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그 치열한 전쟁의 역사 : 2010 소설


지난 역사 펼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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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 시즌을 앞둔 이영호에게 주어진 것은 망가진 소총과 녹슨 몇 대 전차에 지나지 않았다. 옛적 신명나게 휘몰았던 대군도 그 무렵 영광들도 남김없이 빛바래고 이지러진 가운데 헤쳐 나가야 할 광야만이 망연토록 멀었다. 지난 시즌을 7위의 형편없는 성적으로 마감한 그의 팀 KT롤스터는 그를 뒷받침하기에 한참 모자랄 뿐 아니라 되레 발목을 잡는 일이 비일비재한 지경, 하물며 긴 슬럼프가 이어짐에 테란은 점차 이영호라는 영광된 고유명사를 잊어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모든 것을 처음부터 쌓아올려야 할 신대륙에 발 딛은 그 어린 천재는 새로운 시즌을 바라 위대한 합중국을 구상했다.

마침내 0910시즌, 그의 아찔한 비상이 시작되었다.

프로리그가 시작됨과 거의 동시에 부흥한 이영호군단은 그 위대한 기치를 올렸다. 탄식과 경탄이 그의 발길 닿는 곳마다 터졌다. 0809 한 시즌을 부진해서야 비로소 "수준급"으로 끌어내려졌던 테란의 최종병기는 잃었던 스스로의 옥좌를 탈환하여 "최고"의 자리에 복귀했다. 그의 합중국은 서부로 진군했다. 한때 이영호와 더불어 삼테란이라 불리우던 신상문과 정명훈 이하 모든 테란이 치열하게 도전했지만 종족 최강자 회복전에 나선 "진짜" 이영호를 무너뜨리긴 천 년이 일렀다. 역전의 목전에서, 행여 이길 수 있을까 조금은 설레였노냐고 조소하며, 기어코 실낱같은 희망마저 찍어누르는 최종병기의 군단은 옛적 그 신속의 속력에 더불어 태산 같은 무게를 갖추고 있었다.

사분오열했던 테란을 일통一統시킴에 온 대륙은 그의 것이 되고, 점차 쌓아올려지는 승률은 광란의 수준에 달했다. 삼종족 70%와 80%, 어렵잖게 90%의 목전마저 오가는 미친 포스의 최종병기는 그의 KT를 이끌고 나머지 11개 게임단에 풀지 못할 숙제를 안겼다. 승리의 이영호를 패퇴시키지 아니하고는 광안리는 영영 꿈으로만 남을 일이었다. 온 게임단이 악이 받쳐 달려들고 저 어린 천재를 뒤집어엎고자 골몰했으나 그가 치든 KT의 깃발은 결코 쓰러지지 않은 채 가장 높은 고지에서 나부꼈다. 승, 승, 승, 간혹 패한 후에는 반드시 재차 승.

프로리그와 함께 개시된 양대 개인리그는 바야흐로 춘추전국이었다. 송병구는 망각의 늪으로 가라앉고 김택용은 그나마도 조롱거리가 되었다. 택뱅리쌍은 아득한 소리고 육룡의 수장 자리마저 갈린 지경이었다. 양대 어느 리그에서도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김택용을 두고, 사람들은 "어떻게 기적의 혁명가 김택신께서 양대 리그를 광속으로 탈락하실 수 있겠냐, 필시 결승자리를 미리 맡아두고 계시겠지" 운운하며 비아냥거렸다. 급기야 몇몇 호사가들 사이서는 코랜드파일날이라는 가상의 결승전이 꾸며지고 있었다. 양대리그를 석권한 인간계 최강의 플레이어를 맞아 신계 최강자, 김택신께서 직접 경기를 펼치신다는 수작이었다.

농담이 제법 그럴듯하게 성립할 수 있었던 것은 이영호가 진정한 "인간계 최강"의 자리에 다가서고 있기 때문이었다. 천둥 같은 걸음으로 한 걸음, 다시 한 걸음. 판도 바뀐 육룡의 세계선 김구현이 빛나고 있었다. 이영한과 김윤환, 한상봉이 저그의 선봉으로 맹약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패권다툼 위에는 오롯이 리쌍이 있었다.

시즌 처음으로 다전제에서 맞붙은 것은 EVER 스타리그서 벌어진 8강전이었다. 세 번의 짧은 일합승부서 이제동에 맞선 이영호는 벙커링이라는 비수를 빼드는 데 결코 망설이지 않았다. 시퍼렇게 갈린 칼날이 멍하니 얼이 빠진 폭군의 배로 쑤셔박혔다. 그가 배를 드러냈다고 알아챈 그 즉시, 깊게.

상대가 생더블 내지 삼해처리로 배 째보라고 드러내면 진짜로 칼을 빼들고 그 배 쑤시러 달리는 과감한 전선의 투사는, 이로 인해 일찍이 다른 별명을 가진 참이었다. 이른바 "꼼딩," 중학생 고등학생 어린 나이로 꼼수에 능한 어린 재략가. 이제 더불어 운영의 무게가 갖춰진 이영호는 온 천지를 상대로 두 개 세 개 전선을 펼치며 무섭게 전진하는 참이었다. 기적처럼 4강을 치고 오른 한상봉에 맞서, 최종병기 이하 합중국은 전 맵을 뒤덮다 모자라 두 개 집단군으로 나뉘어 진군하는 악몽같은 바이오닉 물량을 선보였다. 울먹이는 탄식으로 한상봉은 고개를 저었다. 백기가 올랐다. NATE MSL 가장 높은 자리로 최종병기가 나아갔다.

스타리그라고 감히 다를까. 지난 MSL의 우승자 김윤환은 그러나 4강 높은 자리에서 이영호를 막아낼 재목이 못 되었다. 그리하여 바야흐로 양대결승. 천재 이윤열과 본좌 마재윤 이후 처음으로 그 기적같은 자리에 오른 이영호의 발걸음은 인간 중 가장 높은 옥좌에 앉기를 채 수 걸음 남겨두고 있었다. 멀고도 가까운 그 수 걸음.

마침 맞은편서는 CJ 토스의 새로운 신성, 진영화가 결승에 오른 참이었다. 물량과 전투 어느 부분에서도 소홀하지 않은 프로토스의 새로운 정파, 절정에 오른 진영화의 롤러코스터같은 경기력이 이영호를 겁박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쿵, 쿵, 하는 기계화집단군의 우레 같은 포성 몇 번이 울리더니 명문 CJ의 성채가 무너졌다. 프로토스의 최종병기 캐리어를 띄우며 채 한 경기를 항전하던 진영화는 그러나 바로 다음 경기, 이영호를 상대로 감히 배를 쨌다가 흐르는 선혈의 주인이 되었다. 치즈러쉬의 비수를 피에 적신 채, 결코 이 정도 영광에 만족치 못하는 최종병기는 휘영청 돌아 MSL전선을 목도하고 있었다.

양대리그 우승까지 이제 한 번의 우승. 스타리그에서의 충격적인 패배를 수습하고, 기어이 김구현을 무릎꿇린 이제동이 그곳서 이영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우승을 위해 자리에 내린 이영호는 맞서 칼을 뽑았다. 혈전이 기대되었다. 다름아닌 리쌍록, 그 최고의 대진을 두고 MSL은 매직스튜디오라는 악수를 막 둔 참이었다. 단 천 명의 관중들 앞에서 질 낮은 CG로 어설픈 수작을 걸었던 해당 대회는 결국 최악으로 치닫고 말았다.

첫 경기서 예의 그 막강한 뮤탈리스크로 승리를 거머쥔 폭군과, 노동드랍의 기지를 발휘하여 그대로 온 전진을 휩쓴 최종병기의 기량은 각각 스스로가 절정에 달하였음을 증명한 참, 이윽고 3경기, 툭! 시커메진 화면에 이어 정전으로 말미암아 경기가 정지되었음이 알려졌다. 심판은 이제동의 우세승을 선언했다. 한동안 소란이 일었으나 아예 경기를 그만둘 수야 없는 노릇이었다. 허탈에 이어 분개한 이영호는, 마지막 4경기서 벙커링으로 돌을 던져버렸다.

역전의 기회를 빼앗긴 이영호도, 정당한 승리의 기회를 잃은 이제동도, 이 촌극을 지켜보던 온 팬들도 이를 갈며 분통을 터뜨리는 참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도 이영호의 분노는 각별했다. 양대우승의 목전에서 발걸음을 돌린 최종병기는 시퍼런 눈을 치뜨고 이내 길을 깨달았노라得道고 논하기 시작했다. 일차 양대결승에 올랐는데도 아직 부족했다는 양, 스타크래프트의 모든 것을 알겠다는 말을 감히 입에 올리고 있었다. 이영호 이하 합중국에 마침내 총동원령이 걸리기 시작했다는 신호탄이었다. 이제동의 제국을 압박하는 형국으로 푸르른 태평양 가득, 최고의 역량을 동원한 전선이 구축되고 있었다. 공습당한 진주만에서 한 걸음 물러선 최종병기의 합중국은 새로이 미드웨이를 준비하고 있었다.

준우승이었으되 준우승이 아니었다. 전날 광안리 3연패의 악몽이 이제동의 골든마우스를 빛바래게 하였듯 정전이라는 어이없는 결말은 이영호의 패배를 패배로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정전록 결승이 치러진지 채 며칠 되지 않아 프로리그에서 다시 이제동을 만난 이영호는 압도적인 실력으로 보복전을 감행한 차였다. 그의 개인리그 성적은 우승 한 번과 준우승 한 번. 마재윤의 기록에 타이를 이룬 최종병기는 결코 그에 밀리지 않는 포스를 동원, 온 스타판에 유래없는 팍스 바이플래쉬; 이영호에 기한 평화를 관철시키고 있었다. 혁명가가 일으킨 프로토스 연방은 해체되어 지리멸렬하고, 이제동을 수장으로 삼는 저그의 추축국들 역시 몸을 움츠리는 상황이었다. 오로지 저 높은 곳에 이영호의 합중국, 그 대적하기조차 공포스런 슈퍼파워가 도사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프로리그 각축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다시 개인리그가 시작되었다. 하나대투증권 MSL과 대한항공 스타리그 시즌1을 맞아 온 스타판에서 이영호를 상대로 한 대진격작전이 개시되었다. 광활한 대양에 길게 그어진 전선으로 전 프로게이머들이 각자의 군을 일으키고 있었다. 시대의 최종병기가 일찍이 11개 프로게임단에 낸 숙제는 이제 이백수십 프로게이머에게로 돌아온 참이었다. 숙제인즉슨; 이영호를 이겨라. 이기지 못하는 자, 스타판 그 어떤 영광도 차지하지 못하리라. 모든 영광의 목전엔 그가 버티고 있는 바.

그러나 0809시즌 악몽의 슬럼프를 빠져나와 기억을 되찾은 최종병기 이영호는 결코 쉬이 영광을 허락하지 않았다. 당신의 이름은? 이영호. 직업은? 승리자. 그리고 진정으로 이영호의 합중국은 압도적인 전력차를 동원, 연전연승했다. 스타리그서 어린 재기와 기세로 아성에 도전하려 했전 전태양은 그러나 이영호와의 높은 격의 차이에 밀려 격침당하고, 박세정은 농락에 가까운 전황으로 쓰러졌다.

반대편 MSL서 벌어진 이영호대 윤용태의 경기는 급기야 프로토스 역사에 길이 남겨질 치욕적인 양상이었다. 온 맵을 휘몰아 프로토스 병력을 가두고 덮치며 이내 쓸어버리고 마는 이영호 휘하 합중국 기갑사단은 온 토스팬들의 치떨리는 혐오를 받아 마지않았다. 그의 군단 앞에서는 전투의 신 윤용태의 유격대도 한낱 사냥감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또다시 양대결승. 스타판에 유래 없던 그 기적의 자리에 오른 최종병기를 상대로, 맞설 게이머가 진정 얼마 남지 않았다.

우선은 이제동이 있었다. 평상시라면 최강으로 대접받아도 남을 만한 실력과 승률을 갖추고도 저 막대한 슈퍼파워에 눌려 2인자의 치욕을 감내해야 했던 폭군은 MSL의 결승으로 다시금 부상했다. 정전록 아닌 제대로된 승리를 거두기 위하여 그가 이끄는 제국 함대는 진주만을 건너고 마침내 미드웨이로 몰려들었다. 다른 한편서는 명문 CJ의 다음 타자가 칼을 갈고 있었다. 재경기, 재재경기, 재재재경기를 치르며 힘겹게 리그를 딛고 올라선 김정우가 갈고 닦은 저글링 군단을 이끌고 진영에 도사린 참이었다. 웅비가 시작되고 있었다.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최종병기는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불리한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마음껏 전장을 박차 활주한 김정우의 저글링은 기어코 태산과도 같던 상대를 격파했다. 스코어는 2대3, 역스윕이었다. 준우승의 자리에 머무른 이영호는 탄식도 오열도 없이 다만 무언갈 더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전투의 패배가 전쟁의 패배로 이어지지 않게끔, 그의 군단은 패전에서 눈을 돌려 우회돌파를 감행하고 있었다. 즉시 이어진 하나대투 MSL 결승전, 2연속 양대 결승의 영광이 빛바래려 하는 와중,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을 가득 메운 팬들의 뜨거운 함성을 따라 무대에 오른 이영호는 그의 함대를 향해 당찬 호령을 뱉었다. 공격 혹은 맹공격!

스타리그에서의 부진 아닌 부진을 보고, 그래도 행여나 이길 수 있을까 얼마나 설레였으랴.

그러나 지휘봉이 떨어지고 합중국이 포화를 발함에 즉시 함대의 포연이 청천을 뒤덮었다. 지난 결승에서 정전록이나마 거둔 폭군의 승리가 송두리째 증발하고 있었다. 소설로 써도 개연성이 없노라 비웃음 살 만큼 이제동은 어이 없이 쓸려버렸다. 실낱같은 타이밍이라도 내줄라 치면 이영호의 해병대가 즉시 기지를 들어치고, 신들린 뮤탈컨트롤에는 발키리가 떠올라 용서 없는 카운터를 꽂았다. 마지막으로 꺼내든 히드라 올인에는 이영호 휘하 포병여단의 포격이 아낌없이 벼락쳤다. 정전도 없고 반전도 없이 다만 압도적인 실력차로, 스코어 3대0. 문자 그대로의 완패였다.

NATE MSL의 진주만에서 승리했던 폭군의 함대는, 하나대투 MSL의 미드웨이를 끝으로 깊고 푸른 바다 아득히, 남김없이 침몰하여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날부터 이영호를 대하는 이제동의 눈은 패기를 잃고 떨기 시작했다. 저 무서운 동생과의 전면전에 점차 폭군은 참을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와중 스타판은 요동쳤다. 승부조작 스캔들이 터지면서 내로라하는 게이머들이 불명예스럽게 퇴장했다. 와중에는 마에스트로가 끼어 있었다. 4회 우승에 오롯이 빛나는 그가 누구도 예상 못한 방법으로 내려앉자 온 프로게임계는 패닉상태에 돌입하고 있었다. 다섯 번째 본좌는 아직도 나오지 않았는데 네 번째 본좌, 본좌라인의 창시자와도 같은 그가 영원히 사라진 것이다. 그러면 그 빈 자리는. 되뇌면서도 팬들은 무심코 최종병기를 보고 있었다. 네 번째 본좌의 빈 옥좌는 그러면 누가.

위너스리그가 펼쳐졌다. 결승의 한 자리는 물론 불침의 KT가 앉아 있었다. 반대편은 엠비시게임 히어로의 것이었다. 이재호와 염보성, 두 테란의 선전에 힘입은 외인부대 히어로는 막 이영호의 아성에 도전하는 찰나였다. 마침내 결승전, 두 테란은 세 명의 KT 대원들을 패퇴시켰다. 그런데도 누구도 히어로의 승리를 확신지 못하는 것은 KT의 영도자가 남았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최종병기가 발사대에서 날아오르고, 꽂히는 즉시 격발하여 역삼킬. 우승컵을 거머쥔 이영호는 말가니 웃을 뿐 환희하지 않았다. 아직은 정규리그가 남아있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광안리에마저 이영호가 섰다. 폭군이 3연패로 침몰했던 그 자리에 이번에는 최종병기가 앉아 칼을 뽑았다. 시즌 1위의 자리를 사수한 KT 앞에 역시 챔피언 T1이 나서고 있었다. 임요환과 최연성 두 명의 본좌가 건재하고 도택혁명으로 이어지는 막강한 선두들도 명불허전이랄 밖에 없는데, KT 역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화력을 갖춘 중이었다.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이어가면서도 T1은 초조하고 KT는 여유작작이었다. 그 뒤에는 이영호가 있었다. 언제든 손가락만 가리키면 목표지점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슈퍼파워가 그들 팀에 속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박재혁이 나섰으나, 이영호의 합중국 역시 체제를 가동했다. 이영호는 이제동이 아니었다. 그는 승리하였다. 압승이었다.

마침내 KT는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저 까마득한 홍진호의 시대로부터 내려오던 준우승의 징크스도 이제는 남김없이 깨졌다. 초자연의 저주도 이영호의 손아귀 안에 있었다. 기존의 관습을 갈아엎고 새로이 규범을 창조하는 젊은 통령의 군단은, 다시금 양대리그를 치받아 오르고 있었다. 최종병기가 차지하지 못한 마지막 영광이 저곳에 있었다.

빅파일 MSL과 대한항공 스타리그 시즌2, 양대 개인리그를 대하여 리쌍은 전선을 펼쳤다. 양대 리쌍록이라는 미증유의 사태를 막기 위해 전 프로게이머가 절치부심으로 밀려들고, 아직은 건재한 폭군 이제동과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슈퍼파워 이영호는 그들 모두를 차례차례로 짓밟았다. 마침내 4강, 리쌍을 상대로 동원될 수 있는 최강의 전력 넷이 일제히 칼을 뽑아들었다. 스타리그 전승의 아찔한 기록을 쌓아올린 뇌제 윤용태, 광안리의 기억을 곱씹어 보복전을 감행하고자 하는 국본 정명훈, 전 프로토스의 자존심을 걸어 떨쳐 올라온 무결점의 총사령관 송병구, 바야흐로 저그의 재앙으로 군림하는 슈퍼컴퓨터 이재호. 네 명의 투사에 맞서 리쌍은 한 판 대전을 열어젖혔다. 혈전이 벌어졌다.

이영호의 전쟁은 진압작전이었다. 치받아 올라오려는 정명훈과 윤용태를 맞아 그는 아낌없는 전력으로 둘을 찍어눌렀다. 그나마도 호각의 전투를 벌인 정명훈은 끝내 이영호의 차원이 다른 대처능력에 판단능력을 상실, 채 어디 병력을 들이받아야 할지조차 망설이다가 무력하니 숨통이 끊겼다. 대 윤용태전의 양상 역시 지난 MSL과 다르지 않았다. 이영호를 상대로 프로토스란 한 줌 모래성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동이 상대해야 하는 적은 보다 벅찬 맞수들이었다. 이름조차 제대로 써 주지 않는 무관심의 대명사였던 이재호는 그러나 2010년도, 저그의 학살자이자 종결자로 거듭났다. 슈퍼컴퓨터라는 스스로의 별명마냥 10101010으로 이어지며 간신히 50% 승률을 보장하던 그의 승패 패턴은 이내 110110110110으로, 1110111011101110으로, 마침내는 90%에 달하는 미친 승률로 화했다. 저그의 시대를 매듭짓는 스카이넷이 되어 저그의 수장에게 도전하는 이재호의 악몽같은 대저그전 운영은 패배를 잊고 오로지 승리로 달하는 기천의 방법을 쏟아내고 있었다. 다른 한편의 송병구 역시 만만하지 않았다. 절치부심으로 올라온 총사령관의 프로토스는 워포그 너머에서 도사리며 이제동의 숨통을 노리고 있었다.

이들에 맞서 이제동은 난전도 장기전 운영도 모두 포기했다. 보다 높이 올라가기가 너무도 절실했던 폭군은 하늘의 도움을 바라 승부수를 띄웠다. 전쟁이 벌어졌다. 치열한 전투에서는 이제동이 모두 패하였으나, 전쟁의 승리자는 결국 그가 되었다. 마침내 양대리그 결승전에서 도합 10전제 리쌍록이라는 미증유의 대전이 개막했다. 본좌결정전이 시작되었다.

수세에 몰린 폭군 이제동의 전쟁은 본토방위전이었고, 기어코 본좌 혹은 그 이상의 마지막 영광을 거머쥐려 하는 최종병기 이영호의 전쟁은 정복전쟁이었다. 함대가 도열하고 함재기가 날아오르며 MSL의 일전이 시작되었다. 골리앗과 마린으로 전선을 밀어낸 이영호의 타이밍러쉬는 새파랗게 날이 올랐고, 이제동은 전 맵을 뒤흔드는 대전략급 운영으로 스스로의 장기전능력이 아직 살아있음을 선보였다.

그리하여 마지막 제5경기, 워포그를 꿰뚫어본다는 이영호의 전략감각은 전장의 마찰을 딛고 그 틈, 찰나의 틈을 찾아내 비수를 꽂았다. 적이 가장 허할 불과 몇 초의 시기를 잡아채 1시와 12시, 앞마당을 밀고 내려오는 최종병기 휘하 백전불태의 합중국 바이오닉 군단은 이제동의 히럴 조합을 불살라버리고 그의 기지를 휩쓸었다. 폭군은 분전하였으나 차마 미치지 못했다. 제 것인양 다시금 MSL의 영광된 우승컵을 거머쥔 채로 최종병기는 설핏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리고 이제동은 몸서리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두 번의 결승 패배는 점차 폭군에게 트라우마로 각인되고 있었다. 양대결승 중 아직 한 번의 리쌍록이 남은 상태였다. 다시 치러야 할 다섯 경기를 남겨두고 최종병기의 파해법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불가능한 과제를 두고 이제동은 다전제에서만 십수 경기를 치르는 중이었다. 막연하던 공포는 명백한 실체가 되었고 날이 갈수록 또렷해지며 형상을 갖추는 와중이었다. 그리고 비로소 분명해진 사실 하나; 이영호 휘하 불패의 합중국은, 슈퍼파워를 넘어 세계제국을 꿈꾸고 있었다.

상하이의 해가 지고 비구름이 개자 말끔히 씻긴 고운 별빛 하늘이 펼쳐졌다. 온게임넷이 준비한 상하이, 개중에서도 동방명주 아래 최고의 무대가 막을 올렸다. 본토의 반절을 빼앗긴 이제동이 자리에 앉고 저편서는 이영호가 지휘봉을 들어 겨누는데, 그를 통령으로 삼는 대함대가 집결하고 있었다. 마지막 반절의 영광마저 차지하려는 최종병기 이하 일대 웨이브에 맞서 폭군 이제동은 모든 저그에게 남겨진 모든 힘과 지혜를 집결시켰다. 온 종족의 마지막 희망으로 떠오른 그는 비로소 저그를 대표하여 저항군이 되었다. 홍진호가 되고 조용호가 되고 테란에 일찍이 패배한 수많은 저그들이 되어, 테란 합중국의 오버파워에 핏빛 기치를 올렸다. 나부끼는 저그의 깃발을 향해 테란의 포화가 내려치기 시작했다. 우레가 울렸다.

폭군은 저 이영호라는 난제를 파해할 세 가지 수를 뽑아들었다. 하나는 버로우 저글링을 이용한 대기습. 다른 하나는 4드론 승부수. 마지막 하나는 오버로드를 동방한 대대적 공습. 첫 수가 막히고, 둘째 수가 통하자, 이제동의 온 사고는 둘째 수에 집중되었다.

3경기, 재차 4드론 카드가 뽑히고 있었다. 그를 감행하는 폭군의 참담한 심정은 이도 아니면 패배하리라는 저주와도 같은 직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짧은 비수를 뽑아들고 고함치며 치달리는 이제동에 맞서, 이영호는 방패를 들어올리고 있었다. 이제동이 홍진호와 조용호를 대신한 와중 이영호는 이윤열과 최연성이 되었다. 삼종족 가운데 가장 앞선 방어능력을 앞세워 벙커를 짜올리고 SCV를 동원한 방어전에서 최종병기는 승리를 거머쥐었다. 마지막 저글링이 잡히고 비수가 꺾인 즉시, 폭군은 항복을 선언했다. 울음같은 한숨이 그의 목에서 터져나왔다. 그리고 이제 4경기.

난전 그리고 난전이었다. 버티고 선 이제동에게 이영호는 시종일관 포격을 내리꽂고 총탄을 들이부었다. 벙커링이 시도되고, 뮤탈리스크를 꿈도 꾸지 못하게끔 하는 제압군이 센터를 활보했다. 점차 드리우는 짙은 패색에 폭군은 마지막 카드, 기습 드랍을 뽑아들었다. 그제까지 그가 정면으로 올 것으로 예상하고 겹겹이 벙커를 짓던 이영호는,

그 테란의 최종병기는, 이제동이 드랍을 결심한 콤마 일 초의 순간, 스캔조차 쓰지 않은 채 다만 천부적인 전장감각으로 워포그를 헤쳐 상대의 수를 꿰뚫었다. 이윽고 합중국의 대군단이 본진으로 회군하기 시작했다. 뒤늦게 날아드는 저그의 병력에 아낌없는 최고의 화력을 퍼붓기 시작했다. 마린, 메딕, 탱크, 스웜마저 무력화시키는 테란 지상화력의 마지막 형태 조합이 저그의 모든 것을 찍어누르고 불사르기 시작했다.

이내 이제동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두 차례 드랍은 모두 막히었다.

그 다음은 다만 이영호가 펼치는 기교의 향연에 지나지 않았다.

디펜시브 드랍쉽. 경이로운 마린 컨트롤. 결코 역전을 허용치 않는 치밀한 맵 장악력. 기적같은 멀티테스킹. 기어이 기어이 붕괴되는 제국을 목도하며 이제동은 울먹이고 있었다. 정전록에서 단 한 번의 승리를 거두고 마침내 세 번을 거듭 패배한 최종병기를 앞두어 폭군은 차마 통곡을 삼키고 흐느낌으로 참아내려 안간힘을 썼다.

폭군의 백기가 오르기까지 엄재경이 본좌를 운운하길 수어차례.

gg 선언을 본 즉시 자리를 박찬 최종병기는, 물밀려 다가드는 스타크래프트 10년의 역사를 앞두고 무대를 나섰다. 골든마우스를 거머쥐었다. 드높이 들려 찬연하게 빛나는 그 금빛 아름다운 영광을 마주한 그의 얼굴에 비로소 당찬 웃음이 흘렀다. 돌아선 앞에는 옥좌가 준비되어 있었다. 온 스타판이 이론을 제기치 아니하고 경배했다. 맵이며 포스며 갖은 핑계로 그 자리를 내어주려 하지 않던 불만 많은 호사가들마저 다만 경의와 존경으로 고개를 숙였다. 임요환에 밀리지 아니하는 재기, 이윤열과 타이를 이룬 미증유의 양대 동시 우승, 최연성에 준하는 팍스 바이플래쉬를 이룩한 위압감, 마재윤이 감히 시도조차 못한 삼연속 양대 결승진출. 258명 전 프로게이머에 맞서 모든 영광을 독차지한 그 어린 천재에게 그날, 위대한 라인의 뒤에 스스로의 이름을 새길 마지막 영광이 주어졌다.

오랜 시간 비었던 마지막 본좌의 자리, 비로소 최종병기 이영호는 이 긴 투쟁동안 만인이 바라 마지않던 옥좌에 앉아 파아란 눈을 내렸다. 전쟁이 막을 내렸다. 전장에 홀로 선 절대강자는 그의 군단을 거느린 채로 도사려 다만 드높은 옥좌 위에서 웃고 있었다. 본좌 이영호는, 그렇게 전설이 되었다.



다시 09

어느 금요일 오후, 고려대학교. 프레젠테이션을 바꾸고 젊은 교수는 연단에 섰다. 육군사관학교에서 왔다는 그는 이곳에서 클라우제비츠를 강연하고 있었다. 강의실을 가득 매운 70여명의 학생들에게, 그는 흘끗 눈을 들어 웃었다.

"군사적 천재, Military Genius는 전쟁을 지배하는 사람이다."

그는 화면에 떠오른 단어를 짚었다. 마찰[Friction]. 교수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을 그 한 단어로 설명했다. 물 안을 걷는 사람처럼, 팔도 다리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만이 자욱히 깔린 극한의 공간이 바로 전장이라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불확실성과 예측불가능성을 강조하던 그가 갑자기 이상한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전쟁의 불확실성, 우연성, 예측불가능성을 천재는 모조리 극복한다. 우연조차 그의 지배를 받는다. 불확실성조차 그는 통제할 수 있다."
"교수님."

손을 든 그 학생에게 교수는 턱을 들었다. 그것을 허락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그 키가 작은 학생은 예의 그 낮고 현학적인 목소리로 반론했다.

"전장의 마찰이 그토록 손쉽게 극복된다면 전쟁론은 도대체 왜 마찰을 강조했던 겁니까?"
"쉽다고 얘기하지 않았다. 천재가 흔하다고 생각지 말도록."

말을 끊고 교수는 칠판으로 돌아섰다. 칠판을 긁는 분필소리만이 교실의 적막으로 흘렀다. Coup d'oeil, Determination, Presence of mind, Staunchness, Endurance, Selfcontrol, Sense of localty. 교수의 눈이 흘끗 이쪽을 향했다.

"고도의 지적 능력, 결단력, 침착성, 강인함, 지구력, 자제력, 전장감각."

학생들 사이에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말도 안 되는 조건이었다. 키득거리는 그들에게 딱 교수는 힘주어 말을 이었다.

"이 탁월한 능력들을 모두 갖춘 사람을 우리는 군사적 천재라 칭한다."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소리치는 학생에게 교수는 글쎄, 하고 눈을 내렸다. 전쟁사학의 권위자, 클라우제비츠의 전문가인 그의 얼굴로 문득 엷은 웃음이 번졌다. 정말 없을까? 학생에게 다가선 교수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마법같은 그 사람의 이름을.

"임요환은 어땠지?"


스타크래프트, 그 치열한 전쟁의 역사 완결


덧글

  • 하저로어 2010/09/14 03:17 # 답글

    어휴 도박본좌 브로커 마의 이름을 다시 보고싶진 않지만 스타크래프트의 역사에서 어쩔 수 없이 볼 수 박에 없군요..
  • kidovelist 2010/09/14 22:34 #

    이모저모로 남긴 흔적이 워낙에 크다보니 어쩔 수 없이 입에 오르내리게 됩니다.
  • 하트큐브 2010/09/14 07:23 # 답글

    온풍신사건이 요기잉네.
  • kidovelist 2010/09/14 22:35 #

    택신의 제자이신 김, 용택 미테서 일하고 이치
  • 임덕수P 2010/09/14 09:25 # 답글

    꼼이 본좌라니.......
  • kidovelist 2010/09/14 22:36 #

    양대우승까지 하고 보니 천상 반골기질인 스갤러들마저 인정하는 추세라서...
  • asdf 2010/09/14 14:55 # 삭제 답글

    본좌라는 말과 개념은 마조작과 함께 영원히 무덤으로 보내야 할 말
  • kidovelist 2010/09/14 22:37 #

    그래도 라인마저 없애긴 아까우니까 마재윤 본인만 빼고 임이최호로 매듭짓자. 근데 써놓고 보니 전부 테란이네? 안되겠다, 불곰 까자.
  • ㅂㅈㄷㄱ 2010/09/15 00:20 # 삭제

    이바닥에는 황신이란 유일한 신이 있고

    그분의 의지로 우승하게 된 선택받은 행운아들이 있을 뿐

    본좌론이니 최강테란이라느니는 헛된 것일 뿐
  • kidovelist 2010/09/15 00:49 #

    시끄러, 오로지 벙커신만이 전지전능하시다.
  • Simba 2010/09/15 10:21 #

    마재윤이 조작으로 게이머리스트에서 사라지긴 했지만, 과거 업적을 보면
    본좌는 없애기 좀 그래요 사실.
    스타판 역사로 보면 마재윤이 저그에 혁명을 일으킨게 임요환이 테란에 혁명을 준거나 마찬가지죠.
    저그가 암울했던 시기에 새로운 길을 제시했으니까요.
  • kidovelist 2010/09/15 21:27 #

    그래도 공과 과를 따지면 과 쪽이 훨씬 무거운지라, 저는 요즘 아예 잊으려고 하는 형편입니다.
  • 독백 2010/09/16 20:42 # 답글

    이제 그 누구도 '최종병기'라는 닉네임에 토를 달지 못할 겁니다. 아니, 어쩌면 최종병기로는 모자라다고 할지도...
    스1 프로게이머 관련 글은 대개 딱딱하고 차가운 느낌의 글이 많았는데 오랜만에 이런 소설 같은 느낌의 글을 읽으니 재밌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고... 그렇군요.
  • kidovelist 2010/09/25 21:12 #

    안 그래도 최종병기로는 부족하다며 농담반 진담반으로 갓[神]영호 이야기가 나오는 판국이네요.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 주술사 2010/09/16 22:21 # 삭제 답글

    최종병기를 넘어서서 "궁극의 병기"가 아닐까 합니다.
  • kidovelist 2010/09/25 21:12 #

    되레 수식어가 부족할 지경이니 이영호 선수의 포스를 알 만 합니다.
  • asianote 2010/09/22 18:53 # 답글

    하지만 스타1 게임리그는 역사상 진정으로 최대 위기에 봉착하는데...
  • kidovelist 2010/09/25 21:17 #

    어~ 돌아가면 클났네이거는~!(야~) 그거헐~왜 들어가냐고! 쨔인 스파이더마인 심어노코!!야~~ 이거 그냥(그냥)!! 그냥!(그냥!)!!(아~박정훈~) 어~그런탱크잃으면! 으네네! (아~ 망했어요~) 그랬쟈인 구해놓고!(망했어요~)애이 심하들어가면(망했어요~~)웃어지나 그래~! #@(망했어요~)마이씨~! 마이씨부러구러 쭈쭈광쭈쭈광!$@뜨아이#%!!뜨에이!어찌 막을 빌드 방법이 없어요~ (망했어요)박정훈~ (절규)아으~피해가 너무크다아아~~~|
  • 마시멜로 2010/12/11 10:10 # 답글

    GSL도 써주시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asdf 2012/08/03 15:40 # 삭제 답글

    내일이면 스타1 마지막인데 거기까지는 연재하고 완결될줄 알았는데,,
    허영무 2연속우승이나 정명훈전승우승같은거는 드라마틱하지 않나요?
    그리고 김캐리의눈물같은사건이요. 혹시 추가연재하실생각없으신지...(글이 매우 훌륭해서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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