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워치 : D.va의 게임 / 3 소설



전편


그르르르르륵!

귀를 찢는 재앙같은 총성. 공격 모션을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조종간을 잡았던 내 손은 그러나 아직 방어 매트릭스조차 켜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 늦었다. 머리가 하얗게 지워졌다.

그러나, 이미 우리 앞에는 작렬하는 융합포를 막아선 푸른 방패가 펼쳐져 있었다.
내가 아니었다. 송하나의 MEKA가 킨 방어 매트릭스였다.

카가가가가각!

“크, 읏!”

송하나가 반응한 것이다. 먼저 발견하고 먼저 콜한 나보다 더 빠르게, 내 콜을 듣고 무인MEKA들의 모션을 본 즉시 방어 매트릭스를 가동, 초탄부터 단 한 발도 놓치지 않고 모조리 하드킬한 것이다. 그런 기적이 어떻게 가능한지 나로서는 이해조차 할 수 없었다.

“호랭이이이이이이잇!”

다만 그렇게, 소리쳐 나를 부르는 늠름한 소녀는, 내가 잘 아는 D.va였다.

그 부름의 의미는 오더였다.
그 이상 설명은 필요 없었다. 나는 즉시 부스터를 켜고 발진했다.

쿠웅!
“욱—!”

급발진의 반동이 나를 강타했다. 가속도에 짓눌린 전신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에도 무인MEKA들은 송하나의 방어 매트릭스를 두드리며 진군하고 있었다. 고삐를 늦추는 일 따위 있을 수 없었다. 가속, 무조건 가속이다. 소녀의 방패가 깨지는 것보다 내가 무인MEKA들의 사각을 찌르는 것이 더 빨라야 한다. 아니! 당연히 빠르다!

“가 자아아아아 아 아 아 !”

투두두두두두두!

무빙을 멈추는 일 없이 완벽한 조준선을 잡아 트리거를 당긴다. T.ger의 총구가 불을 뿜는다. 상정을 뛰어넘는 기동에 따라오지 못한 무인MEKA는 내 공격에 반응하지 못했다. 3연장 쌍포에서 작렬하는 30mm 융합탄은 속사로 무인MEKA의 측면장갑을 갈아버렸다. 강철과 불꽃이 퉁겨 부서졌다.

콰아앙!

다음 순간, 남은 무인MEKA들의 붉은 렌즈가 일제히, 나를 돌아보았다.

인공지능 특유의 기계적인 동작으로 MEKA의 포탑들이 회전했다. 렌즈들은 미동조차 없이 정확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캐노피로 울려퍼지는 경고음은 모든 사통장치가 일제히 나를 조준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위험했다. 그러나 이미 끝났다.

“누구, 맘대로!”

이미, 온라인의 D.va가 그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카가가가가가각!

다음 순간 푸른 불줄기가 무인MEKA들을 반으로 갈랐다.
폭발하는 그것들 앞에 D.va가 날고 있었다.
어그로가 내게로 핑퐁됐던 단 일순간만으로, 그 녀석은 이미 방어 매트릭스를 접고 수세에서 공세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거기, 똑바로, 있어.”

하늘 위에서 부스터의 날개를 펼치고 캐노피 너머로 저 하등한 강철의 인형들을 내려다보는 소녀의 모습이, 마치 여신 같았다.

그 짙은 갈색의 눈동자는 다음 순간, 빛의 궤적을 그리며 자리에서 사라졌다.

쾅!

충격파를 터뜨리며 D.va가 쏘아져 나갔다.

카가가가가가가가각!

탄막이 어지럽게 뒤를 쫓았지만, 맞지 않았다. 허공을 수놓는 융합포탄들 사이를 춤추듯 나는 그 아름다운 비행은 인공지능의 단순한 알고리즘 따위로 이해할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기동과 회피와 방어와 공격을 모두, 동시에, 완벽히 수행하며; 이기적인 딜교를 퍼붓는 그 분홍빛 눈부신 궤적을 쫓아, 나는 땅을 박차고 가속했다.

“티거 온라인! 현재 티거 무인메카와 교전 중! 무슨 상황인지!?”

하늘을 달리며 다급히 통신을 시도해보지만 응답은 없었다.

“재송신! 티거라고 알리고—! 야 개새끼들아! 말 안 해!? 이거! 뭐냐고 씨발!”

왜 아무도 응답하지 않는지도, 왜 아군인 MEKA들이 우리를 공격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불길한 상상으로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중요한 것은 이유가 아니었다.

콰아아아—!
“이게, 감히—,”

송하나에게 달려드는 그것들을 본 순간 눈에 불꽃이 튀었다. 이건 명백한 도전이었다. 우리 프로게이머라는 인종은 싸움을 걸어오면 맞서 싸우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족속이었다. 지금 이 순간, 인공지능 따위가, 감히 프로게이머를 노리고 있었다. 전력으로 싸워야 할 이유로 그 이상의 이유는 없었다.

“이 봇 새끼들이! 감히! 누구한테 덤벼!”

카가가가가각!

총열을 녹여버릴 듯 뿜는 융합탄이 무인MEKA들을 갈아버렸다. 불타오르는 강철의 숲 속에서 송하나를 쫓아 융합탄을 쏘던 MEKA를 찾아낸 나는 즉시 그 머리를 날려버렸다. 그러나 다음 순간, 송하나가 비명처럼 외쳤다.

“호랭이, 뒤!”

반대 방향에서 쇠가 갈리는 소음이 귓전을 울렸다.
내 뒤를 노리던 적기를 D.va가 융합포로 산산조각내고 있었다.
다시 돌아본 눈앞에서는 성난 D.va가 폭발할 것처럼 소리지르고 있었다.

“죽여버릴 거야—, 이 깡통들! 죽여버릴 거야!”

크르르르르륵—,

공중에서 선회한 나는 뒤를 쫓던 MEKA에 30mm 속사포를 박아넣었다. 광학렌즈째로 갈려나간 그것은 함께 날던 다른 MEKA와 충돌했다.

콰앙!

폭발했다. 격추였다. 당연한 결과였다. 나와 송하나는 3년간 호흡을 맞춰 온 프로리그 사상 최강의 듀오였다. 우리에게, 사각은 없었다.

“송하나! 너 오른쪽! 내가 커버한다!”
“하! 당연히 그래야지!”

으르렁거리며 D.va가 타오르는 불꽃을 헤치고 쏘아져 나갔다. 오른쪽은 눈길조차 주지 않는 그 녀석은, 정말로 내 커버를 한 순간도 의심치 않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해야 했다. 지상 모든 MEKA들의 전탄발사를 농락하며 일방적으로 융합탄을 내리꽂는 송하나의 등을 쫓아, 나 역시 가속했다.

우리가 플레이하던 스타크래프트6에도 핵은 있었다. 생산과 컨트롤을 자동으로 해주는, 그러니까 지금 우리 앞의 무인MEKA 같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치트조차 압도하고, 일억 플레이어의 정점에 선, 세계 최고의 프로게이머들이다. 같은 MEKA로 싸우는 미러전에서, 프로게이머가 AI 따위에 패배할 리가 없다!

“호랭이! 와!”

오더하는 D.va의 뒤를 따른다. 부스터를 올린다. 전력의 전력, 전력의 전력으로!

드르르르르륵!

서로의 사각을 커버하는 우리 둘의 포화가 조준선 안에 들어온 모든 것들을 지면째 갈아엎는다. 가차 없이 꿰뚫고, 박살내며, 무인MEKA들을 사냥해 나간다.

“송하나! 일곱 시!”
“알고, 있거든!?”

쾅! 콰앙! 쾅!

1기. 또 1기. 계속해서 요격당하고 격추당하고 영격당하고 폭격당하면서도, 무인MEKA들은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
최후의 순간까지도 붉은 렌즈로 차갑게 이쪽을 응시하는 인공지능 특유의 그 반응이, 기분나빴다.
살아남은 그것들의 렌즈는 우리의 움직임을 쫓아 저마다 어지럽게 떠돌고 있었다. 마치 흔들리는 동공처럼.

“잘했어! 이렇게, 빨리 끝내버리—!”

철컥!

그리고 무인MEKA들이 일순간, 정지했다.
일제히 한 점으로 정렬한 그것들의 렌즈는 명백한 이상이었다.
대응이 시작됐다. 그것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철컥. 우리가 퍼붓는 포화를 그대로 맞아가며 무인MEKA들은 무거운 강철의 다리로 직접 걸어서 집결하고 있었다. 철컥. 그것들이 정렬했다. 철컥. 3차원이었던 복잡계의 전장이 2차원의 단순계로 압축됐다.

철컥. 어깨와 어깨가 닿을 정도로 밀착해 오와 열을 맞추고 원형을 이룬 MEKA들이 다음 순간 일제히, 방어 매트릭스를 펼쳤다.

“저게 뭐…?”

카가각!

방어 매트릭스의 커버범위 끝과 끝을 잇댄 벽이 거대한 돔형으로 펼쳐졌다.
표적이 엄폐됐다. 공격이 막하기 시작했다.
방어 매트릭스 안에서 그것들은 융합포를 뽑아올리고 있었다.

그것은 팔랑크스였다.

우리를 쫓는 붉은 렌즈들이 일치된 단결의 클라우드 컴퓨팅으로 우리의 궤적을 분석하고 오차를 수정해 나갔다. 우리를 비껴가던 탄도들이 실시간으로 점차 근접, 근접, 근접근접근접—,

카앙!

다음 순간 망치로 후려치는 듯한 충격이 나를 덮쳤다.

기체가 공중에서 휘청 기울었다. 부스터를 뿜어 반동을 뿌리치고 눈에 힘을 주자 AR디스플레이 위로 MEKA의 왼쪽 어깨 피탄을 알리는 메시지가 점멸하고 있었다. 위험하다. 빨리, 부스터 컨트롤로, 회피를—,

그리고 다음 순간 나를 덮쳐 쏟아지는 융합탄의 세례를 보고, 나는 숨을 삼켰다.

“이런 씨ㅂ—,”

카가가가가가각!

밀어닥친 융합탄이 내 매트릭스에 부딪혀 갈려나갔다.
막았다. 반응한 것이다. 방어 매트릭스로 칼같이, 융합탄의 탄속보다 빠른 반응속도로.

슈퍼플레이였다. 그러나 의미없었다. 포화가 그치지 않았다. 숨 쉴 틈도 없었다. 탄막이 매트릭스를 미친 듯이 두드리고 있었다. 도저히 손을 돌릴 수 없었다. 더는 공격할 수도 회피할 수도 없다.

당했다. 완전히.

그러면 그 녀석은?

“송, 하나—,”

쏟아지는 융합탄을 요격하면서도 내 눈은 이 지옥 어딘가 있을 그 녀석의 모습을 찾고 있었다. 송하나. 송하나는?

찾아냈다.
흐릿한 하늘 속에서 녀석이 날고 있었다.

밀어닥치는 적탄을 간신히 막고 있을 뿐인 나하고 다르게, 부스터를 날개처럼 흩뿌려 컨트롤하며 융합탄을 뿌리치고 화려하게 서커스 기동을 하는 D.va의 궤적이 보였다. 깨지지 않은 방어 매트릭스를 여기사의 방패처럼 세우고 잿빛 하늘을 달리는 소녀는, 내가 처음 반했던 그 눈부신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내 머리는, 녀석이 결국 패배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인MEKA들의 탄막은 느리지만 분명하게 송하나를 뒤쫓으며 녀석의 목을 죄고 있었다. 불공정한 딜교였다. 반격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우리는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을 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저 소녀는 곧 날개를 잃고 떨어진다.

무엇보다도 그것이, 참을 수 없었다.

“—송하나!”

콰아아!

밀어닥치는 탄막을 헤치고 나는 송하나에게로 날았다. 부스터를 가속하며 필사적으로 머리를 돌렸다. 나는 프로게이머다. 적의 전략을 카운터치는 것이 내 전공이다. 방법은 있다. 찾아야 한다. 절대로, 절대로! 저 녀석만은 절대로 잃을 수 없다!

“송하나! 일단, 이리로—!”

그러나 언제나처럼, 나보다 송하나가 빨랐다.

“하, 그렇게 나오시겠다?”

온라인 너머에서 그렇게, 녀석의 이를 악문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어디, 이것도 너프해보시지!”

그리고 빛이 있었다.

별 없는 잿빛 하늘에서 송하나의 MEKA가 별처럼 빛났다.
소녀의 기체로부터 빛이 폭사하며 어둠을 불밝히고 있었다.
저 빛의 의미를, 나는 알고 있었다.
저 빛이야말로 원자로에서 풀려난 막대한 에너지 자체. MEKA가 무인기로 설계됐었던 구시대의 유산. MEKA 전 화력의 무제한 폭주. MEKA 1기 1기를 결전병기로 만든 최종해결수단.

그 명명, 자폭 시퀀스.

숨이 멎었다. 머리가 멈췄다. 딜링도 컨트롤도 무빙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송하나. 그 녀석이 저 빛 안에 있었다. 아니. 아니, 그러지 마. 송하나.

“송하나아아아아아!”

그 절규가 닿는 일 없이, D.va는 급강하했다.

유성처럼 떨어지는 D.va의 MEKA에 무인MEKA들의 렌즈가 집중됐다.
방어 매트릭스로 요격할 수 없는 그 대질량의 돌격에 하등한 인공지능조차 위험을 직감했다.
모든 화력이 일제히 소녀의 MEKA에 작렬했다. 그러나 그 눈부신 분홍빛의 별은 결코 스러지지 않았다. 쏟아지는 융합탄을 그대로 방패로 받아내 지워버리며, D.va는 팔랑크스를 무너뜨리고 내리꽂혔다.

피할 수도 대적할 수도 없는 그, 경악의, 슈퍼플레이가, 실현되었다.

쿠웅!

그 일격. 상대의 전략을 카운터치는 그 단 일격. 그 일격이 내리치는 순간 자폭 시퀀스는 완료됐다. 융합로의 에너지가 사슬을 끊고 백열광으로 풀려났다.

다음 순간 지상에 인공의 태양이 구현되었다.

콰 아 아 아 —!

충격파가 지축을 뒤흔들었다.
어둠이 화력으로 계몽되었다.
섬광은 먹구름을 꿰뚫고 하늘 끝까지 닿았다.
폭발하는 빛이 전장의 모든 것을 유상무상의 구분 없이 집어삼켰다. 팔랑크스, 무인MEKA들, 소녀의 MEKA까지, 남김없이.

“크, 윽!”

몰아치는 빛의 폭풍을 헤치고 나는 날았다.

“송하나!”

눈이 타버릴 듯한 빛 속에서도 눈을 감지 않고 필사적으로 녀석을 찾아 헤맸다.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송하나가 자살 같은 흉내를 낼 리가 없다. 어떤 게임도 포기하지 않는 녀석이었다. 최후의 최후까지 싸워서 결국 이기는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여기서 이런 식으로, 자살같은 걸 할 리 없다. 송하나. 송하나. 송하나!

그리고 정말로 거짓말처럼,
별 없는 하늘에 그 소녀가 있었다.

마치 흩날리는 벚꽃처럼, 송하나의 작은 몸은 바람에 실려 하늘하늘 낙화하고 있었다.

“…송, 하나…?”

탈출한 것이다. 저 녀석은. 급강하하는 MEKA 속에서 최후까지 밀어닥치는 융합탄을 요격하다가, 자폭하기 직전 정확히, 파일럿 비상탈출로.

그러나 무의미했다. MEKA로부터 날개 없이 하늘로 던져진 소녀는 추락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슈퍼플레이의 의미도 없이, 송하나는 죽는다. 만유인력만큼이나 확실하게.

그럼에도 이런 위험한 게임을 플레이한 녀석이 뭘 믿고 그랬는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나였다.

저 녀석은, 나의 슈퍼세이브를 믿고 있었다.

“씨발 게임 좆같이 하네…!”

아니, 말도 안 된다. 이 거리에서 이 속도로 떨어지는 여자아이의 작은 몸을 MEKA로 아무 상처 없이 받아내는 일 따위, 가능할 리가 없다. 나는 D.va가 아니다. 나는 못한다. 그런데도 저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믿고 목숨을 건 것이다. 정작 나한테는 아무 말도 안 한 주제에, 나라면 당연히 가능하리라는 듯이, 저, 제멋대로인, 애새끼는!

그러나 머리보다 먼저, 내 몸이 이미 송하나에게로 날고 있었다.

콰앙!

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릴 것처럼 작은 소녀가 지구보다도 더 큰 인력으로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지상에서 폭발하는 원자로보다도 더 눈부신 빛이 저기 있었다. 중력이 소녀를 하늘에서 떨어뜨리는 것보다 먼저 내가 소녀를 잡아야 했다. MEKA를 가속, 가속, 가속한다. 먹구름을 헤치고 어둠 속을 달린다. 송하나를 향해서 필사적으로 조종간을 뻗는다. 가라. 가라!

“가라아아아아아아아!”

소녀가 닿았다.

MEKA의 팔이 떨어지던 소녀를 받았다.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은 나비처럼 지쳐서 내려앉은 소녀[1]를, 나는 다시는 놓치지 않고 MEKA로 끌어안았다. 아직 송하나가 이 세상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

늦지 않았다. 살아있었다. 아직, 살아있었다.

그리고 MEKA는 급강하했다.

콰아아아!

“크으으윽!”

소녀가 받을 충격을 대신 받아내며, 소녀가 떨어지던 그 속도 그대로. 기수가 아래로 향하고 중력이 역전됐다. 지면이 머리 위로 노도처럼 밀어닥쳤다.

몸을 짓누르는 가속도 속에서 나는 이를 악물었다.
아니. 추락할 수는 없다. 지금은 안 된다. 지금 나는 홀몸이 아니었다. 송하나가 함께 있었다.
이를 악물고 부스터를 컨트롤한다. 중력에 반항하고 유체역학을 제압한다. 별 없는 하늘에서 부스터를 별처럼 명멸하게 하며 MEKA가 춤춘다. 역추진. 역추진!

쿠우웅!

그리고 지축을 울리는 굉음이 있었다.

재와 먼지를 말아올리며, MEKA가 연착륙했다.

“하아…, 하아…, 하아…,”

믿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기적 같은 슈퍼세이브였다. 내 생애 모든 게임을 통틀어 최고의 플레이였다.
그러나 송하나의 목숨을 걸고 한 게임 따위, 이겨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다시 발 딛은 그곳에서, 나는 퉁기듯 일어나 캐노피를 열어젖혔다.

“송하나!”

소리쳐 부르는 것은 그 소녀였다. 그 소녀 외에는 인간도 MEKA도 옴닉도 아무도 없었다. 이미 MEKA의 자폭이 휩쓸고 지나간 지상에 남은 것은 나와, 내 공성MEKA의 팔에 안긴 송하나뿐이었다.

“송하나! 괜찮아!?”

MEKA의 강철 팔 위에 누운 그 소녀는 아직도 잠자는 공주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송하나!” 하고,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다시 그 이름을 소리쳐 부르자, 그제야 송하나는 감았던 눈을 힘겹게 떴다. 아직도 꿈꾸는 듯한 몽롱한 눈으로 나를 보고, 소녀는 배시시 웃었다.

“올…, 호랭이, 좀 멋진데…?”

“뭐?”

내 귀를 의심했다.

“야, 뭐?” 하고 되묻는데도 대답은 없이, 그 녀석은 저가 말한 주제에 부끄러운 듯이 또 저 혼자 제 배를 안고 키득거리고 있었다. 그런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은 반응이, 참을 수 없었다.

야 송하나. 너 지금 죽을 뻔한 거야. 아니, 내가 실수했으면 넌 지금 죽었어. 그런데, 뭐?

“—송하나. 너 지금 뭐 한 거야. 너! 왜 나랑 플레이할 때만 이래! 너 진짜 죽고 싶어!?”
“안 죽어. 호랭이가 커버해주잖아. 어떤 게임이든 계속, 계속.”
“그걸 왜 네 멋대로 정해!? 대체 왜 믿을 새끼가 없어서 날 믿어!? 만약 내가 커버 못하면!? 내가 안 되면!?”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도, 이번에는 아무리 호랭이라도 안 될지도 몰라, 이렇게 미움받았으니까 어쩌면 커버 안 해줄지도 몰라, 그러니까 안 돼도 어쩔 수 없어, 그렇게 생각했는데,” 노래하듯이 속삭인 소녀는 나를 보고 웃었다.

“그런데, 와줬잖아. 뭐야, 이 호구가. 입으로는 싫다면서. 대체 얼마나 날 좋아하는 거야.”

그렇게 언제나처럼 장난스럽게 웃는 소녀 앞에서, 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래서 싫었다.
혼자서는 절대 하지 않는 위험한 게임을 나와 함께하는 팀플레이에서는 언제나 아무렇지도 않게 플레이하는 이 녀석이, 이래서.

아니, 이번에는 심지어 게임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죽을 수도 있었다. 이 녀석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이미 나는 죽을 것처럼 힘들었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모르고 나를 보면 웃는 이 녀석이, 내 마음을 가지고 장난치는 이 녀석이, 이래서!

“송하나 너—!”

그러나 고함치던 내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그 순간, 수평선으로부터 빛이 폭사했다.



[1]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공주(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온다.”(김기림, “바다와 나비,” 1939)

덧글

  • 이단 2018/08/22 10:10 # 답글

    긴박하고 박진감 넘치면서도, 게임 플레이가 교묘히 오버랩되면서 어쩐지 중계진이 붙어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전투네요.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 kidovelist 2018/08/22 17:58 #

    추억 속의 게임들을 열심히 떠올려가면서 썼죠. 쓰면서도 참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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