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고한 민간인 따위는 없다”: 영화 “반딧불의 묘”에 부쳐


영화 “반딧불의 묘火垂るの墓”를 단순히 일본의 전쟁범죄를 피해자연然하며 외면하고자 하는 저급한 선전 선동 영화로 이해한다면, 이는 작품에 대한 온당치 못한 평가가 될 것이다. 실제로 전쟁의 참화 속에서 죽음을 맞는 어린 남매의 비극을 통해 반전이라는 주제를 훌륭히 역설했다고 평가 받는 해당 작품은, 정치적 영역에서는 전쟁의 정당성을 역설하거나 영미를 필두로 한 연합군의 대일본 공습을 비난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는 군국주의진영과는 정 반대 진영에 서 있고, 작품의 감독인 타카하타 이사오高畑 勲 본인은 일본의 전쟁범죄를 합리화하는 악질 우익이라는 국내 일각의 비난과는 달리, 오히려 일본의 평화헌법인 헌법 제9조를 수호하기 위한 단체 “9조의 회九条の会”의 영화인 부문 발기인으로 활약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작품 내적인 면에서나 외적인 면 모두에서 반전영화란 점에 의심의 여지가 거의 없는 “반딧불의 묘”가, 그러나 대한민국사회 전반에서 필요 이상의 거센 비판에 직면한 현재의 상황은, 반전이라는 주제 자체가 아닌 주제를 전하기 위해 영화가 사용한 소재, 일본이 겪은 전쟁피해를 주된 서사로 삼은 사실 자체에 대한 진정한 피해자로서의 거부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거부감은 분명 과열되고 비합리적인 면이 있으나, 전적으로 부당하지만도 않다. 물론 일본인을 대상으로 하는 반전영화에 있어 전쟁으로 일본인이 당하는 비극을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효과적인 방식은 없으리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으나, 작품이 제작자의 선의와는 다르게 해석될 여지를 남긴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고, 이같은 관객의 오해는 사실 해당 작품의 구조적 한계가 자초한 면이 크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가 담고 있는 반전이라는 주장,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조소와 비판은 작품 내 곳곳에서 노골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빈번하게 발견된다. 제국 해군 장교의 자녀들로서 전쟁 중에 얻은 과실로 유복한 생활을 누리던 주인공 남매가 다름 아닌 전쟁에 의해 점차 파멸해 간다는 주된 서사부터가 이미 역설적이고, 미군의 폭격으로 불타는 거리에 서서 “천황 폐하 만세!”를 연창하는 군경, 절망적인 전황은 전혀 알지 못한 채 이미 격침당한지 오래인 제국 함대만을 믿고 있는 주인공 세이타清太의 대사 등에서 이성을 유지하고 있던 관객이라면 어렵지 않게 제작자의 진의를 엿보는 것이 가능하다. 문제는, 세이타 남매의 너무도 극심한 비극이, 관객의 이성 자체를 마비시키고 비극의 논리적 인과관계에 대해 고찰할 여유를 잃게 만들어, 종국에는 영화의 주제 자체를 압도하기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원인은 주인공을 14세 소년과 4세의 소녀로 설정한 작품 자체의 본질적 한계이다. 전쟁의 배경과 성질을 파악하기에는 불가능한 어린 나이의 소년의 시각에서 묘사되는 작품 내의 전쟁은,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시작된 국가간 충돌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불가항력적 천재지변과 같이 묘사되며, 군인과 같은 실체적 적은 전혀 등장하지 않고 오직 소이탄을 내리는 폭격기만이 재난처럼 엄습하는 묘사는 전쟁영화라기보다는 오히려 전형적인 재난영화의 그것과 유사하다. 세이타 남매를 비극에 이르게 한 전쟁은 분명 천재지변이 아님에 불구, 오직 인재人災인 그같은 일대 재앙이 왜 닥쳐왔는가라는 중대한 질문은 작품에서 생략되어버리고 있다. 이러한 불완전한 묘사는 주인공을 고작 14세 소년으로 설정한 순간부터 필연적이었다. 만일 주인공 세이타가 당장 폭격이 가해지는데 불타는 거리에 서서 등에 업은 4살 동생과 함께 현재의 불리한 전황과 자국민의 희생을 초래하는 일본의 군국주의를 냉철하게 비판하고 있었다면, 당황하는 것은 도리어 관객 측이었을 것이다. 분명 불가피한 생략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불가피하게 포기된 생각보다도 많은 묘사가, 바로 작중에서의 전쟁의 성격을 모호하게 해버리고 있다. 주인공의 어린 나이는 작품의 비극성을 극대화하는 데는 분명 효과적인 장치였으나, 결국 그것이 도리어 작품 전체의 구조적 한계로 작용한 것이다. 본래 작품의 주제가 단순히 “세이타 남매가 불쌍하다”가 아닌 “이러한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 전쟁은 있어선 안 된다”였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관객이 당장 어린 세츠코節子의 죽음에 눈물짓느라 전쟁 자체에 대해 생각할 여유를 잃은 순간 이미 작품은 일종의 본말전도에 직면한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관객으로 하여금 “전쟁은 무섭구나” 정도의 감상은 유도했을지 모르나, 이는 운석이 충돌해 지구가 멸망한다는 내용의 재난영화를 관람한 관객이 “운석은 무섭구나”라면서 극장을 나서는 것과 하등 다를 것이 없는 추상적 감상이다. 남매의 비극의 원인이 굳이 전쟁일 필요도 없이 홍수나 지진이라도 별반 다르지 않게 된다면, 반전영화로서의 해당 작품의 주제의식은 근간부터 뒤흔들린다. 세이타의 안이한 현실 인식과 판단 착오가 비극을 불러온다는 내용이 전쟁을 시작해 스스로 비극을 자초한 일본의 은유라는 현학적 해석을 도출할 수는 있지만, 참혹한 폭격으로 모친을 여의고 빈곤 속에서 죽어가는 어린 남매를 보며 제정신을 유지하고서 이런 이성적인 비판을 가할 냉혈한 관객은 많지 않다. 게다가 당시 극동 최강의 대국이던 일본의 전 지구적 전쟁범죄가 고작 14세 소년의 유치한 의식수준에서 초래된, 숙모의 집을 나가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사소한 실수였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황당한 역사인식이 된다.

“반딧불의 묘”의 배경이 되는 태평양전쟁은 ‘일어난 전쟁’이 아닌 ‘일으킨 전쟁’이었다. 지진, 해일 등의 천재지변과 본질적으로 성격을 달리 하는 전쟁이라는 재앙의 당시 책임은 전적으로 선전포고도 없이 진주만을 공습한 일본에 있었고, 제국이 파탄나 몰락해가는 작품내 시점 이전에는 바로 그들 제국이 극동 전체를 지배하에 두고 가혹하게 통치하던 시대가 있었다. “반딧불의 묘”는 가해국과 피해국을 구분 없이 초토화하는 전쟁이란 압도적 비극을 다루는 데는 성공했지만, 작품의 주인공을 14세의 소년으로 설정하면서 전쟁의 원인을 다룰 의무를 사실상 방기해버렸고, 복잡한 전쟁의 도식을 오직 일본이라는 생활의 터전과 그러한 터전을 황폐화시키는 영미의 폭격기로만 단순화하며 그러한 압도적 비극이 가해국 일본으로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을 묘사하는 작업에 소홀하였다. 물론 그런 비극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지 비극의 원인과 책임관계가 굳이 문제되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도 있으나, 이는 전범국가의 전쟁영화에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변명이다. 확실히 아직 4세에 불과한 어린 소녀와 14세의 소년이 전쟁으로 인해 아사한다는 것은 원인관계를 떠나 대단히 비참한 상황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러한 비극의 훌륭한 묘사가 일본을 무고한 피해자로 보이게 하는 데에 본의 아니게 일조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아니; 분명히 참혹하기는 하다. 인두겁을 쓰고서 이런 어린아이들까지 죽게 만든 귀축 영미는 대체 얼마나 사악한 종자들이란 말인가. 세이타 남매를 비롯한 일본의 민간인은 전쟁에 관하여 무고하지 않은가. ー혹은, 아닌가?

“무고한 민간인 따위는 없다There are no innocent civilians.” 동경대공습을 주도한 미합중국 육군 항공대 소속 커티스 르메이Curtis Emerson LeMay 장군의 선언이었다. 제2차세계대전으로 대표되는 현대전은 총력전total war의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국가의 모든 요소가 노동과 자본과 기술로 변환돼 전쟁 물자를 양산하는 작업에 투입되었고, 이같은 생산능력에 대한 결정적인 압도나 타격 없이는 전쟁을 종결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설령 군단과 군단, 함대와 함대간 결전에서 상대를 물리쳐도, 상대의 본국으로부터 계속되는 신병의 충원과 전함의 건조는 전술적 승리의 가치를 무위로 돌려버렸다. 이러한 양측의 무제한 총동원 상태의 균형을 타계하는 방책으로 고안된 것이, 바로 “반딧불의 묘”에 등장하는 것과 같은 전략폭격이었다. 국가 전체가 총동원되어 전쟁에 임하고 있다면, 그 국가의 모든 것을 타격하여 공장과 공장, 철도와 철도를 일제히 초토화하고 석기시대로 되돌려놓겠다는 극단적 발상이었다. 일견 전쟁에 아무 상관도 없는 민가로 보이지만 사실 저 밑에 곤도네는 군용 볼트를, 옆집 스즈키네는 군용 너트를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 위에 소이탄을 퍼부어, 모든 위협을 확실하고 종국적으로 종결시키면 되는 것이다.

윤리적 논란을 감안하지 않는다면 분명 합리적인, 이같은 논리에 의해 실시된 전략폭격은 일본의 58개 대도시에 가해져 지표면의 60%를 지도에서 지워버리며 일본의 전쟁수행능력을 전의와 함께 완전소멸 시켰다. 일본국민은 궁핍과 절망에 빠졌고, “반딧불의 묘”의 비극이 거기에서 탄생했다. 그리고 전략폭격의 근거는 다름 아닌 해당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세이타 남매가 묵고 있던 숙모 댁의 “너도 근로동원을 시작했으니 많이 먹어야 힘내서 일하지,” “나라를 위해 일하고 있는 사람들” 등의 대사로 알 수 있듯 당시 일본 국민은 군인과 민간인의 구분 없이 이미 전쟁이라는 거대한 비극의 부품으로써 훌륭하게 기능하고 있었고, 그런 만큼 “공습으로 모두 불타버려서 공장들이 더 힘들어졌어요, 본토 결전을 위해 증산에 전력을 쏟아붓고 있죠”와 같은 대사야말로 정확히 미군이 의도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특히 기술적 한계로 인해 폭격의 정확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당시의 폭격기로서는 주거구역과 공단구역이 무분별하게 뒤섞인 일본 대도시를 폭격하면서 민간인의 희생 없이 공장만을 타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고, 이미 난징대학살부터 시작해서 태평양 각지의 군도와 극동의 식민지, 최후에는 오키나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민간인 학살을 스스럼없이 자행해왔던 일본으로선 이같은 전략폭격을 유감스럽다고만 하기는 곤란한 입장이었다.

물론 “무고한 민간인 따위는 없다”란 선언과 이로 시작된 전략폭격의 윤리적 당위성에는 다양한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당시의 이같은 전후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반딧불의 묘”에서 묘사된 상황만을 받아들이면 미군은 그저 단순한 악마가 되어버리고, 이는 일본의 일부 우익이 전쟁을 파악하는 왜곡된 태도이기도 하다. 세이타 남매가 전쟁에 직접적 책임이 없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고작 14세 소년과 4세 소녀의 무고를 당시 일본국민 전체의 무고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반화이며, 당시 일본의 태평양전쟁이 일본국민 대다수의 동의와 종교적 열정 아래 자행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책임론을 극단으로 발전시키면 세이타 남매 역시 전적으로 무고하지는 못하다. 세이타 남매의 유복한 생활은 전쟁을 직접 수행하던 해군 장교 부친의 덕택이었고, 특히 세이타는 부친이 수행하는 전쟁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동경했으며, 이에 전황이 악화되면서 닥친 궁핍은 당연한 반동이자 인과응보라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죽을 만큼 심각한 중죄인가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라 해야겠지만, 비극의 일부는 미군이 아닌 세이타 본인의 과실이었고, 실제로 당시의 대다수 일본 국민은 세이타 남매와 달리 전부 아사하지도 않았다. 일본은 전후 그 자신의 제국 시절 식민지 정책에 비하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온건한 연합군 최고사령부Supreme Commander of the Allied Powers, 소위 GHQ 하에서 국체를 보전했고, 산업국가의 재건과 발전에 성공했으며, “반딧불의 묘”의 종막에서 세이타 남매가 내려다보는 것과 같은 화려한 경제대국을 이룩하였다. 일본은 세이타 남매와 같지 않았던 것이다.

“반딧불의 묘”는 전쟁을 통해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가. 비록 명문의 문장으로 설명되지는 않으나, 제목부터 시작되어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반딧불이란 소재를 통해 관객은 영화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밝게 빛나면서도 너무도 쉽게 죽어버리는 반딧불이 은유하는 바는 특공特攻대기를 바라보면서 하는 세츠코의 “반딧불 같네”라는 대사로써 비로소 분명해진다. 카미카제kamikaze라 달리 표현되기도 하는 특공特攻이란 제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수행하던 자살돌격이다. 조종사의 희생을 전제로 하여 조종사가 탑승한 그대로 항공기를 적함에 처박아버리는体当たり 야만적 공격의 희생자를, 작품은 반딧불이라 표현한 것이다.

결국 “반딧불의 묘”에서 반딧불이란 전쟁이라는 극단적 야만의 희생자, 그리고 “반딧불의 묘”란 전쟁 그 자체와 전쟁의 희생자들이 묻힌 일본이라는 토지다. 작품이 묘사하는 전쟁이란 희생자만을 낳는 압도적 비극에 다름아닌 것이다. 그러나, 전범국가로서 전쟁을 일으킨 당시 대일본제국의 군민을 상대로 반딧불이란 낭만적 은유와 희생자라는 문학적 수사가, 과연 정치적으로 적절한 표현일 것인가. 이러한 이론에 대해선, 2004년 작 영화 “몰락Der Untergang”이 다른 대답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역시 제2차세계대전의 전범국가인 독일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가 공동 제작한 영화 “몰락”은 히틀러와 제3제국의 최후를 다루고 있다. 전쟁을 일으켰던 제국은 이제 전쟁으로 인해 패망의 위기에 몰리고, 적군의 공격에 의해 수많은 가해국 국민이 희생당한다. 이렇듯 유사한 시대적 상황을 다룬 “몰락”과 “반딧불의 묘”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전쟁의 희생자로 전락한 가해국 국민을 향한 작품의 시각차일 것이다. 작중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는 전투경험도 없고 훈련받지도 않은 독일의 민간인을 국민돌격대Volksturm라는 명목으로 무차별 징발, 제대로 된 무기도 없이 전장으로 투입한다.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명령에 몽케Wilhelm Mohnke 장군이 반발하자 괴벨스는 조소한다. “나는 그들을 동정하지 않아. 나는 그들을 동정하지 않는단 말이야. 그들이 자초한 일이야. 그래, 놀랄 수는 있지만 스스로를 속이지는 마. 우리는 그들에게 강요하지 않았어. 그들이 그들 스스로 우리에게 권력을 위임했지. 이제 그들은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뿐이야.”

전쟁은 결코 일어나선 안되는 비극이다. 그것은 가해국과 피해국 모두에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수많은 희생자를 낳으며, 종국에는 오직 참상만을 남긴다. 그러나 그것이 양국에 같은 비극을 초래했다고 해서 책임까지 같게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 전쟁에 있어 가해국의 국민은 언제나 가해자와 희생자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며, “반딧불의 묘”는 오직 희생자로서의 절반의 면만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물론 “반딧불의 묘”는 훌륭한 반전영화다. 만일 그것이 가상의 전쟁에 대해 다루고 있었거나, 최소한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 않았다면, 보다 훨씬 훌륭한 영화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덧글

  • Ladcin 2013/05/04 12:52 # 답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반성과 비판은 맨발의 겐이 더 통렬하죠.
    물론 저 영화는 전쟁속에서 반딧불처럼 죽어간 민간인들을 통해 반전주의를 이끌어낸건 좋았지만 그게 일본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죠.
  • 효우도 2013/05/04 12:59 # 답글

    원작 작가의 딸이 학교숙제로 당시 작가의 심정이 어땠는지 글로 쓰는 숙제를 받아서 아버지한테 그때 무슨 심정이었냐고 물어보니 "그때 마감이 닥쳐와서 정신없었다"라고 대답했다고 하죠.
    작가의 딸은 그걸 그대로 써서 숙제로 냈더니 학교에서 틀렸다고 함.
  • 구필삼도 2013/05/04 13:18 # 답글

    비슷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멘발의 겐' 같은 경우는 반딧불의 묘에 비해 책임 소재를 그나마 잘 다룬다는 평가를 듣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논란을 피하지 못하고 있죠. 사실 전범국의 국민이 저런 소재를 다룬다는 것부터가 내부적인 한계를 가지고있지 않나 싶습니다.
  • 1 2013/05/04 13:59 # 삭제 답글

    이런 글이 조선일보에 실려야 되는데
  • Allenait 2013/05/04 14:47 # 답글

    아마도 내부 접근의 한계일까요...

    내부 접근이라면 저런 식 보다는 차라리 전쟁 이후 사람들의 이중성을 끄집어 내는게 더 좋지 않을까 합니다만.
  • ㅇㅇ 2013/05/04 15:01 # 삭제 답글

    '소년시대'라는 영화 보면 패전 후 소학교 선생이 웃으면서 '전쟁 끝나서 다행이야'라고 말했다가 극우 청년단한테 두들겨 맞는 장면 나오던데 기분이 좀 복잡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한국:일본의 문제지만 보통 일본 국민 입장에서는 정부:국민의 문제니까요. 물론 아직까지도 대일본제국의 신민 정신으로 패전을 분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요...
  • 2013/05/04 15:4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5/04 17:1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JNK 2013/05/04 18:12 # 답글

    잘읽고갑니다
  • Niveus 2013/05/04 19:53 # 답글

    역시 주인공을 애들로 설정한 시점에서 이미 어쩔 도리가 없었을것같습니다.
    ...진짜 얘네가 반전메세지라도 내놨다면 그게 더 황당했을테니 -_-;;;
    차라리 징집영장 왔는데 도망쳤다던지 하는 20대 청년같은쪽으로 포커싱을 잡았어야 -_-a
  • 에드윈 2013/05/04 23:21 # 답글

    제작을 일본이 하지 않았어도(배경이라도 피해국으로 맞췄더라면) 훌륭한 반전 메세지를 담은 작품이 됬었을텐데 말입니다.
  • 길야옹 2013/05/05 00:02 # 답글

    장소가 어디든지 야심가들이 벌인 싸움으로 고통당하는건 언제나 힘없는 백성.
  • 힘세고강한왈도 2013/05/05 11:56 # 답글

    원작 설정이 그러니까 저런 꼬마애들이 나오는 거야 어쩔 수 없겠지요. 작가는 존나 찢어지는 마음으로 쓴 글이라고 합니다만 뭐 그건 전해 들은 얘기고.....
  • 대공 2013/05/20 14:01 # 답글

    서술이 부족한게 탈이었군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 피그말리온 2013/05/21 00:54 # 답글

    책임을 피하고 싶은 일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항변이 아닌가 합니다.
  • vsd 2013/05/21 01:01 # 삭제 답글

    조선인이 화교학살했던 사건도 '무고한 민간인 따위는 없다'
  • 역사관심 2013/05/21 09:56 # 답글

    반딧불의 묘에 대한 가장 적절한 글이 아닌가 싶군요 이때껏 읽은.

    사실, 일본이란 나라의 정치인들이 요즘 하고 있는 짓거리와 반대로 반성하고, 주변국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깨끗이 과거를 청산만 했어도, 이 영화에 대한 우리의 평은 보다'객관적'이 되었을 겁니다.

    하시모토 멍멍이베이비가 저런 멍멍이스피크를 하고 있으니, 아무리 관련없는 영화나 애니라도 일단 당시 이야기가 되면 민감해져 버리는 것 같군요. (개인적으로는 반딧불의 묘 좋아합니다. 감동깊었구요. 군국주의라 느끼지 못하겠더군요- 작가와 감독의 의도가 그게 전혀 아닌데요 뭐).
  • 2013/05/21 11:59 # 삭제 답글

    같은 맥락으로 일베 만들고 키운 것도 한국 국민들인데 다들 외면만 하더군요.
  • Vapid 2013/05/21 14:48 # 답글

    중학생 때였나,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었는데 그게 피해국 국민으로서 과한 건지 또 끙끙 앓으며 속으로 고민했던, 피하고 싶은 애니메이션이었네요. 사실 지금 봐도 여전히 불편한데 그 이유를 잘 집어주셨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 코로로 2013/05/21 16:51 # 답글

    개인적으로 꽤 좋게 본 애니임.

    꽤 반일 정서가 강했던 중딩때 봤던 애니인데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꽤 좋게 봤던 기억이 있는 애니군요.

    반전 메세지를 담았든, 그 반대로 우익 메세지를 담았든, 그런 값싼 프로파간다 애니였다면 정말 재미없었을텐데, 그런게 아니라 그 안의 사람을 보고 있는 애니여서 좋았음.

    뭐, 위에 사람들이 쓴 것처럼 책임이란 요소를 극도로 두려워하는 일본인의 기질상 저것이 최대한이었던 것일 뿐일지도 모르지만 말이죠.
  • virustotal 2013/05/21 18:40 # 답글

    요약 데마
  • 에이브군 2013/05/22 08:00 # 답글

    어그로를 끌 생각은 아닙니다만. 그렇다면 우리가 독재정부를 가지게 된것이나 비약을 늘린다면 우리가 식민화된것도 국민이 멍청하고 아둔해서 얻게된 인과 응보인걸까요?

    본문을 모두 읽어봤고 재미있는 글이고 설득력있다보 봅니다. 하지만 문제는 국민과 국가의 관계에서 누가 어디서 어디까지 책임져야하는지 그리고 그게 어떤환경과 요소에서 지지했고 누가 그런 상황을 유도했는지 생각해야하는게 아닌가 합니다. 물론 그 댓가의 주를 누가 다 겪게됬는지도요.


    국민에 대한 책임이야 없지는 않다고 보지만요.
  • 지지배배 2013/05/23 03:30 # 삭제

    비유가 틀렸습니다. 한국의 독재정부는 외국이 아닌 국내세력의 국내정권 침탈입니다. 거기에 굳이 일본 민중의 역할을 비유하신다면 군인들이겠고, 일제하의 조선을 비유하신다면 민주세력이겠죠. 게다가 독재정부는 쿠데타로 등장했는데, 국민의 개입은 없었습니다. 민주세력이 독재의 수혜세력을 뜻하지 않는 이상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식민화도 예를 드셨는데, 침략에 왜 '피해국가의 국민성'이 들어가죠? 여기에선 '침략국가의 국민성'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정 반대입장입니다.

    제시하신 나머지 논점들은 이미 본문이 중심적으로 지적하는 점들입니다. 재독 권합니다.
  • kidovelist 2013/05/23 14:24 #

    제가 드려야 할 답변은 지지배배 님께서 대부분 대신 해주셨습니다만, 저도 이에 보론을 하고자 합니다. 결론부터 적자면, 에이브군 님께서 드신 예들은 전혀 적절치 못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경술국치와 이은 일제의 강점은 전적으로 가해국 일본의 전횡으로서; 대한제국이 식민지로 전락한 책임을 다름아닌 피해국 대한제국과 그 국민들에게 묻는 것은, 흡사 강간의 피해 여성에게 그런 음란한 차림을 하고 다녔으니 강간을 당한 것이 아니냐고 힐문하는 것과 유사한, 매우 위험한 수준의 역사인식입니다. 백보 양보해 대한제국의 국력 부족이나 당시 대한제국 국민의 민도가 대한제국이 식민지로 전락한 “원인”의 일부가 될 수는 있겠으나, 이는 “책임”과는 전혀 다른 문제로서, 만일 한일합방의 책임이 대한제국 국민에게 물으려면 이들이 한일합방을 적극적으로 지지했거나 최소한 소극적으로라도 긍정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 역사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에이브군 님께서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독재의 문제도 다르지 않습니다. 비록 정확히 어느 정권, 어느 시기를 독재로 분류할 것인지는 사람마다 견해가 달라질 수 있으나, 예컨대 군사정권의 경우 일반 국민으로선 저지가 거의 불가능한 군사행동에 의해 막을 열었고, 비록 권위주의정부로 분류되는 정권이 일정 시기 국민의 지지를 받기도 했으나 그들 정권을 타도하고 민주화를 쟁취한 것도 역시, 대한민국 국민이었습니다. 에이브군 님께서 지적하신 내용은 본문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내용일 뿐만 아니라 매우 위험한 발상이기도 하며, 필자로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보시기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 에이브군 2013/05/24 09:02 #

    무슨의미를 뜻하시는지는 알겠습니다. 다만 지지배배님 한가지 간과하신점은 박정희정부자체는 이미 국민대다수의 상당수가 지지를 상당기간동안 받은 정권이 였습니다. 일제비유는 지나친 비약이라고 인정합니다.

    참고로 일제자체도 다이쇼데모크라시에서 군부반란으로 성립된것으로 아는데 당시구조로는 일본국민들이 어찌하기 힘든점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지를 보낸것은 사실이지만요.
  • 루온 2013/05/23 11:44 # 삭제 답글

    “무고한 민간인 따위는 없다There are no innocent civilians.”와 같은 르메이의 선언은 많은 비난을 받아왔습니다. 그리고, 르메이와 같은 방법론이 필연적이었고, 어쩔 수 없었다고 합의된 것도 아니었죠. 미군은 독일과 전쟁할 때 부터, 모든 생산시설을 군사적 목표로 다루고 민간인 희생을 의도하는 방식을 달가워하지 않았고요. 도쿄대공습은 공장시설을 파괴하다가 어쩔 수 없이 민간인을 죽인 것이 아니라, 민간인을 죽이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의도였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자성적 목소리가 나오고, 사후평가에서 비난받기도 하는 것이죠. 물론, 제국주의 일본이 한 짓을 생각하면 당해도 싸다라는 감정적 반응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긴 하지만요. 솔직히 저도 그 분들을 그렇게 동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주인공을 14세 소년으로 설정한게 문제라고 하셨는데, 전쟁을 아동의 시선에서, 그 순수한 시점에서 서술하는 일 자체는 환영할만합니다. 원인과 결과를 아는 시선에서 보는 것에서 가져올 수 있는 가르침과는 다른 가르침을 담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사실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아동의 시선에서 전쟁을 볼 수도 없는데다가, 미국이 일본아동의 시선을 담은 전쟁을 만들리도 없기 때문에....결국 이 시선의 영화는 일본에서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죠. 물론 반성적인 영화가 턱없이 부족한 토양에서 그게 맞는 것이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그건 하야오 개인에게 물을 수 있는 책임이 아니기 때문에..

  • kidovelist 2013/05/23 12:57 #

    고견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미처 생각지 못했던 여러 논점, 특히 전쟁을 아동의 순수한 시점에서 서술한다는 것 자체가 가지는 이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비록 당장 생각기로는 작품의 주인공 세이타를 과연 순수한 아동이라고 해도 좋을 것인지 다소 의구심은 들지만, 지적해주신 점들은 매우 타당한 문제 제기라 생각되며, 이에 대해서는 이후 재차 정돈된 답변으로 다시 찾아뵐 기회가 있으면 기쁘겠습니다.
  • kidovelist 2013/05/23 11:51 # 답글

    Zako 2013/05/21 23:12 # 삭제
    그 외의 본문의 글은 그다지 읽지 않았습니다.

    ?



    ?
  • ㅡㅡ 2013/06/04 17:34 # 삭제 답글

    일말의 재고가치가없는 극우애니메이션일뿐

    그이상 그이하도 아닙니다

    실제로 일본 극우단체에서 추천하는 애니메이션이기도 하죠
  • 엘미타 2013/06/04 22:27 # 답글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아무 생각 없이 보기에는 많이 불편한 작품이죠.
    잘 읽고 갑니다.
  • 잔혹하다 2013/08/27 11:40 # 삭제 답글

    일본인들은 하도 침략을 당해본적이 없으니까 우리나라기준으로 볼때는 불편한 애니죠~!
  • 진짜더럽다 2013/09/25 03:08 # 삭제 답글

    전범국의 국민은 당해도 싸다는 건가. 진짜 이런 악귀같은 심성이 (여기 덧글쓴 인간들 포함해서) 한국인의 일반적인 생각이라면, 그 '한국인'들은 다 당해 뒈져도 싸다.
  • 진짜더럽다 2013/09/25 03:12 # 삭제 답글

    한국놈들은 전범국 국민이 아닌줄 아는가. 베트남을 침략했고 이라크를 침략한 나라다. 그래서 인간들이 이렇게 심성이 피폐햬졌는가. 전쟁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어린아이들이 죽었는데 전범국에 속한 국민이라 괜찮다는 식의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한국놈들아, 너희들도 전범국의 국민이다. 니들 논리대로, 너희들의 죄를 안고 다 뒈져라.
  • 진짜더럽다 2013/09/25 03:17 # 삭제 답글

    국가주의가 악마을 만든다. 이 말은 정말이다. 이 비극을 보고서도 '일본'이란 국가와 '한국'이란 국가로 대가리가 개념화되고, 저 애들은 '일본'이란 국가에 속한 것들이니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티끌만큼이라도 일어난다면(글 쓴놈과 댓글단 놈들 전부가 이미 그러고 있지만) 니들은 이미 국가주의에 중독된 인간성 파탄자들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 진짜더럽냐? 2016/06/16 20:47 # 삭제 답글

    니혼징이 한글을 잘 배웠네.. 문법도안틀리고 잘했다
  • 반딧불의 묘 2018/01/08 16:27 # 삭제 답글

    우리나라 좌파가 주장하듯이 만일 저영화나 소설이 일본우익영화라면 일치단결 대동합심해서 전쟁에서 죽은

    충성스런 군인(그것도 장교)의 자녀들을 주변에서 애국가정이라고 해서 돌보고 굶기지 않았겠지

    '반딧불의 묘'는 정작 일본에서는 평화헌법수호에 앞장서는 제작자가 반전영화가 아니라고 변명하는 상황인데

    같은 내용을 보고 우리나라 프로불편러들은 우익영화라고 까고 있으니

    도대체 누가 전체주의적 정치주의적 사상에 매몰된 것인지 스스로 의심스러운 생각은 안드나

    현 시점 대한민국에서 몇 년째 노골적인 정치선동 영화가 공공연하게 일부특정지역에서 주도하여 만들어지고 감상주의로 대중을 동원하는 상황에서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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