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워치 : D.va의 게임 / 5 소설


전편


쿵.

부산 앞바다를 가득 메운 옴닉의 군단은 진군한다.

쿵.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바다를 가르는 옴닉 절단로봇, 옴닉 섬멸로봇, 옴닉 폭탄로봇, 옴닉 돌격병, 기타 수백 수천 수억 옴닉의 군단병들. 그 사이로 천둥 같은 발소리를 울리며 바다를 걷는 기계장치의 신: 초 타이탄 급 옴닉이 있었다.

쿵.

내가 맞서 싸워야 할 공포가, 저기 있었다.

죽을 수도 있다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처음 송하나의 뒤를 쫓아 입대하기로 결심한 그때부터, 계속. 전투라면 몇 분 전까지 무인MEKA들을 상대해봤다. 아무리 우승도 못 해본 2류라 해도 나도 프로게이머, 그것도 무패의 챔피언 D.va에 몇 번이고 맞서 싸운 세계랭킹 2위의 프로게이머 T.ger다. 이 정도 긴장, 이 정도 공포는 익숙해야 했다.

그러나 이건 게임이 아니다.

나는 분명히 오늘 여기서 죽는다. 이것도, 각오한 일이다. 그러나 만일 내가 여기서 실패하면 나뿐만 아니라 송하나를, 부산을, 오백만 시민의 생명을 잃고 만다. 내가 아는 게임은 이렇지 않았다. 나는 송하나가 아니었다. 나는 두려웠다. 상식에 얽매인 범재인 나는 도저히, 이런 전쟁을 게임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송하나가 그렇다고 한다면; 나는 믿는다.

전쟁이라고 해도 결국 시뮬레이션이 아닌 RTS, MEKA를 조종해 적을 쏘아 맞추는 FPS, 지켜야 할 거점이 있는 MOBA, 언제나 플레이하던 스타크래프트6나 다름없다.

문제라면 나 자신과, 내가 잘 아는 도시와, 내가 사랑하는 소녀의 생명이 걸렸다는 것.

그러나 그것이 무슨 게임이든 상관없이 무조건 이기기 위해 플레이하는; 나는, 프로게이머다.

컴퓨터게임이 탄생한 지 1세기가 지났다. 그 100년의 시간동안 변하지 않은 게임의 룰이 단 하나 있다면 컴퓨터는 사냥감, 플레이어는 사냥꾼이라는 철칙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최정점에 선 세계랭킹 1위와 2위; 무려 1세기동안 전 세계 게임계를 지배해온 세계 최강 대한민국의 프로게이머들이다.

D.va가 옳았다. 게임을 하면 이겨야 했다.

이 게임의 메인미션은 부산의 사수, 그리고 송하나의 생존. 불가능한 게임이었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열정만으로는 안 됐다. 훈련했던 기술로도 부족했다. 지금부터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힘까지 전부 끌어내 발휘해야 했다.[1]

이제, 다시 게임을 플레이할 시간이다.

다시 조종간을 쥔다. 게이밍기어를 잡을 때와 같이.

다시 눈을 들자 익숙한 광경이 있었다. MEKA라는 이름의 유닛도, 러쉬해오는 옴닉의 군단도, 함께 플레이하는 D.va도 언제나 플레이하던 게임과 같았다.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더 이상 두렵지도 외롭지도 않았다. 이런 일생일대의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프로게이머의 영광이었다.[2]

“호랭이!”

나를 부르는 내 듀오를 위해, 기어를 올렸다.

그리고 공성MEKA는 모드를 전환했다.

카악!

로봇 발 안에 숨겨져 있던 강철의 발톱이 맹호의 그것처럼 튀어나와 땅에 박힌다. 자세를 낮추고 도사리는 MEKA의 등에서는 스페이드가 나와 지면으로부터 동체를 지탱한다. 후방의 부스터는 푸른 불꽃을 뿜으며 기체에 닥칠 충격을 상쇄할 준비를 한다.

그렇게 기동을 포기하고 방열한 공성MEKA는, 거대한 고정포탑으로 화한다.

지금부터 사용할 무기는 융합포 같은 장난감과는 달랐다. 주퇴복좌기 정도로는 절대 버틸 수 없는 대질량의 반동이다. 고정 없이 그대로 발포하면 이런 장난감 같은 로봇 따위 간단히 뒤집혀 날아가버린다. 스페이드와 부스터까지 모조리 총동원해야 겨우 받아내는 것이 가능한, 그야말로 대충격의 무기. 그것을 위한 공성MEKA의 제2형태, 공성모드였다.

그렇다. 모든 것은, 바로 이 주포를 위해.

크르르르륵—,

공성MEKA 오른팔의 융합포가 맹호의 아가리처럼 벌려진다.
그 사이로 수납되어 있던 거대한 포신이 전개된다.
창기병의 창처럼 뽑혀져 나오는 그 120mm의 주포야말로 지상전의 왕자라고 불리는 기갑의 2060년식 최종 진화형태이자 대한육군 기동 화력의 정점. 옴닉이라는 강철의 괴물들에 맞서기 위해 장착된, 공성MEKA의 궁극기.

그 이름, 120mm 충격포.

철컥!

포신으로 대전차 철갑탄이 장전된다. 축전기로부터 레일로 전격이 달린다. 눈앞에 펼쳐지는 조준선 안에 해일처럼 몰려드는 옴닉의 군단이 완벽히 잡힌다.

거대한 면을 이룬 옴닉의 해일 속에서, 조준하는 것은 그 무게중심을 꿰뚫을 단 1개의 직선.[3]

“이니시! 열어!”

D.va의 오더에 나는 따른다.

쿠웅!

충격포는 그대로 전장을 꿰뚫었다.

그리고 일직선상에 위치한 모든 옴닉이, 삭제됐다.

콰 아 아 아 !

진정한 전장의 신 앞에서 거짓 신을 믿던 옴닉의 바다는 갈라졌다. 그 탄도상의 어떠한 장갑, 어떠한 방어도 충격포를 막지 못했다. 방패와의 경쟁에서 최종승리한 그 궁극의 창은 모든 방어를 유상무상의 구분 없이 꿰뚫었다. 옴닉의 군단 최선두부터 최후미까지, 남김없이.

탄도를 따라 공기가 찢기고 플라즈마가 불타올랐다.
그 불의 폭풍 속에서, 옴닉의 진군은 일순 침묵했다.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저 침묵의 의미는 의문이었다.

무한궤도로 모든 변수를 짓밟아 분쇄하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작동하던 옴닉이라는 이름의 그 무자비하고도 정교한 전쟁기계는, 그러나 나와 송하나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 고작 유인MEKA 2대 따위, 상륙하기 전에 가볍게 격파했으리라 생각했겠지.
그 파일럿이 누군지 알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했겠지.
그러나 틀렸다. D.va와 T.ger는 여기 있었다. 이렇게, 살아, 역사하고 있었다.

그 치명적인 오류를 배제하기 위해, 옴닉은 즉시 대응했다.

쿠우우우우우—!

군단의 전열에서 미사일들이 솟아올랐다.

백색의 꼬리를 길게 끌며 유성처럼 하늘을 나는 미사일들은 우리를 정조준하고 있었다. 그 수, 어림잡아 일백. MEKA의 전자전 장비가 미친 듯이 ECM을 돌리며 미사일들을 교란시키려 하고 있었지만, 틀렸다. 옴닉은 대화 따위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피할 수 없었다. 적들 앞에서 무방비로 고정되는 공성모드 따위, 이래서 원래라면 자살행위였다.

“송하나! 온다!”

그러나 지금 내 무릎 위에는 사상 최고의 프로게이머가 있었다.

그 순간 송하나가 방어 매트릭스를 펼쳤다.

상대는 초고속으로 밀어닥치는 백수십 개의 미사일. 유체역학을 희롱하며 하늘 위를 춤추는 그 복잡기괴한 궤적들에 반해, 이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인간, 그저 열여덟 살의 가련한 소녀일 뿐이었다.

그러나 빗발치는 미사일에 맞서 이지스의 방패를 세운 나의 아테나는 겁 없이 웃고 있었다.

“—그럼, 어디 APM 좀 올려볼까?”

마치 노래하는 듯한 송하나의 그런 목소리와 함께, 미사일 전탄이, 동시에, 요격당한다.

카가가가가각!

방어 매트릭스로 쏘아진 레이저들이 미사일들을 갈아버린다. 그 즉시 허공에서 폭발하는 미사일들의 메탈제트가 잿빛 하늘을 불꽃으로 수놓는다.

송하나의 손이 조종간 위를 피아노치듯 날고 있었다.
순수한 인간의 눈과 손만으로, 백여 개의 타겟을, 동시에, 추적 교전하고 있었다.
그 무엇도 D.va의 손가락을 피할 수 없었다. 일순간, 모든 탄두가, 남김없이, 요격당한다.

카가 카가각 카가가각각!

녀석의 가장 가까이 있던 나조차 그 플레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비상식. 비합리. 비범의 영역을 넘어 이제 비현실의 영역에 달한 그 기적 같은 플레이는 오직 D.va의 것이었다. 나는 D.va가 아니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내가 할 일이 있었다.

철컥!

철갑탄이 재장전된다. 축전지가 재충전된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포신이 증기를 내뿜으며 급속냉각 되고, 그것으로 단 4.17초만에 공성MEKA는 다시 기적을 행사할 준비를 완료한다.

미사일이 날아온 군단의 중심을, 정조준한다.

“쏴!”

트리거를 당긴다. 축전지에 충만했던 막강한 전력이 단숨에 풀려나 포신 내부로 인공의 번개를 일으킨다. 아크라고 불리는 그 플라즈마의 번개가 화약을 내리치고 완전연소로 폭발시킨다. 쏘아져 나가는 철갑탄을 따라 레일로 달리는 전격이 가속의 마법을 구사한다. 전기. 화학. 물리. 자연계를 구성하는 3종의 힘 합동의 그 막강한 마법에 소요된 시간, 단 100분의 1초.

그 속도: 문자 그대로 신속!

쿠웅!

포구에서 뿜어진 포탄은 그대로 옴닉의 군단을 꿰뚫었다.
공포와 협상하지 않는 그 일직선의 탄도가 재차 군단의 1개 열을 부산해상에서 지워버렸다.
120mm의 텅스텐 탄자가 그리는 눈부신 빛의 궤적에 군단은 갈라졌다. 초고온과 초고압으로 타오르는 플라즈마의 후폭풍이 궤도상의 옴닉들을 남김없이 휩쓸었다. 옴닉들이 불타고 바다가 끓어올랐다.

콰 아 아 아 !

그 지옥 같은 불과 증기의 바다를 헤치고, 기계장치의 신이 다가오고 있었다.

쿵.
쿵.
쿵.

부서져 죽어가는 옴닉들 위를 걷는 그 괴물은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지축을 뒤흔드는 그 거대한 발 아래에 부순 것보다 더 많은 옴닉들이 역병처럼 기어오고 있었다. 타오르는 불과 연기의 먹구름 속에서 그것들의 렌즈만이 붉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잠드는 일도 깜빡이는 일도 없는 그 기계장치의 눈동자들이 장막 너머에서 우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다시, 미사일이 치솟아 오른다.

먹구름을 뚫고 빗발치는 미사일들에 맞서, 송하나는 겁도 없이 웃었다.

“그러니까, 안 통한다니까!”

콰앙! 쾅! 콰앙!

소녀가 펼친 방어 매트릭스 앞에서 쇄도하던 미사일들이 한 순간 불꽃축제로 바뀌었다. 매트릭스째 부숴버릴 듯이 허공을 두드리는 탄두들로 시야가 불타올랐다. 눈이 타버릴 듯한 그 폭발 너머로, 옴닉의 바다가 보였다. 정조준하는 것은 불과 연기의 장막 속에서 붉게 빛나는 저 기계눈들. 재장전, 재충전!

“쏴!”

쿠구궁!
“큭…!”

탄도와 탄도가 공중에서 교차하며 전장을 가른다. 반동이 기체를 덮치고 발밑의 지각을 깎아낸다. 몸이 부서질 듯한 그 거대한 충격을, 이를 악물고 견딘다. 충격포의 트리거를 놓지 않는다. 손을 멈추지 않는다. 다시. 다시. 다시!

쿵!
쿵!
쿠웅!

휘몰아치는 불의 폭풍 속에서도 옴닉의 진영 한가운데 꽂히는 충격포는 똑똑히 보였다. 철갑탄이 어둠에 불을 당겨 전장을 불사르고 있었다.

그 작렬하는 화력 앞에, 군단의 전모가 다시 드러나 보였다.

나는 필사적으로 눈을 뜨고 전장의 안개 너머를 직시했다. 얼마나 죽였지? 얼마나 남은 거지? 백? 천?

쿠웅!

그리고 충격포의 화광 앞에 다시 드러난 그것들의 수는 아직도 무한이었다.

“…뭐?”

충격포의 불길이 갈랐던 옴닉의 바다는 물처럼 매워져 있었다.
충격포라는 무제한의 화력을, 옴닉은 무한대의 물량으로 지워버리고 있었다.

숨이 막혔다. 저건, 안 된다. 저건 저지할 수 없다. 저 격차. 저 절대적 격차의 물량이야말로 옴닉이라는 기계장치의 신이 20년 동안 심연에 도사리며 준비해온 대마법임에 분명.

쿠웅!

포효하는 충격포를 헤치고 바다를 기어나오는 그것들의 뒤틀린 형상이 보였다. 1열 뒤에 2열이, 2열 뒤에 3열이, 마치 하멜른의 쥐떼처럼 꼬리를 물고 기어올랐다. 막을 수 없었다.

“이…!”

결국 옴닉의 군단이 육지에 오르고 있었다.

마침내 땅 위에 발 딛고 일어선 옴닉 들이 무기를 들어올리고 있었다. 명백히 용도를 착각한 그 거대한 기관포는 표적을 흔적도 없이 갈아버리기 위한 분당 720발짜리 초고속의 재앙이었다.

질식할 듯한 무력감을, 삼킨다.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되뇐다.
계속 생각해라. 계속 움직여라. 플레이를 멈추지 마라. 게임은 끝나지 않는다. 온다. 온다!

“송하나!”
“쏴! 지금!”

그리고 충격포와 옴닉의 포화가 허공 중에 교차한다.

쿠웅!



[1] 게임캐스터 전용준 “지역에서 1위를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열정이 대단하다? 에이, 그거 가지곤 안 됩니다. 그러면 훈련만 많이 하면 되느냐,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팀플레이 호흡이 잘 맞으면 되느냐,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다일간의 서바이벌 게임 MSI에서 우승하기 위해선 여러분은 여러분의 없는 실력까지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바로 집으로 가는 짐을 쌀 겁니다.”(LoL Esports, 2015 Mid-Season Invitational: What Defines a Champion(https://youtu.be/c0EAyGTXo2E))
[2] “양심은 부끄럽지 않다. 외롭지도 않다. 영원한 민주주의의 사수파(死守派)는 영광스럽기만 하다.”(“서울대학교 문리대 학생의 4.19 선언문,” 우리역사넷(http://contents.history.go.kr/front/hm/view.do?treeId=010801&tabId=01&levelId=hm_149_0020))
[3] 탄도는 직선이 아니지만 작중 서술자 이시백은 문과이기 때문에 올바른 고증이다.

덧글

  • yail0 2018/05/31 00:59 # 삭제 답글

    문과가또
    그러고보면 부산 앞바다인데 광안리 해수욕장이다 같은 언급이 있었으면 했네요.
  • kidovelist 2018/05/31 11:38 #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부산에서 프로게이머들이 싸우는데 광안리가 안 나오면 안 되죠. 그래서 바로 7화에 그 얘기가 나옵니다.
  • 이단 2018/08/23 07:06 # 답글

    오버워치를 하지 않아 그 캐릭터나 배경에 대해 잘 모르지만, 순전히 kidovelist 님이 쓰신 글 때문에 이번에 공개된 시네마틱 영상을 찾아봤네요. 글로 담아낼 수 없는 영상만의 매력이 있다면, 그 역도 성립할 테고 D.va의 게임이 그걸 보여주는 것 같아 즐겁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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