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워치 : D.va의 게임 / 1 소설


나는 프로게이머다.

아니. 다시. 고쳐 말해야겠다.

유감스럽지만, 지금 나는 게임을 못 하는 프로게이머다.

실력이 문제는 아니었다. 나는 통산승률 71.4%[1]에 빛나는 세계랭킹 2위의 프로게이머였고, 세계대회 4연속 준우승자이자 소속팀 FIGHTING이 자랑하는 제2의 에이스였다. 우리 시대 프로게이머가 원래 최고의 스포츠스타이자 아이돌이긴 하지만, 그 중에도 나, 프로게이머 이시백[2], 스타크래프트6의 T.ger라고 하면, 게임팬이라면 모를 수 없는 이름이었다.

물론 개인리그 우승은 없었다. 그러나 이건 내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라면 무려 1세기동안 전 세계 게임계를 지배해온 빌어먹을 한국인들이 기어이, 최흉최악의 악마를 낳아버린 것이었다. 하필이면 나와 같은 날 같은 팀에서 데뷔한 그 악마는 그 후로 1게임, 단 1게임도 패배하지 않았다.

데뷔 이래 3년간 악마가 거둔 통산전적 535전 535승[3]. 승률 100%의, 전승이었다.

내가 결승전만 올라가면 그 악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마다 나도 리플레이를 초 단위로 분석하고, 수백 수천 수억 게임[4]을 돌리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경우를 준비하고, 전력의 전력을 다해 필사의 필사로 도전했다. 그러나 아무리 발악해봐도, 어차피 우승은 그 악마의 것이었다. 상대전적 0승 20패[5]. 단 1세트조차 따내지 못한, 완벽한 패배였다.

그 무결점의 악마[6]는 인게임에서 D.va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그렇게 노련한 플레이를 하는 주제에 정작 나이는 나와 동갑인 열여덟이었다.

트레이드마크인 토끼는 흔히 아는 그런 귀여운 동물이 아니라 어느 옛날 영화엔가 나온, 사람의 목을 따버린다는 괴물 토끼; 보팔래빗[7]임에 틀림없었다.

그런 주제에 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순진무구한 토끼 같은 얼굴에, 귀엽게 삐친 고양이눈매를 한 미소녀라니, 역시 현실은 운빨좆망겜이었다.

아니, 나는 속지 않았다. 전 세계가 반해버린 미소녀 천재 프로게이머 D.va 따위, 나는 몰랐다. 내가 아는 그 녀석의 이름은 송하나, 언제나 송하나였다. 나와 같은 열여덟 살에, 유치하고, 고집스럽고, 제멋대로에다, 자존심 센, 그런 평범한 동갑내기 여자아이 송하나.

송하나가 등장한 이래 모든 우승은 그 녀석의 것이었다. 그런 전무후무의 대기록을 세우고도 아직 열여덟 살이었다. 어리디 어린 여왕의 통치는 영원무궁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전쟁, 전쟁은 모든 것을 바꾸어버렸다.

인공지능이 일으킨 반란의 파도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었다. 그 강철의 괴물들이 심연에서 기어 올라올 때마다 한국은 시나브로 소모되고 깎여 고갈되어갔다. 반란을 일으킨 인공지능을 상대로 우리는 인공지능 로봇인 MEKA에 의존해야 했다. 우리는 결국 언젠가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우리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안이 없었다.

MEKA는 원래 파일럿을 염두에 두지 않고 설계된 무인로봇이었다. 만에 하나 인간이 조종하려면 단 1인의 파일럿만으로 복잡한 3차원 기동을 하면서 동시에 포탄을 퍼붓고, 적탄을 회피하고, 방어 매트릭스라는 이름의 요격까지 모조리 해내야 했다. 정신분열 수준의 멀티태스킹, 1,000분의 1초 단위 반응속도, 광기에 가까운 전투감각, 말도 안 되는 APM까지 요구됐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우리 프로게이머들은 그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게임을 못 하는 프로게이머라니. 확실히 우리는 불행한 세대다. 송하나도, 나도.

D.va의 게임



[1]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이영호의 스타크래프트1 통산 승률(71.4%) 참고 
[2] 조선시대 고전소설 “박씨전”(작자 미상)의 주인공 이시백을 참고 
[3]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송병구의 스타크래프트1 통산 전적(535승 319패) 참고 
[4]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홍진호 “수백, 수천, 수억 게임을 했어요. 그래서 이 게임의 모든 걸 이해했어요. 그럴 정도로 게임을 했기 때문에…….”(MBC, “Life of a Progamer”(https://www.youtube.com/watch?v=LJECc551JSg), 2006) 
[5]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송병구의 스타크래프트1 대 이영호 통산 전적(20전 10승 10패) 참고 
[6]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송병구의 별명, “무결점의 총사령관”을 참고 
[7] 혹은 Killer Rabbit, “몬티 파이튼의 성배”(컬럼비아 픽처스, 1975)에서  

덧글

  • 천영유희 2018/05/27 07:42 # 답글

    키도님 이글루스 소설이 다시 시작됐군요 두근두근 두근두근
  • kidovelist 2018/05/27 13:13 #

    아직도 기억해주시는 분이 계셨네요. 감사합니다.
  • 325345 2018/05/27 11:47 # 삭제 답글

    노잼
  • kidovelist 2018/05/27 13:13 #

    미안...
  • 나인테일 2018/05/27 15:38 # 답글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을 갖고있지. 자폭에 쳐맞기 전까지는.

    그래도 요즘엔 비행과 사격이 동시에 되고 마이크로 미사일도 탑재되어 방산비리가 좀 나아지나 했더니

    이젠 또 방어매트릭스가 반토막나고 마이크로 미사일이 죄다 불량품이 되는 명불허전 머한민국 포방부 클라쓰.
  • kidovelist 2018/06/02 14:59 #

    댓글을 이제야 봤네요. 아마 7편을 찾아 보시면 기대하시던 대한민국의 막강한 포병전력을 보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이단 2018/08/22 09:42 # 답글

    읽어야지 하면서도 미뤄두다가 오늘에야 읽기 시작했습니다. 쉼표 사용으로 문장에 자연스러운 호흡을 넣는 능력은 언제 봐도 부럽네요. 단단하고 세련된 문장 속에서 간혹 튀어나오는 위트 때문에 방심할 수 없게 만드는 것도 즐겁고요.
  • kidovelist 2018/08/22 17:57 #

    과찬 감사드립니다. 마지막까지 재밌게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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