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그 치열한 전쟁의 역사 : 2007-2008 소설

 


지난 역사 펼치기



07


마재윤은 몰락하기 시작했다. 모스크바를 목전에 두고 그의 제3제국은 무릎을 꿇었다. 한 번의 패배로 끝나지 않았다. 혁명가는 잔인하리만큼 철저하게 그를 짓밟았다. 비수 더블넥이 피투성이가 된 마재윤을 몇 번이고 다시 난자했다. 맵 위로 김택용의 커세어가 날아들 때마다 마재윤은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그의 저그, 괴물과 천재와 황제를 한데 모아 몰락시켰던 그 무적의 저그도 정신없이 맵을 질주했다. 그러나 기어코, 혁명은 전복되지 않았다,

마재윤이 동부전선에서 패배하고 있을 동안 도버해협 너머의 테란은 비로소 차갑게 웃었다. 이윽고 슈퍼파이트, 괴물의 무적군단이 마재윤을 향해 노르망디 공습을 개시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가볍게 짓밟았을 최연성의 공격에 마재윤은 무참히 패했다. 이윽고 조용히, 공군의 황제마저 침묵을 깨고 지휘봉을 들었다.

사방천지로 진동하는 발소리와 함께 황제의 근위 골리앗이 마재윤을 향해 진군했다. 마재윤의 뮤탈리스크와 히드라리스크가 위아래에서 포위하고 포화를 퍼부었으나 골리앗들은 그대로 맞서 싸웠다. 양쪽 다 대군, 물러설 곳도 물러설 이유도 없었다. 뒤로, 뒤로, 황제의 명령 아래 골리앗들이 반걸음 물러날 때마다 마재윤의 뮤탈은 녹아버렸다. 이윽고 골리앗들이 다시 진군하기 시작했을 때 마재윤은 지휘봉을 던져버렸다. 저만치에서 황제가 웃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성은이 진두지휘하는 테란의 본대가 다가왔다. 마재윤은 이를 악물고 지휘봉을 틀어쥐었다. 시종일관 마에스트로의 폭발적인 공격이 전 맵을 휩쓸었다. 이성은의 건물이 몇 번이고 떴다 내렸고 밀리고 패하기를 수십번 하면서 그의 테란은 언덕 위로 몰렸다. 마재윤의 저그는 전장의 7할 가까이를 점거하며 시위에 들어갔다.

당장 내려와라! 마재윤은 호령했다. 전쟁은 끝났다! 당장 내려와 무릎을 꿇어라!

웃기고 있네. 이성은은 키득거리며 지휘봉을 들었다. 그의 테란은 포구를 하늘로 돌리고 있었다. 터렛들이 세워지고 테란의 진지는 요새화되었다. 마재윤은 당황했다. 그가 예상하던 구도는 이게 아니었다. 급히 오버로드가 동원되고 드랍이 시작되었다.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테란의 본진으로 드랍이 끝도없이 떨어지고 언덕 아래의 이성은의 커멘드는 불타고 떠오르고 퀸에게 감염당하기를 반복했다. 그런데도 테란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성은은 당황하지 않았다. 몰아치는 마에스트로의 공격을 이성은은 번번이 벼랑 끝에서 저지했다. 커멘드가 먹히면 다시 짓고 드랍이 떨어지면 십여기의 배슬이 동시에 근방 전부를 방사능으로 뒤덮으면서 마재윤의 필사적인 공격은 차례차례 저지되었다.

마재윤의 기지로는 점차 자원이 말라들었다. 그리고 테란은 여전히 자원을 캐고 있었다. 그리고 이성은이 스타포트를 건설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탄성을 질렀다. 이윽고 배틀크루저가 등장했다. 그것으로 경기는 끝이었다. 탱크, 골리앗, 터렛, 그리고 창공을 장악한 막강한 배틀크루져까지. 바야흐로 테란의 요새는 철의 장벽이 되었다. 마재윤의 유닛은 점점 초라해졌다. 공세종말점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성은이 비로소 킬킬거리며 배틀크루저를 움직이자 마재윤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야마토 캐논이 성큰과 스포어라인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드랍쉽이 탱크들을 공수하고 있었다. 테란이 꿈꿀 수 있는 최강의 조합이 마침내 구현되는 순간이었다. 허공을 맴도는 배슬은 마재윤이 짜내고 짜낸 병력 위로 방사능을 퍼붓고 있었다. 마재윤의 디파일러가 달려들어 배틀 위로 플레이그를 뿌렸으나 이윽고 리스토레이션이 빛나자 그의 얼굴은 흙빛이 되었다. 마침내 뉴클리어 사일로가 건설되었을 때, 핵미사일 발사가 감지되었다는 메시지를 들었을 때 마재윤은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는 또다시, 이렇게 무너졌다.

이성은의 테란은 신선한 충격이자 방어에 전념하는 테란이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결국 그는 마재윤의 시대에 완전한 종지부를 찍었다. 본좌가 무너졌다. 마에스트로는 없다. 이제 누군가? 사람들은 물었다. 비어버린 본좌의 자리는, 이제 누구의 것인가? 혁명가 김택용, 스나이퍼 진영수, 폭군 이제동, 무결점의 총사령관 송병구, 대인배 김준영, 칸의 남자 이성은, 광전사 변형태까지. 자신의 제국이 끝나고 군웅할거의 시대가 열리는 것을, 마재윤은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누구도 승리를 자신할 수 없었다. 김택용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OSL에서 이영호의 빠른 진격이 김택용을 무너뜨리면서 사람들은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혁명가를 무너뜨린 이영호가 결승의 문턱조차 밟지 못했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지금이 춘추전국시대라는 것을 깨달았다. OSL의 결승, 광전사 변형태가 위풍당당히 무대에 섰다. 테란이 다시 일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반대편에 선 저그는 묵묵히 지휘석에 앉았다.

마재윤은 끝났다. 그러나 저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몰살당하던 저그의 마지막 자존심, 대인배 김준영은 지휘봉을 틀어쥐었다. 그의 별명은 16강 저그. 16강에서 두 번을 낙마하고 그는 다시는 그 이상 올라오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대인배는 마침내 올라왔다. 그를 향해 저그의 제국을 넘보는 테란의 위협적인 역류가 시작되었다.

1경기, 2경기. 변형태는 과연 변형태였다. 김준영의 저그가 두 번째 GG를 선언하고 그만을 바라보던 저그 유저들은 침묵했다. 경기는 끝났다. 2:0의 스코어. 김택용에게 2:0의 스코어를 선점당한 마재윤이 어떻게 되었던가? 본좌도 황제도 이루지 못한 역전이었다. 대인배의 패배가 눈앞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모두가 단념했다. 오직 한사람, 김준영을 제외하고.

3경기와 4경기가 혈전 끝에 막을 내렸다. 그야말로 광전사의 이름이 아깝지 않게 변형태는 치열하게 맞서싸웠다. 그러나 모두 김준영의 승리였다. 2:2, 기어이 동점이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셧아웃으로 끝날 것 같았던, 그래서 저그 제2의 치욕이 될 뻔한 경기는 이제 막바지로 치달아가고 있었다. 엄재경은 탄식했다.

"이건 기량 승부가 아닙니다. 정신력 싸움이에요."

물론이었다. 2:0으로 상대를 찍어누르려다가 거꾸로 2:2까지 쫓긴 변형태. 2:0으로 밀리다가 간신히 동점을 이루어낸 김준영. 미끄러져내리면 평생의 한이 될 피가 얼어붙는 진검승부였다. 두 사령관은 지휘석에 앉고, 이어 마지막 대회전이 시작되었다.

밀고 밀리는 싸움이 계속되었다. 김준영이 하이브체제로의 전환을 성공하고 마침내 울트라가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충분한 가스, 빈 센터. 모든 조건이 갖추어지자마자 대인배의 울트라가 맵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변형태의 바이오닉 부대가 화력을 퍼부었다. 대인이 되야 돼요! 엄재경은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김준영의 다크스웜이 일제히 맵을 뒤덮고 사람들은 탄성을 질렀다. 테란의 패배였다.

이윽고, 변형태는 미련없이 GG를 선언했다. 김준영은 승리했다. 대인배는 달랐다.

누구도 김준영을 본좌로 칭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김준영은 대인배였다. 김준영의 팬들도, 다른 이스포츠 팬들도 대인배라는 그의 빛나는 이름에 경의를 표했다. 대인배는 본좌보다 위대했기에 사람들은 감히 그를 본좌라는 이름으로 끌어내리지 못했다. 대인배는 홀로 추앙받으며 그렇게 스타리그를 석권했다. 저그의 제국은 지켜졌다.

MSL에서는 프로토스간의 혈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더 이상 MSL은 혁명가의 독무대가 아니었다. 저편에서 무결점의 총사령관 송병구가 그의 군단을 이끌고 버티고 있었다. 치열한 결전이 펼쳐졌다. 리버셔틀이 상대방의 진영으로 떨어지고 드라군의 포격이 작렬할 때마다 사람들은 탄성을 질렀다. 다섯 경기에 이르는 긴 혈전, 송병구는 마침내 헤드폰을 벗어버렸다. 그의 화면으로는 GG선언이 떠올라 있었다. 김택용은 비로소 웃었다. 프로토스 최초의 2연속 우승이었다.

그렇다면 김택용이 새로운 본좌인가? 사람들은 선뜻 동의하지 못했다. 그 압도적인 실력에도 불구하고 김택용은 종종 뜬금없는 패배로 사람들을 실망케 했다. 역대의 본좌들은 번번이 전대 본좌를 꺾고 본좌의 좌를 차지했다. 이윤열은 임요환을 무릎꿇렸고, 최연성은 이윤열에 승리했으며, 마재윤은 최연성을 눌렀다. 그렇게 그들은 본좌가 되었다. 그런데 김택용은 마재윤을 꺾고도 본좌의 자리에 추대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럴 거면 왜 마재윤을 꺾은 거냐? 몇몇 이스포츠 팬들은 이제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다음 대 본좌가 못 될 작정이었다면, 애초부터 혁명은 무엇 때문에 일으킨 거냐?

다시 MSL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김택용은 결승에 올랐다. 상대는 이름조차 낯선 신예 테란 박성균이었다. 사람들은 그래도 김택용의 승리를 점쳤다. 설마 그가 여기서 쓰러지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한때 번번이 MSL을 제패했던 마재윤처럼 MSL은 영원히 김택용의 무대가 될 것 같았다. 프로토스에게 너무도 유리한 전장 로키2가 그의 손에 있었다. 혁명가의 승리를 위한 모든 조건이 갖춰졌다.

그리고 김택용은 패배했다. 바로 그 로키2, 자신의 본진 옆으로 커멘트센터가 꽂히는 수모를 겪으면서. 그가 필사로 동원한 캐리어는 한순간에 레이스 편대에게 따라잡히고 격추당했다. 미니맵을 가득히 물들이던 김택용의 캐리어가 일시에 사라지자 김택용은 얼이 빠졌다. 혁명가의 패배였다. 낯선 우승자 박성균은 혁명가를 비웃으며 우승컵을 손에 쥐었다. 혁명의 시대가 흔들리고 있었다.

김택용의 수모는 계속되었다. OSL에서 송병구와 맞대결한 그는 3:0이라는 압도적인 스코어로 철저하게 짓밟혔다. 김택용 본좌론은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기대는 이제 송병구에게로 옮아가고 있었다. 무결점의 총사령관, 테란전의 스페셜리스트, 그가 이끄는 무적의 캐리어는 테란의 저항을 번번이 찍어누르고 짓밟았다. OSL의 왕좌를 다시 프로토스가 가져올 차례였다.

그리고 반대편, 파괴자 이제동이 칼을 뽑아들었다.

난전, 난전. 치열한 지상전에서 송병구는 밀리고 있었다. 이제동의 월등한 화력이 프로토스를 둘러싸고 미친 듯이 녹여버렸다. 파괴신의 병력은 스톰을 오롯이 맞으면서도 당당히 질주하며 사령관의 프로토스를 휘몰아쳤다. 송병구의 병력은 오로지 질럿과 아콘. 울트라리스크를 대대단위로 몰고다니는 저그에 비에 화력이 너무도 모자랐다.

리버! 김태형은 절규했다. 왜 리버를 안 쓰나요, 송병구 선수! 이건, 이건 프로토스가 저그에게 밀리는 전형적인 조합입니다! 리버 안쓰면 집니다, 왜 리버를 안 씁니까!? 테란전에서는 그토록 리버를 사랑하는 사람이 왜 저그전에서!

송병구는 기어코 GG를 선언했다. 이제동은 빙그레 웃으며 사령관을 마주보았다. 사령관은 얼이 빠진 것 같았다. 김태형의 긴 탄식과 함께 이제동은 우승컵을 받아들었다. 마재윤의 항모전단이 침몰한 바로 그 자리를 향하는, 이제동의 구축함대[Destroyer]의 화려한 출항이었다.


08


춘추의 시대는 끝나고 이제 패자들이 할거하는 전국의 시대가 열렸다. 이제동의 우승으로 주춤했으나 프로토스의 황금기는 아직도 찬란히 펼쳐지고 있었다. 여섯 명의 프로토스, 육룡의 위세는 다른 모든 종족과 선수 위에 군림하며 혁명가가 열어젖힌 프로토스의 위세를 이어갔다. 괴수 도재욱, 붉은 셔틀 김구현, 뇌제 윤용태, 천지스톰 허영무, 여기에 택뱅을 포함하여 그들을 육룡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위에서 택뱅리쌍이 스타판을 향해 시퍼런 진검을 뽑아들고 있었다. 혁명가 김택용, 무결점의 총사령관 송병구, 폭군 이제동, 최종병기 이영호. 육룡 사강의 치열한 혈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저들은 본좌가 아니다. 김택용은 뛰어난 기량에도 불구하고 어이없는 패배로 몇 번이고 사람들을 실망시켰고, 송병구 역시 2연속 준우승의 충격이 너무도 컸다. 본좌란 유리한 경기에서는 상대를 짓밟고 불리한 경기에서는 드라마를 빚어내어야 한다. 여전히 스타판의 왕좌는 비었다.

그럼 누구인가? 사람들은 되묻고 있었다. 그럼 저 왕좌에 앉을 다음 본좌는 과연 누구인가?

이영호가 있었다. 이제동이 있었다. 새파란 두 사람의 신인은 프로토스의 전성기에 각자 테란과 저그를 이끌어 힘겹게 맞서싸웠다. 저 멀리서 물려오는 육룡의 붉은 물결에 두 신예는 혈투를 벌이고, 이윽고 이겼다. 두 사람이 제시한 것은 각자의 종족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틀, 전혀 다른 접근방식이었다. 마치 처음 임요환이 등장했던, 그리고 마재윤이 삼해처리를 들고 나왔던 바로 그때처럼.

이제동의 뮤탈리스크는 저그가 아니었다. 그의 뮤탈은 에그에서 부화되어 이제동의 손이 닿는 바로 그 순간부터 저그가 아닌 제4종족이 되었다. 블리자드가 정해놓은 모든 천적관계는 다시 한 번 뒤집혔다. 믿을 수 없는 컨트롤로 그는 터렛을 박살내고 마린들을 농락했다. 스팀팩 소리와 함께 달려드는 마린들을 빙 돌며 뮤탈들은 호버링과 활공을 반복했다. 폭격을 퍼부으며 빠르게 움직이는 뮤탈들에 마린들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뮤탈은 워포그 저 너머로 사라져 있고 바이오닉 부대는 전멸해 있었다.

기라성같은 테란이, 현존최강 프로토스 육룡이 이제동과 번번이 혈투를 벌였다. 그러나 폭군 이제동은 강했다. 도대체 어떤 테란이 이제동을 이길 수 있을까. 테란 유저들은 고심 끝에 답을 내놓았다. 그리고 그 답이 비로소 MSL 8강전에서 이제동에 맞섰다. 테란의 최종병기, 이영호가 칼을 뽑고 있었다.

카트리나에서의 혈전이 시작되었다. 이영호는 팩토리를 짓고 있었다. 저 까마득한 황제의 시대로부터 물려내려온 관습, 대저그전 테란전략인 바이오닉을 포기하고 그는 메카닉을 택하고 있었다. 폭군의 공격이 연신 본진을 뒤흔들고 그때마다 이영호는 벼랑 끝에 서서 저항했다. 이윽고 센터멀티가 이영호의 것이 되자 이제동은 저그가 동원할 수 있는 최강의 화력을 준비했다. 가디언과 히드라가 결집하고 있었다.

센터멀티에 가디언의 포격이 시작되자 이영호는 급히 커멘드센터를 들었다. 패색이 짙어지고 있었다. 천천히 가디언이 언덕 위쪽으로 활공해 올라오고 이영호의 골리앗은 숨을 죽였다. 때는 온다.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때는 반드시 온다. 그리고 마침내, 가디언이 언덕 사이에 낀 바로 그 순간 맵을 가득히 뒤덮으며 골리앗이 난입했다.

헬파이어 미사일이 미친듯이 날아 꽂혔다. 이제동은 급히 지상병력을 투입했다. 막강한 히드라 가디언 조합이 이영호의 골리앗에 달려들었다. 새하얀 초연이 사방천지를 뒤덮고 이제동은 마른 침을 삼켰다. 마침내 초연이 걷혔을 때, 그의 가디언은 전멸해 있었다. 이영호는 기다리지 않았다. 그의 골리앗이 즉각 진군하기 시작했다. 이제동의 침착한 지휘가 흔들리고 있었다. 이제동이 동원한 모든 병력, 모든 저항을 이영호의 골리앗은 사상 최강의 화력으로 불살라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이제동이 GG를 선언하자 테란 유저들은 탄성을 질렀다.

경기 스코어는 1:3. 이제동의 승리였다. 이제동은 과연 강했다. 이어진 결승에서 그는 김구현마저 제압하고 MSL의 왕좌에 올랐다. 마재윤이 승리하던 바로 그때처럼, 그는 그 찬란한 자리에서 자신 있게 웃었다. 그러나 이영호는 테란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고 테란 유저들은 경탄과 함께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테란은 화력의 종족이다. 이영호는 그렇게 단언했다. 프로토스마저 압도하는 화력이 저그에게 통하지 않을리 없다. 오로지 화력, 업그레이드, 전장을 지배하는 메카닉의 치열한 전진!

그리고 마침내 OSL의 결승, 노련한 총사령관 송병구에 맞서 테란의 어린 총수 이영호가 칼을 뽑았다. 이영호의 나이 열다섯, 사람들의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테란과 프로토스 유저들의 희비가 복잡하게 얽혀들었다. 바야흐로 프로토스의 황금기, 외로이 테란을 이끄는 몇 안되는 선수 중 한명이 마침내 결승까지 오른 것이다. 임요환, 이윤열, 최연성, 그들의 그 전설 같은 이야기에 이어 여기 어린 소년이 다시 지휘봉을 들어올렸다. 전장 위로 모든 것을 건 테란이 숨가쁘게 진군하기 시작했다.

테란의 최종병기는 과감했다. 사령관의 공격이 막힌 바로 그 순간 그는 망설임 없이 본진을 뛰쳐나왔다. 역러쉬, 전진배럭, 벼랑 끝에 선 이영호의 진검이 새파랗게 송병구의 목 밑으로 들어왔다. 세 번의 경기 끝에 송병구는 마침내 GG를 선언했다. 무결점의 총사령관을 무릎꿇린 소년은 환하게 웃으며 우승컵을 받고, 이윽고 어머니와 얼싸안았다. 영원히 깨지지 않을 최연소 우승자의 탄생이었다.

리쌍택뱅. 사람들은 이제 그들을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양대리그를 석권한 리쌍은 이제 명백한 최강자의 반열에 들었다. 뒤이어 열린 아레나 MSL에서 리쌍은 완전히 반대편에서 치받아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결승에 만날 판이었다. 사람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사상최고의 경기, 리쌍록이 결승에서 다시 한 번 펼쳐질 참이었다. 임진록을 기대하던 그때 그 심정으로, 무섭게 치고 올라가는 폭군과 최종병기를 보면서 사람들은 탄성과 경탄을 반복했다.

동시에 진행된 EVER 스타리그에서 이제동은 이제 대놓고 저그가 아닌 제4종족을 지휘하고 있었다. 소설속에서나 펼쳐지던 두 부대 뮤탈 동시 컨트롤이 현실에서 벌어졌다. 신희승과의 두 번째 대결에서 이제동은 그저 뮤탈만으로 완벽히 상대를 농락하고 짓밟았다. 본진, 앞마당, 다시 본진, 그의 뮤탈이 맵을 가로지르면서 신희승은 아예 마우스를 놔버렸다. GG가 선언되었다. 이제동은 웃었다.

리쌍록. 모두가 이제 그 꿈의 대결을 회자했다. 그런데 MSL 4강, 이변이 벌어졌다. 정복자 박지수가 이영호를 꺾은 것이다. 사람들은 경악했고 리쌍록은 무산되었다. 이윽고 결승에 올라온 이제동을 박지수가 너무도 가벼이 눌렀다. 계속되는 대이변에 완전히 질린 이스포츠 팬들은 아예 결승 자체를 외면해버렸다. 리그는 흥행에 실패했다. 정복자는 빈 결승전에서 쓸쓸히 트로피를 받아들어야 했다.

그리고 EVER 스타리그에는 반가운 옛 얼굴이 트로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저그의 영웅, 투신 박성준이었다. 까마득한 후배이자 현존 최강 프로토스 육룡의 도재욱을 3:0의 스코어로 누르고 그는 다시 한 번 트로피를 차지했다. 투신은 투신이었다. 나이가 들고 세월이 흘러도, 역시 투신이었다.

비록 리쌍이 주춤했으나 사람들은 여전히 두 사람의 빛나는 기량에 반해있었다. 김택용에게는 아직 MSL 2회 우승의 빛나는 기록이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송병구 뿐이었다. 두 번의 준우승에 그친 그 하나만이 외로이 남아있었다. 절치부심, 이를 갈며 무결점의 총사령관은 통산 세 번째의 결승을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 캐리어, 리버, 드라군, 그의 손이 닿은 모든 프로토스가 장엄한 행군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사이 테란은 빛나는 황태자를 내세웠다. 임요환과 최연성이 길러낸 단 한 사람의 적통, 테란의 명가 T1이 낸 국본 정명훈이었다.

국본은 그야말로 테란에 충실했다. 그의 색깔은 곧 테란의 색깔이었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상대의 공격에 그는 굳세게 버텼다. 일찍이 마재윤에 맞선 이성은이 증명해 보였듯 방어에 전념한 테란은 막강했다. 그리고 상대의 공격이 저지된 바로 그 순간 정명훈의 테란은 빗장을 열었다. 묵직한 단 한 번의 포격, 시퍼런 살기로 드리워지는 정명훈의 칼날에 상대는 기어코 무릎을 꿇었다.

송병구는 같은 육룡 도재욱을 눌렀다. 정명훈은 대인배 김준영을 3:1의 스코어로 무릎꿇렸다. 이제 테란의 국본과 무결점의 총사령관은 결승에서 마주앉았다. 혈전이 펼쳐졌다. 2:0으로 사령관이 벌려놓았던 스코어를 국본은 기어이 동점으로 만들었다. 사상 최대의 역스왑인가, 아니면 송병구가 마침내 승리할 것인가. 전장은 적막에 잠겼다. 그리고 마침내 송병구의 대병력이 맵을 가득 뒤덮었을 때, 사람들은 경탄의 한숨을 터뜨렸다. 해설자들은 목이 터져라 송병구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헤드폰을 벗고, 정명훈은 묵묵히 GG를 선언했다.

송병구는 환하게 웃었다.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그를 사람들은 반갑게 맞이했다. 진정한 택뱅리쌍으로 거듭난, 총사령관의 화려한 귀환이었다. 그리고 맞은편에서 김택용이 통산 세 번째 MSL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프로토스는 기어이, 그 긴 세월을 견뎌내며 마침내 양대리그 우승을 이루어냈다.

프로토스의 황금기는 그렇게 화려한 막을 내렸다.


덧글

  • ApatheticSL 2010/02/17 02:12 # 답글

    음... 마지막은 강의는 제목이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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