니다. 스타2에도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으니, 스타2 저그의 역사에도 박성준의 이름 석 자가 크고 멋지게 아로새겨지리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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