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으로 만들기 사담

물론 아이팟터치를 산 것은 옛날 일이다. 그동안 이 비싼 기기의 뒷면에는 기스가 수도 없이 났다. 반짝반짝하던 스테인레스는 어디가고 이제는 수세미로 닦은 듯한 상처투성이의 쇳덩어리가 내 손에 남았다. 그동안 얼마나 조심했는지 모른다. 주머니에 넣을 때는 어디 안에 동전이 같이 들지 않았나 뒤져보고, 손으로 잡을 때도 왼손에 낀 반지가 기스를 낼까봐 오른손으로만 애지중지 다뤘다. 그런데도 이 꼴이다. 아마 내 성질대로 다뤘으면 이 녀석은 택배가 도착한 첫 날에 걸레가 되었을 것이다. 그나마 비싸서 조심스레 다뤘기 망정이지.

기스가 이정도 나면 마음이 편해진다. 대충 주머니에 넣고 다녀도 괜찮다. 왼손으로 꾹꾹 누르다가 반지가 기스를 내도 개의치 않는다. 어쨌거나 터치스크린은 멀쩡하고, 이제는 수세미로 문질러도 표도 안 날 녀석이다. 기계는 더이상 내게 조심할 것을 강요하지 않고, 그렇게 기계는 점차 "내 것"이 되어간다.

아버지가 새 차를 사신 게 벌써 작년이다. 예쁘게 잘 빠진 YF소나타를 사신 후, 아버지는 자동세차를 하지 못하신다. 차 도색이 벗겨질까 저어하셔서다. 내가 학교에 간 동안 익숙지 않은 손세차를 하셨다는 아버지 얘길 전해들으면서 나는 참 묘한 기분이 든다. 그 전에 쓰던 차, 지금은 폐차된 낡은 엑센트를 타실 때는 아버진 망설이지 않고 자동세차를 택하셨다. 몇 푼 안되는 돈을 내시고 편하게 운전석에 앉아 세차를 마치셨다. 그리고 이제 좋은 차를 사셨는데, 오히려 차가 아버지를 힘들게 하고 있다.

물론, 저 소나타가 영원히 아버지를 힘들게 하진 못할 것이다. 아버지가 아무리 조심하셔도 차는 점차 낡고 잔 상처가 생길 것이다. 도색도 벗겨져 언젠가는 예전 쓰던 엑센트 꼴이 날 것이다. 점차 세차 따위로 아버질 힘들게 하지 않고 예민하던 품새도 점차 무던해질 것이다. 그렇게 소나타는 아버지의 것이 되어 가리라.
 
새 물건을 살 때마다 항상 이것이 낡고 헤어질 것을 걱정한다. 새 책, 새 핸드폰, 새 MP3P. 물건이 오면 온갖 유난에 조심을 떨며 그것을 다룬다. 비싼 돈을 주고도 물건을 내 상전으로 모신다. 그리고 그 물건이 정말 낡아졌을 즈음에야 나는 물건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내 것이 된다.


덧글

  • 1 2012/10/16 19:26 # 삭제 답글

    공감가네요 ㅋ
    낡고 헤질수록 내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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