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역사를 따라 흐르고 사담

고등학생 시절 국사 및 근현대사 과목을 공부하며 내가 가장 손쉽게 동원하던 방식은 암기였다. 그야말로 “이순신 신발사이즈부터 사임당 가슴사이즈까지,” 연표로도 모자라 의의마저 외워버리며 건성으로 익히던 역사는 내게 있어 건조한 활자들의 나열에 불과했다. 근현대사도 마찬가지; 내가 미처 태어나기도 전에 벌어진 광주항쟁은 책으로만 익혔다는 점에서만큼은 나당전쟁과 다를 바 없었고, 유신시대나 신라왕조나 모두 한없이 옛적의 전설에 지나지 않았다. 격동의 시대를 몸소 경험하신 부모님과 오로지 교과서로만 사건을 재구성한 나의 차이는 같은 사건을 살아있는 역사로 기억하는지 혹은 죽은 역사로 해부하는지의 차이로 직결됐다.

다만 세대를 넘어 전해진 기억들은 있었다. 최루탄 샛노란 연무로 자욱한 학교를 다니신 부모님께서 내게 말씀하신 경험들이 적지 않았다. 전후시대의 기억, 군부독제의 기억, 뜨거웠던 민주화운동의 기억들은 잿빛으로 보였던 역사 속 사건을 때로 불꽃처럼 타오르게 만들었다. 기억들에 더불어서는 역사의 현장에서 불리던 노래들이 있었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를 부르며 고무줄놀이를 하던 소녀들 가운데는 어린 어머니께서, 서슬 퍼런 휴교령에 우리 대학이 문을 닫자 갈 곳을 잃은 학생들 가운데는 젊은 아버지께서 섞이셨던 바였다. 아버지께서 장중한 바리톤의 음색으로 처음 들려주신 “타는 목마름으로”와 “임을 위한 행진곡”이 어린 내게 잊지 못할 기억으로 각인된 것처럼; 나로서는 알지 못하는 과거, 어렴풋이 전설로만 여겨지는 시기는 부모님께서 들려주신 말씀과 노래로 문득 생기를 띠고는 했다.

내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 닿을 수 있는 가장 오랜 전설은 1960년대, 전쟁의 상처가 가시지 않은 시기였다. 낭랑히 군가를 부르며 고무줄을 넘나들던 유년시절 어머니와 친구들이 그곳에 계셨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흐르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떨어져간 전우야 잘 자라” 십여 년이 지난 그때껏 한국은 전후戰後였다. 전쟁의 경험과 고조된 북의 위협에 맞서 자연히 안보의식과 애국심을 고취시킬 목적으로 갖가지 노래가 만들어져 불렸고, “이순신 장군” 노래 역시 이와 다르지 않았다. “이 강산 침노하는 왜적의 무리를/ 거북선 앞세우고 무찌르시어/ 이 겨레 구원하신 이순신 장군/ 우리도 씩씩하게 자라납니다”

월남파병을 즈음해서는 학교가 나섰다. 아직 저학년이시던 어머니를 비롯해 많은 수가 월남이 어딘지도 모르던 학생들은 다만 환송행사를 위해 운동장에 모였고, 함께 “파월장병을 위한 노래”를 배웠다. 교장선생님은 우리 군인들이 먼 나라에 가서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는 훈사에 이어 이들 노래를 부르게 하셨다. “자유통일 위하여 조국을 지킵시다/ 조국의 이름으로 임들은 뽑혔으니/ 그 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 가시는 곳 월남 땅 하늘은 멀더라도/ 한결같은 겨레 마음 임의 뒤를 따르리라/ 한결같은 겨레 마음 임의 뒤를 따르리라”

1972년경 개헌 국민투표를 앞두고는 유신헌법을 홍보하기 위한 방편으로 “유신헌법 노래”가 만들어져 도외 학교에서 아름아름 가르쳐지고 있었다. “10월 유신은 김유신과 같아서/ 삼국통일 되듯이 남북통일 되고요// 근대화에 목마른 바가지에 물 떠서/ 목마른 자 물 주는 바가지가 된대요” 곡조는 경쾌한 동요 “산토끼”와 같아 고무줄놀이에 역시 인기가 있었다는데, 이같은 우스꽝스러운 수작이 정작 유신헌법의 출범에 얼마나 긍정적 영향을 끼쳤는지는 미지수였다. 독제체제가 가시화되고 점차 박정희와 대통령이 같은 말처럼 여겨지던 시대였다.

“과학 하는 마음으로 능률 있게 일하고/ 사람마다 손에 손에 한 가지씩 기술 익혀/ 부지런한 하루하루 소복소복 부는 살림/ 세상에 으뜸가는 복된 나라 이루세// 과학으로 이치 찾아 새로운 것 발명하고/ 겨레의 슬기 모아 산업 크게 일으켜서/ 천불 소득 백억 수출 무럭무럭 크는 국력/ 세상에 으뜸가는 힘센 나라 이루세” 1973년 발표된 “과학의 노래”는 이처럼 근대화와 산업화의 포부를 드러냈으나, 우리 아는 바와 같이 국민들 사이에는 시나브로 자유에 대한 열망이 함께 비등해 가고 있었다. 시대는 바뀌고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대학에 입학하실 시점, 때는 “타는 목마름으로”와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불리고 있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그리하여 마침내 역사는 민주주의가 목표 아닌 전제로 변한 대한민국, 천불 소득 백억 수출이 아닌 이만불 소득[1] 사천억 수출[2]의 대한민국에 이르렀다. 노래도 저와 같이 역사를 따라 굽이쳐 흐른 바였다. 이에 자유와 풍요의 시대를 살아가며 교과서를 돛단배삼아 역사의 어두운 바다를 여행하는 어린 항해사로 하여금 지난 세대가 겪었던 것들, 느꼈던 것들을 어렵게나마 엿보게 도와주는 것은 내게 있어 때로 이들, 역사와 함께한 노래였다. 책을 읽다가도 문득 앉은 자리에서 입안으로 불러보는 낯선 곡조들에 하나의 활자였던 그에게도 의미가 어리고는 했다. 비로소 꽃이 되어 다가들고는 했다.

[1]“1인당 국민소득 3만弗 순항할까; 올해 2만달러 다시 돌파…내년 2만3000달러 예상” http://news.mk.co.kr/v3/view.php?year=2010&no=687985
[2]“허경 원장 "국제표준을 장악하라"” http://www.ajnews.co.kr/view.jsp?newsId=20110211000095


덧글

  • 루데일리 2011/02/17 02:34 # 삭제 답글

    주제가 어긋나긴 했지만

    국사 근현대사는 흥미는 있어도 문제로나오면못풀겠어요 ㅠ 진짜 말그대로 암기ㅠ

    그래서 법과 시회랑 경제 이런거 준비하고있습니다 ㅋㅋ

    님 써주시는 글덕에 공부할맛이 나는..건 오버인가요 ㅋㅋ
  • kidovelist 2011/02/27 12:43 #

    졸문을 그렇게 좋게 보아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헤헤.
  • 마시멜로 2011/02/17 14:56 # 답글

    나중에 우리나라 가요사 공부하는 후손들이 소위 그 '욤마욤마'를 보고서 무슨 생각을 할 지....
  • kidovelist 2011/02/27 12:43 #

    는 훼이크고 사실 외우주의 악마를 소환하는 의식이었다는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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