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워치 : D.va의 게임 / 6 소설


전편


카가가가가가가가각!

탄환이 부딪혀 갈려나가는 굉음. 쇠가 깨지며 퉁기는 번개. 총성보다 빠르게 날아와 박히는 침묵의 초음속탄이 빗발쳤다. OR14들의 30mm 열화우라늄탄이 방어 매트릭스에 꽂히고 불꽃으로 타올랐다. 송하나의 방패가 금방이라도 깨질 듯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녀석의 악문 이 사이에서 힘겨운 신음이 새어나왔다.

“으, 긋…!”
“기다려! 이제—, 간다!”

크르르르륵—!

공성모드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융합포를 강제로 뽑아들자 시스템이 비명을 질렀다. 듣지 않는다. 문제없다. 흔들리는 조준선은 프로게이머의 눈으로 커버하면 된다. 자동사격보다 APM 420의 손가락이 빠르다.

“지금!”
투두두두두두두!

MEKA의 왼팔에서 융합포가 불을 뿜었다. 작렬하는 융합탄이 옴닉을 앞렬부터 갈아버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족했다. 적의 물량은 무한대였다. 충격포가 필요했다. 단 4.17초 쿨타임, 그 기적 같은 급속사격 모드가 지금은 영원처럼 느리게 느껴졌다. 나는 미친 듯이 소리쳤다.

“재장전, 빨리, 재장전재장전재장전재장전!”

철컥—, 하는, 충격포가 장전되는 금속성 소음에, 머리보다 손이 먼저 반응했다.

쿠웅!

MEKA의 진정한 화력이 작렬했다. 120mm의 텅스텐 탄자가 육지에 오른 옴닉들 가운데 꽂히고, 그대로 꿰뚫었다. 장갑을 분쇄하는 무제한의 화력이, 탄도를 좇아 일어나는 충격파가 부산 해안을 폭풍으로 휩쓸었다.

그러나, 안 된다.

기어오는 옴닉은 무한대의 물량으로 바다를 메워버리고 있었다. 부수는 옴닉보다 새로 육지로 올라오는 그것들의 수가 많았다. 산산이 부서진 1열의 옴닉들 뒤로 다음 열이, 그 다음 열이, 그 다음 열이 일어서고 있었다. 융합포를 미친 듯이 응사해보지만, 역부족이었다. 초당 1,000발씩 쏟아지는 십자포화가 매트릭스를 미친 듯이 두드리고 있었다.

카각! 카가 카가 가가가가가가각!

“송하나!”
“읏…! 괜찮, 으니까…! 나만, 믿어…!”

이를 악물고 애써 웃어보이는 그 늠름한 소녀는, 언뜻 언제나의 D.va처럼 보였다.
그러나 소녀와 가장 가까이 있는 나는, 소녀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볼 수 있었다.
내 무릎에 앉은 소녀의 땀에 젖은 머리카락도, 필사로 악문 이도, 가쁘게 몰아쉬는 숨도 전부, 내게는 보였다.
도저히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짙게 드리운 그 패색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나는, 이 녀석의, 이런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이, 개같은, 새끼들…!”

옴닉들에게 분노가 터졌다.

그렇다. 분노였다. 타는 듯한 분노가 혈관을 타고 달리고 있었다. 그것은 질투였다. 나 아닌 그 누구에게도 송하나의 패배를 허락하기 싫다는, 치졸한 독점욕이었다. 아무도 이 녀석에게 이런 표정을 짓게 할 수 없다. 아무도 이 녀석을 지게 할 수 없다! 아무도! 나 아닌 아무도!

“송하나! 나 공성모드 접는다!”[1]

이대로 당해줄 수는 없다.

“뭐?”
“둘, 삼, 오 번 부스터 맡아! 이제부터 무빙샷 할 테니까!”[2]
“무빙—, 뭐? 이시백 너 무슨 소리—!”

그제야 놀라 숨을 삼키는 소녀의 항의를 듣지 않는다.

철컥!

일방적으로 공성모드를 해제해버린다. 철컥. 지면에 박혔던 스페이드가 다시 뽑힌다. 철컥. 고정발톱이 다시 로봇발 안으로 들어왔다. 철컥. 다시 날아오를 준비를 마친 부스터들이 불꽃의 날개를 펼치고—,

“그만!”

이제 기어를 올리려는 내 손을, 무언가가 가로채 잡았다.

“그만…, 하지 마…, 그러면, 너까지 죽어…!”

송하나가 떨리는 손으로 내 손목을 쥐고 있었다. 돌아보자 울 것처럼 겁먹은 그 소녀가 있었다. 자기는 죽어도 좋은 듯이 위험한 플레이만 골라 하던 주제에, 나까지 죽는 건 또 싫은 것처럼; 갑자기 겁쟁이가 돼버린 소녀가 떨고 있었다.

“그러지 마…, 충격포, 넣어…! 대미지 부족한 건, 내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히야!?”

소녀의 손을 마주잡자, 소스라친 그 소녀에게서 그런 귀여운 소리가 났다.

나도 알았다. 이 녀석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충격포의 막강한 반동 앞에서 고작 수 톤의 MEKA 따위는 장난감처럼 날아가버린다. 그것을 위한 방열, 그것을 위한 공성모드였다.
그러나, 나는 그 재주 있는 손을 놓지 않고 소녀의 귓가에 힘 주어 속삭인다.
걱정 마. 한 번만 믿어줘. 나, 네 서포터야. — 하고. 좋아하는 여자아이 앞에서 있는 힘껏, 허세를 부려본다.

따라와. 캐리해줄게.[3]

“읏…!”

송하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고개를 숙여 나에게서 얼굴을 숨겨보지만 빨개져버린 귀는 감출 수 없었다. 눈으로는 계속 방어 매트릭스를 주시하면서도 분한 듯이 떨리는 그 고양이눈매는 나를 노려보는 것만 같았다. “치사하게…, 이럴 때만…, 그런 식으로…,” 하고, 작게 가르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진짜, 누가, 누구보고 제멋대로란 거야…, 너 미쳤어…! 알아…!?”

알고 있었다. 그런 것쯤. 상관없었다. 네가 지지 않게 할 수 있다면.

고개숙였던 소녀는 마침내, 눈을 치떴다.

“…좋아. 까짓 거. —어디 한 번, 해 보지 뭐!”

쿠우우우우—!

조종간을 쥔 송하나의 손을 함께 잡는다.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액셀레이터를 밟고 기어를 올린다. 오른손은 충격포를, 왼손과 양발은 부스터를 직접 통제한다. 공성MEKA는 거대한 충격포를 창기병의 창처럼 세우고 땅을 박차 날기 시작한다. 사냥감을 뒤쫓는 옴닉들을 향해 포탑을 돌리며,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저 이론상의 가능성이다.
시도조차 해본 적 없는, 그저 상상의 영역일 뿐이다.
그러나 그런 공상과 허언의 입스타를 현실로 끌어내리는 것이 프로게이머가 하는 일이다.

피하는 일도 도망치는 일도 없이 똑바로 앞을 보며, 카운트다운으로 오더한다.

“셋.
둘!
하나!”

쿠웅!

그리고 충격포에서 번개가 퉁겼다.

무제한의 화력이 뒤를 쫓던 옴닉들로 작렬했다. 텅스텐의 번개는 옴닉들에 내리꽂히고, 남김없이 꿰뚫어 불태워버렸다.

그와 동시, 막강한 화력에 상응하는 막강한 반작용이 MEKA를 덮쳤다.

육중한 MEKA의 동체가 마치 장난감처럼 튕겨나간다. 오른팔의 충격포에서 밀어닥친 반동이 동체를 시계방향으로 비틀어 꺾어버린다. 콕핏으로 보이는 세계가 뒤집힌다.

그러나, 통제를 잃지 않는다.

전 부스터가 컨트롤에 따라 불을 뿜는다. 등 뒤로 펼쳐진 그 불꽃의 날개들이 충격을 흡수하고 통제할 수 없는 무질서를 통제한다. 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자신. 스스로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 머릿속으로 그리는 이미지는, 내 무릎 위의 소녀의 것과 같은 아름다운 궤적.

“가 라아아아아아아아!”

맹수처럼 포효하며 몸을 짓누르는 반동을 뿌리친다. 날아가는 MEKA 위에서 기수를 돌린다. 부스터의 방향을 바꾼다. 반동마저도 이용해 그대로, 활주한다.

다음 순간 MEKA는 날고 있었다.

콰아아아 아 아 아 !

아니, 더 이상 반동에 퉁겨져 날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명백히 자신의 날개로 자신의 운명을 통제하며, MEKA는 날고 있었다.
뒤를 쫓던 옴닉들은 충격포를 맞고 부서져 불타고 있었다. 상정을 벗어난 기동을 따라오지 못한 적탄은 허공을 갈랐다. 잿빛 하늘 아래 오직 MEKA만이 홀로 빛나고 있었다.

이긴 것은 우리였다.

“이게…, 살아…?”

소녀의 숨이 멎을 것만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하, 하하, 하하하하하하!”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으로 이 녀석을 놀라게 한 것이다.
처음으로, D.va에게 1승을 거둔 것이다.

그랬다. 이건 반칙이었다. 적어도 물리법칙을 한두 개쯤 어긴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게 어쨌다고? 게임의 시스템을 뛰어넘는 것이 프로게이머의 전공이다. 세계 최고의 프로게이머 앞에서 물리법칙 따위 단순한 참고사항에 불과하다. 이것도 언제나 송하나, 네가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짓이었다. 그리고 네가 최고라면 너를 상대하는 나도 최고여야 했다.[4]

“어때! 송하나! 반할 것 같아!?”

마음껏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암컷에게 과시하는 수컷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하.”

놀라서 숨을 삼키고 있던 송하나는 그제야 겨우, 달뜬 숨을 토했다.

“…뭐야, 그거. 농담?”

그리고 나를 돌아본 녀석의 찌푸린 얼굴은 장밋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아니면, 설마 그런 걸 보여주고서, 반하지 말라고…?”

마치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빨개진 그 얼굴이, 정말로 나를 좋아하기라도 하는 것 같아서;

“어…?”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반응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저가 말하고도 부끄러운 듯이 내 눈을 보지 못하는 소녀의 눈이, 그러면서도 내 품에 안긴 채 피하려 하지 않는 소녀의 몸에서 전해지는 두근거림이; 도저히 언제나처럼 어리고 귀엽게만 생각할 수 없었다.

저 녀석이 나 같은 걸 좋아할 리가 없는데. 나도 아는데.
그런데도, 저런 얼굴을 보고 있으면, 무심코 착각해버릴 것만 같았다.

“아니…, 난…,”

어느새 이렇게 변했을까. 얇은 파일럿슈트 너머로 느껴지는 여자아이의 몸은 내가 처음 만났던 중학생과는 다르게 부드러웠다. 나와 같은 인종이라고는 믿을 수 없도록 가녀리고 섬세한 몸은 함부로 다루면 망가질 것만 같았다. 그런 작은 몸으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하고 늠름한 그 소녀가, 새삼 기적처럼 특별해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사이에도 충격포의 재장전 시퀀스는 계속 돌고 있었다.
새로 육지에 기어오른 옴닉들이 다시 해안을 가득 매우며 몰려오고 있었다.
아직 게임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나와 송하나 중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 숨막히는 침묵에 견디지 못했는지; 송하나가 먼저 도망치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제, 난 몰라. 어디 니 맘대로 해봐.”

들릴 듯 말 듯 속삭이는 소녀의 그 삐진 척하는 말은, 그러나 나 아닌 어느 누구에게도 허락된 적 없던 신뢰의 말이었다.

기뻤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슨 소릴 하고 있어. 무빙은 네가 하는 거잖아?”
“뭐…?”
“방금 봤지? 둘, 삼, 오 번 부스터 잡아. 다음 스킬샷, 준비해.”
“야, 잠깐만. 이시백, 너 지금 나보고 뭐 하라고…?”

당황한 소녀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랬다. 이건 말도 안 됐다. 화를 내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 지금의 플레이가 내 한계였다. 이 난폭한 조종으로 적탄을 피한 것은 반은 운이었다. 나 혼자서는 이 이상은 할 수 없었다. 나에게는 이 녀석이 필요했다. 이런 비상식과 비합리의 영역이야말로, D.va의 전공이었다.

“자, 송하나. 어서.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잖아.”
“그러니까, 즉석에서 그대로 리플레이하라고? 딱 한번 본 니 역대급 슈퍼플레이를?”
“이거 왜 이래? 너 할 수 있잖아? 천재 프로게이머 디바 님.”
“—하, 하하. 이시백, 너 진짜 뭐야. 너, 대체 얼마나 날 싫어하는 거야.”

내 억지에 소녀는 지친 듯이 웃어버렸다.
그러나 고양이처럼 손톱을 세운 손이 부스터의 기어에서 내 손을 쳐냈다.
돌아본 그 녀석의 얼굴은 어느새 언제나의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좋아, 이 빌어먹을 호랭이,” 하고. 조금 전까지 숙녀처럼 수줍어하던 그 소녀가 거짓말 같이, 얄미운 웃음을 지은 녀석은 꼭 체셔고양이 같았다.

“이 디바 님이 한 수 가르쳐줄 테니까, 눈 크게 뜨고 잘 보시지!”

그리고 MEKA가 급발진했다.

콰아앙!

부산 해안은 이미 심해에서 기어오른 옴닉이 가득 매우고 있었다. 죽인 옴닉들의 잔해를 밟고 산 옴닉들이 진군하고 있었다.

흔들리는 조준선 너머로 기어오는 혼돈을 응시한다. 이제 기수는 D.va였다. 나의 거친 조종과는 다른 소녀의 부드럽고 섬세한 기동에 나를 맞춘다. 녀석의 눈을, 녀석의 손을, 녀석의 생각을 읽는다. 할 수 있었다. 언제나와 같았다. 나는 D.va의 듀오였다. 이 녀석을 서폿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다.

“열한 시 이디나! 쏴!”

D.va의 오더에 맞춰, 트리거를 당긴다.

쿠웅!

초근거리에서 작렬한 충격포가 전장을 휩쓸었다. 모든 장갑을 꿰뚫는 120mm 텅스텐 탄자가 날고 불과 폭풍이 탄도를 뒤쫓아 옴닉들을 지워버렸다.

그와 동시, 만유에 평등한 물리법칙이 예외 없이 MEKA를 후려쳤다.

그러나 이번에도 MEKA는 추락하지 않았다.

쿠 우 우 !

충격도 동요도 없었다. 마치 춤이라도 추는 듯한 부드러운 궤도로 MEKA는 날고 있었다. 조종간 위를 달리는 소녀의 손가락을 따라 별빛처럼 점멸하는 부스터들이 아름다운 궤적을 그려냈다. 오로지 직관만으로 MEKA의 반동부터 적탄의 방향까지 모조리 예측한 D.va의 그 무빙은 결코 내 카피캣 따위가 아니었다. 이건, 명백한, 상위호환이었다.

“하! 봤지!? 대답해! 누구 캐리!?”

그리고 그 기적 같은 슈퍼플레이를 한 역대 최고의 프로게이머는 거짓말처럼 열여덟 살의 소녀로 돌아와 있었다.

“야 이시백 너! 너도 빨리 고백해! 나한테 반했다고!”

어린아이같이 흥분한 그 녀석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마음껏 포효했다.

내가 했던 그대로 되돌려주는 녀석의 그 귀여운 도발에, 나는 웃고 말았다. 앙갚음이라도 할 셈일까. 아니, 굳이 그러지 않아도 내 눈은 언제나 이 녀석을 보고 있었다. 그저 언제나처럼 송하나가 ‘송하나’했을 뿐이었다. 언제나처럼 나랑 같은 열여덟 살에, 유치하고, 고집스럽고, 제멋대로에다, 자존심 센 평범한 동갑내기 여자아이이자, 세계 최고의 프로게이머일 뿐이었다.

“응 아냐. 이제 와서 이런 걸로 일일이 반할 것 같아? 내가 네 플레이 몇 년 봤는지 몰라?”
“뭐야 그게! 너 건방져!”

발끈해 빽 소리치는 송하나에도 나는 내가 한 말을 취소하지 않고 혼자 웃었다.

틀렸다. 고작 이런 걸로 반한 것이 아니었다. 내 마음은 좀 더 깊고, 좀 더 오래된 것이었다.

반한 거라면 처음부터였다. 처음 이 녀석을 본 순간부터 나는 이 아름다운 눈에, 이 재주 있는 손에 어쩔 도리 없이 반해 있었다. 그러니까 아무리 이 녀석이 상대라도 이 마음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었다. 이 마음만은 온전히 내 것이었다.

“—그러니까, 언제나처럼 지지 마. 가. 가서 이겨! 디바! 네가 게임을 하면 이겨야지!”

마치 기도와도 같은 내 응원에, 그 역대 최고의 프로게이머는 부끄러운 듯이 키득거렸다.

“호랭이 너 싫어. 너, 진짜, 진짜 싫어.”

그리고 다시, 소녀의 불꽃의 날개가 펼쳐졌다.

기수를 돌리는 MEKA의 앞을 가로막는 것은 무한대의 물량으로 쏟아져 나오는 옴닉의 파도. 그 철의 장막을 헤치고 최전선으로 박차고 나온 OR14가 에너지 방패를 세우고 있었다. 옴닉의 움직임은 달라져 있었다. 부산으로의 진격은 완전히 중단되고 모든 옴닉들은 최대의 위협인 우리를 쫓고 있었다. 그것들이 비로소, D.va의 게임의 규칙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래. 이제 알았겠지. 우리가 사냥꾼, 너희가 사냥감이라는 걸.

그르르르르륵!

밀려오는 강철의 해일을 향해 융합포를 갈겼다. 작렬하는 융합탄의 푸른 불길이 닿은 모든 것을 갈아버렸다. 불타고 부서지는 돌격병들이 최후로 발악하며 반격해보지만, 안 맞는다. D.va의 방어 매트릭스가 우리를 지키며 모든 위협을 맞받아 분쇄하고 있었다. 날아오는 적탄은 깨지고, 부서져, 타올랐다.

카가각!

“호랭이! 충격포! 방향, 어디로 할 거—!”
“입 다물어! 내가 알아서 하니까!”
“뭐!?”

송하나의 콜을 거칠게 끊어버린다. 알아듣지 못한 녀석이 놀라 되묻지만, 듣지 않는다. 그러는 단 1초의 딜레이조차 낭비였다.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이 녀석이 무엇을 보는지, 무엇을 하려는지 정도는.
이미 내 눈은 정확히, 소녀의 날개가 날갯짓할 방향을 예측해 향하고 있었다.

쿠웅!

충격포가 불을 뿜었다. 모든 방패를 꿰뚫어 부수는 120mm의 창이 모순을 힘으로 깨뜨려 부숴버렸다. 철갑탄이 에너지 방패를 흡사 유리처럼 산산조각내고, 방패를 들었던 OR14까지 단숨에 꿰뚫었다.

그 막강한 물리학의 향연 속에서; 오직 MEKA만이 홀로 예외처럼, 공전하는 별과 같은 질서 있는 궤도로 날고 있었다.

“봐! 송하나 너는 내가 알아!”

이것만큼은 가슴을 펴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나는 지난 3년 동안 계속, 계속 너의 등을 쫓았다. 너와 나란히 서기 위해, 네가 나를 돌아보게 하기 위해 수백 수천 수억 게임을 했다. 물론, 그럼에도 결국 너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지만; 그러나 네가 결승에 오르면 그 앞에 섰던 것도 나, 네가 프로리그에 출격하면 듀오로 옆을 지키던 것도 나, 언제나 나였다.

그랬다. 너는 내가 알았다.

“그러니까, 가! 계속 날아! 멈추지 마! 내가 너한테 맞춰!”
“…하.”

젖은 숨을 토하며 송하나는 고개를 숙여버렸다.

캐노피 너머로 비쳐보이는 소녀의 얼굴은 어쩐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흐려져 있었다. 그 이유가 바보같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니가, 이러니까…,” 하고 떨리는 그 소녀의 목소리가, 분한 것 같기도 하고 기쁜 것 같기도 해서;

“이시백 니가! 자꾸 이런 거 아무렇지도 않게 해버리니까—!”

콰과광!

전장의 천둥에 소녀의 고백은 빗소리처럼 흩어져버렸다.
불 뿜은 섬멸로봇의 대전차포가 3점사로 날아와 꽂히고 있었다.
D.va의 매트릭스가 쏘아 맞춘 탄두는 허공에서 폭발했다.

“큿…!”

충격에 이를 악문 송하나는, 그러나 젖은 눈을 감지 않았다.

더 이상 오더는 없었다.
다음 순간 녀석의 눈이 치뜨고, 내 손이 하나가 되어 반응했다.

쿠웅!

일치된 결의로 MEKA가 반격했다. 천둥친 충격포는 바다 끝까지 날며 전장을 갈랐다. 미쳐 날뛰는 화력폭풍 앞에서도 우리의 MEKA는 침몰하지 않았다. D.va의 부스터가 날갯짓하며 나의 충격포를 굳게 지지하고 있었다. 거리를 확보한 MEKA는 땅을 박차고, 기수를 돌렸다.

콰아아—!

완벽한 균형을 유지하는 소녀의 아름다운 비행을 따라 조준선을 잡는다. 재장전 쿨타임이 도는 그 찰나의 시간 동안, 눈으로는 조준선 너머 옴닉을 보면서도 심장으로는 송하나를 느낀다. 조종간 위를 달리는 소녀의 손을, 포개진 부드러운 몸에서 전해지는 소녀의 고동을, 내게 기댄 어깨로 몰아쉬는 소녀의 호흡을 느낀다. 언제나와 같았다. D.va의 게임에 내가 맞춘다.

재장전. 재충전!

“가!”

그리고 공성MEKA의 모든 포구가 불을 뿜었다.

카가, 가—, 카가가가가가가각!

융합포가 전탄발사로 작렬하기 시작했다. 분당 4,620발의 속사가 옴닉의 기어오는 혼돈을 기어오는 속도보다도 빠르게 갈아버렸다. 부서지는 옴닉의 군단을 향하여 MEKA의 기병창: 충격포가 뽑혀올랐다.

단 100분의 1초. 포신으로 인공의 번개가 퉁기고, 충격포가 발포했다. 음속의 10배속으로 쏘아진 마탄이 궤도상의 모든 것을 유상무상의 구분 없이 꿰뚫었다.

콰아앙!
카가가가각!

날아온 적탄을 D.va의 방어 매트릭스가 맞받아 깨뜨렸다. 불꽃을 퉁기는 소녀의 방패 너머로, 내 눈이 소녀를 쏘았던 옴닉들을 놓치지 않고 포착하고 있었다. 즉시 융합포를 뿜어 불의 보복을 내리꽂는다. 무제한의 화력이 그것들이 발딛었던 지면까지 갈아엎어버린다. APM이 치솟는다. 아드레날린 업그레이드가 손끝까지 달린다. 재장전. 재충전. 발사!

쿠웅! 카가가—, 크르르르르륵!

D.va의 부스터가 작렬하는 포화를 헤치고 날고 있었다. 플레어가 빛의 날개를 펼치며 옴닉의 미사일들이 허공에서 폭발했다. D.va의 그 화려한 기동 속에서도, 내 눈에 흔들림은 없었다. D.va가 무엇을 보는지, 어디로 날려 하는지, 나는 알 수 있었다. 비유한다면 마치 여왕의 손을 잡고 춤추는 무도회. 그 소녀와 하나가 된 듯한 완벽한 게임이, 나를 흥분시켰다.

“하, 하하. 하하 하하하하!”

자신이 없었다.
이건, 질 자신이 없었다.[5]

쾅! 쾅! 쾅! 콰가가가가각!

상정을 초월한 화력으로 옴닉의 군단을 지워버린다. 이리떼 사이에서 날뛰는 한 마리 대호처럼 융합포와 충격포로 찢고 부수며 미쳐 날뛴다. 마탄의 휴행탄수가 허락하는 한 우리에 대적할 것은 없었다. 옴닉 절단로봇, 옴닉 섬멸로봇, 폭탄로봇, 옴닉 돌격병, OR14; 그 모든 옴닉들을 한 데 모아 때리고, 부수고, 무너버린다.[6]

“어디 더 와봐! 더! 더—!”

그렇게 포효한 순간,

쿵.

기계장치의 신이, 나의 도발에 응했다.

쿵.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쿵.

눈을 든 그곳에, 초 타이탄 급 옴닉이.

쿵.



[1]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매드라이프’ 홍민기, “나 블리츠 크랭크 할 거야”(OGN, OFF THE RECORD S2 8th_SAMSUNG Ozone vs CJ Frost(https://youtu.be/bc6dADs3eN4?t=20m15s), 20:15부터)
[2] 시즈탱크(공성전차)의 시즈모드 무빙샷은 스타크래프트1(블리자드, 1998)의 최약체 종족인 테란의 오랜 숙원이다.
[3] League of Legends – Korea, “나의 포지션, 나의 자부심: 서포터(My Position, My Pride: Support)(https://www.youtube.com/watch?v=riQl2S4hrKg),” 1:37부터
[4] '크라운' 이민호 "세계 최고를 상대한 나도 최고"(최민숙, http://www.fomos.kr/esports/news_view&entry_id=50325, FOMOS, 2017년 11월 4일)
[5] 이세돌, “자신이 없어요. 질 자신이요.” (신희근, 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252627, WIKITREE, 2016년 3월 10일)
[6] “따린다, 부순다, 무너 바린다.”(최남선, “해에게서 소년에게,”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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