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워치 : D.va의 게임 / 2 소설



전편


“호랭이!”

분명 내 아이디 T.ger는 독일어 Tiger, 호랑이에서 따왔다. 그러나 세계랭킹 2위 프로게이머의 위엄 있는 아이디를 감히 저런 귀여운 별명으로 부를 사람은 이 세상에서 단 한 명: 세계랭킹 1위의 저 악마밖에 없었다.

“호랭이! 여기! 여기!”

옆으로 눈을 돌리자 분홍색으로 제멋대로 커스터마이징한 로봇이 있었다. 안에는 역시나 송하나가 엎드려 그 꽃잎 같은 손을 하늘하늘 흔들고 있었다. 어두운 콕핏 안인 것이 거짓말처럼 환하게 웃어보이는 그 녀석에게는 이길 수 없었다. 나는 결국 한숨을 쉬면서도 통신망을 개방했다.

게임을 못 하는 우리는 이족보행로봇 MEKA에 타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편제가 Mobile Exo-force of the Korean Army고 로봇의 정식명칭은 따로 있었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MEKA는 그냥, MEKA였다.

적을 분쇄하는 분당 4,620발의 속사포. 모든 공격을 막아내는 무적의 방어 매트릭스. 신화 속 거신처럼 전장을 걷는 이 병기는,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괴물이었다. 우리 같은 프로게이머가 가지고 놀 장난감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녀석이,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디바 온라인!”
“…티거 온라인.”
“응, 응, 티거도 온라인! 우리 호랭이 하이!”

뺨에 분홍색 잉크로 그린 토끼 수염. 귀여운 동물의 귀라도 되는 듯 머리 위로 쫑긋 솟은 헤드셋 안테나. 이제 자기도 여자라고 하는 듯한 건방진 가슴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도발적인 파일럿슈트. 언제나처럼 피하는 일 없이 똑바로 눈을 맞춰오는 그 소녀의 고양이눈매 앞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피해버렸다.

“시끄러. 그놈의 호랭이 소리 좀 그만해라. 정들겠다.”
“어머, 진짜? 진짜 막 정들 것 같고 그래? 드디어 바람둥이 호랭이까지 이 디바 님의 마성의 매력에 빠져버린 거? 흐응~. 곤란한데~. 내가 사실 게임 못하는 사람을 싫어하거든~? 그래서 만년 콩라인 호랭이는 싫은데~.”[1]
“그래? 유감이네. 나는 나보다 게임 잘하는 사람 싫어하는데. 그래서 이제 너는 안 싫거든.”[2] 
“하? 우리 호랭이 제법 건방져? 이 역대체고 미소녀 천재 프로게이머 디바 님한테 뭐래?”
“천재? 누구? 아하, 내가 듀오 안 해주면 팀플도 답답해서 못 한다는 그 디바 님? 그러게. 나 없었으면 우리 디바 님 대체 프로리그는 어떻게 뛰셨을까 몰라.”
“아쭈! 야 거기 겜알못[3] 호랭이! 너 복귀하면 바로 싸지방으로 튀어나와! 아주 버르장머리를 고쳐줘야겠어!”

발끈 소리치는 그 녀석의 귀여운 반응에도 언제나와 달리 웃을 수 없었다.
어른의 매력 같은 소리. 이런 거에 일일이 발끈하는 이 녀석은 역시 아직 철없는 어린애였다.

역시 다들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런 어린애를 전쟁에 내보내는 나라나, 그걸 보고 전장의 아이돌이라며 좋아하는 인간들이나.

“그래서 뭐, 송하나. 왜 또 시빈데.”
“시끄러! 얼타고 있어서 기껏 괜찮나 불러봤더니만! 너 짜증나!”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제대로 대답 안 한 것이다.

나는 안 괜찮았다. 괜찮을 리가 없었다.

우리가 있는 무인지대는 옴닉사태의 휴전선이었다. 전쟁이 바로 저 너머에 있었다.

교관들은 우리를 안심시켰다. 유인MEKA는 아직 시험 단계일 뿐이라고. 아직 시간이 있다고. 상대는 기계일 뿐이니까 괜찮다고.

다 개소리였다. 상대는 기계일지 몰라도 전쟁의 열기, 그 광기와 공포, 거기서 죽고 죽일 우리는 진짜 인간이었다. 그런 지옥 속에서 괜찮을 신경 따위, 나는 없었다.

그러나 송하나는 달랐다.

“뭘 봐!?”

토라져 눈을 흘기는 그 어린애가 탄 것은 1세대 돌격형 MEKA였다. 자기 시그니처 컬러인 분홍색 도색에 좋아하는 토끼 그림까지 손수 그려넣을 정도로 애정하는 기체였다. 작지만, 가볍고, 날렵한; 자신과 꼭 빼닮은 그 귀여운 전용기를 탄 미소녀는, 국방부의 홍보로 이미 전장의 아이돌이 되어 있었다.[4] 

그러나 돌격MEKA는 불량품이었다.

유일한 무장인 빈약한 융합포도, 종잇장 같은 장갑도 옴닉 앞에서는 장난감이나 다름없었다. 어서 맞춰달라는 듯이 노출된 커다란 캐노피는 움직이는 표적일 뿐이었다. 위태로운 자세로 엎드려야 하는 조종석에는 팔조차 넣을 수 없었다. 녀석이 입은 얇은 파일럿슈트 따위 발가벗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무방비한 모습으로 돌격MEKA에 탄 송하나를 볼 때마다, 나는 이유도 없이 치밀어 오르는 욕지기를 이를 악물고 삼켜야 했다.

아니. 나는 이 녀석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송하나가 저 기체, 저 슈트를 고집하는 이유를, 나는 싫을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자신있으니까.

무거운 장갑도 거추장스러운 갑옷도 좁은 시야도 D.va에게는 방해일 뿐이니까. 그러지 않아도 D.va라면 적 공격은 모조리 피하고 요격할 수 있으니까. 빈약한 융합탄이라도 모조리 치명타로 히트시키면 대미지는 차고도 넘치니까. 그럴 자신이, 스스로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이 있으니까.

나는 아니었다. 그럴 자신도 확신도 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방탄판을 붙여 갑옷처럼 된 슈트를 입고 육중한 중장갑과 대구경 주포로 무장한 공성MEKA[5]에 타고 있었다. 그러고도 이렇게 전선에 나올 때면 언제나 저주와도 같은 확신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런 식으로 위태로운 주사위 굴리기를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운명에 배신당하는 날이 오리라는.

그러다 보면 생각은 언제나 송하나에게 닿았다.

저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겨우 열여덟 살에, 이런 끔찍한 전쟁이 끌려나와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이런 비일상이; 저 녀석은 정말 괜찮은 걸까?

“…호랭이?”

그렇게 머뭇머뭇 나를 부르는 녀석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또, 무서운 얼굴 하고 있었어…,”

그 녀석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보고, 나는 고집스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는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 녀석 앞에서 이 이상 비참해지고 싶지 않았다.

“호랭이 진짜…, 괜찮아…?”
“괜찮아. 신경 쓰지 마. 너랑 상관 없어.”
“왜 상관이 없어! 너가 그러는데!”
“송하나. 제발.”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만 간다 그랬잖아! 내가 가니까, 호랭이는 올 필요 없다고!”

그 말을 듣고 나는 이를 악물었다.

맞다. 나는 올 필요 없었다. 군이 요구한 것은 송하나였다. 당연했다. 챔피언은 D.va니까. 그 챔피언이 이제 겨우 열여덟 살이라는 것도,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 못 한 어린 여자아이라는 것도 그들은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녀석을 쫓아 멋대로 자원했을 뿐이었다. 내가 한 번도 쓰러뜨려보지 못한 저 악마가, 쓰러뜨릴 기회도 주지 않고 사라져버리는 것을 참을 수 없어서.

그래도 저 녀석에게만큼은, 필요 없다는 소리만은,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 이래서 내가,”

오랫동안, 오랫동안 참아왔던 말이 무심코 튀어나왔다.

“이래서, 네가 싫은 거야.”

송하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알아듣지 못한 듯이 멍하니 나를 보는 녀석의 눈을 보고, 나는 후회했다. 내 잘못이었다. 나까지 이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잠시 숨 막히는 침묵이 흐른 후에야 겨우 “…뭐?” 하고, 녀석이 되묻고 있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미안. 내가 좀 흥분했다.”
“뭐가. 뭐가 아무것도 아닌데! 야! 이시백!”
“정말, 미안. 아무것도 아니니까. 이제 집중할 테니까 보이스 끊는다.”
“끊지 마! 똑바로 말해! 넌 왜 항상 그런 식이야!? 왜, 항상, 그렇게—!”

쿠우우우우우—,

항의하는 녀석의 성난 목소리에 돌연, 노이즈가 끼었다.

처음에는 바람소리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부스터가 내뿜는 소음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우리를 향해 똑바로 날아오는 MEKA들이 가시거리까지 육박해 있었다.

송하나의 귀여운 분홍색 MEKA와는 다른, 살풍경한 흑색의 무인MEKA들이었다. 특유의 기분 나쁜 직선의 궤적을 그리며 무인MEKA들은 편대비행하고 있었다. 끝이 아니었다. 그 뒤를 이어 제2, 제3제대의 도합 수십 대 MEKA들이 제파투입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몰랐다. 소음 부스터와 스텔스 설계 때문에 이 거리까지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아니, 그건 그럴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왜 훈련상황도 아닌 지금?
왜 아군인 우리조차 기만하고, 보안데이터링크에 신호조차 없이 전 부산의 MEKA들이 일제히, 우리 앞에 집합하지?

그런 의문에 대답은 없이 쿵, 하고, MEKA들의 무거운 발이 내려앉았다.

“…뭐야, 깡통들. 안 꺼져?”

등 뒤로 다가오는 강철의 발소리에 송하나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고개를 떨어뜨린 녀석의 표정은 긴 앞머리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마치 나 같은 거의 말에 상처라도 입은 것 같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소녀는 고개를 들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 줄도 모른 채 입을 열었다.

그 순간 내 눈에 보인 것은 무인MEKA들이 들어올리는 총구였다.
내 대답은 비명이 되었다.

“—송하나!”

내 시선을 따라 젖은 눈을 든 녀석이 그제야 숨을 삼켰다.

“뭐야, 이거,”

소녀의 입술에서 새어나오는 소리와 거의 동시, 무인MEKA들의 융합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1]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임프’ 구승빈 “제가 잘 하는 애들을 진짜 싫어해요. 피글렛 선수는 이제는 밉지 않아요.” (OGN, LOL CHAMPIONS SUMMER 2014 (SKT T1 K vs. SAMSUNG White) Match1(https://youtu.be/UIWaIBozJcU?t=10m20s), 10:20부터)
[2]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피글렛’ 채광진 “저는 못하는 애를 싫어하는데 임프는 못해서 싫어요.”(OGN, 위의 영상, 10:23부터)
[3]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허영무, “게임 알지도 못하는 놈들아 너네들이 와서 함 해볼래”(https://namu.wiki/w/%EA%B2%8C%EC%9E%84%20%EC%95%8C%EC%A7%80%EB%8F%84%20%EB%AA%BB%ED%95%98%EB%8A%94%20%EB%86%88%EB%93%A4%EC%95%84%20%EB%84%88%EB%84%A4%EB%93%A4%EC%9D%B4%20%EC%99%80%EC%84%9C%20%ED%95%A8%20%ED%95%B4%EB%B3%BC%EB%9E%98 참고)
[4] 서든어택2(넥슨GT), 7월 6일 출시 예정
[5] 스타크래프트 시리즈(블리자드, 1998)의 등장 유닛 공성전차를 참고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