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워치 : D.va의 게임 / 7 소설



전편


쿵.

초 타이탄 급 옴닉의 다가오는 소리가, 심장을 울렸다.

지축이 흔들린다.
대기가 떨려온다.
그리고 다시, 쿵. 그 거대한 발이 육지로 떨어진다.

아무런 적의도 없는, 걷는다는 그 단순한 행동만으로 충격파가 일어나 전장을 덮친다. 말아올리는 폭풍이 MEKA를 후려쳤다.

콰아아앙!

“으읏…!”

조종간으로 전해지는 충격에 소녀가 아픈 듯이 신음을 토했다. 도와줄 수 없었다. 나도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폭풍 속에서 다급히 뿜어낸 부스터의 빛이 금방이라도 꺼질 듯이 깜빡거렸다. 그 불가해한 힘에, 사고가 멈췄다.

“뭐야, 저게.”

먼지가 걷히고 다시 열린 전장에는 어둠이 내려 있었다.

태양을 가린 기계장치의 신이 지상에 숙명 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쿵.

초 타이탄 급 옴닉이 신화처럼 하늘을 걷고 있었다. 아까까지 수평선 너머로 보던 것과는 전혀, 전혀 달랐다. 눈을 들어 우러러봐야 하는 그 거대한 형상은 흡사 기계장치의 신. 하찮은 인간들은 그 거대한 다리 사이를 기어다니며 수치스러운 무덤자리나 찾으라[1]고 비웃는 듯한 거신상. 셰익스피어의 문장에나 나와야 할 그 시대착오적 서사시가, 부산에 강림하고 있었다.

쿵.

그것은 지진, 혹은 천둥.
재앙처럼 다가오는 그것의 발소리 외에는 더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전장에 죽음 같은 침묵이 내렸다.
옴닉들은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그것들의 눈은 더 이상 우리를 보지 않고 있었다. 모든 렌즈와 레이더와 수신기가 괴수를 향해 정렬해 있었다. 마치 신탁을 기다리는 십자군처럼.

쿵.

다음 순간, 괴수의 눈이 우리를 향했다.

“큿…!?”

비명을 삼킨다. 피가 얼어붙는다. 심장이 멈춘다. 저 높은 곳으로부터 내려다보는 괴수의 기계눈이, 질량을 가진 악의로 나를 짓누른다.

그제야, 저것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저것은 공략불가의 보스. 회피불가의 패배 이벤트. 플레이어를 절망시키기 위해 정교하게 의도된 불합리. 시스템 자체의 악의. 공포. 공포. 공포.

그러나, 공포에 지지 않는 소녀가 있었다.

“해, 봐…,”

D.va가 이를 악물고 으르렁대고 있었다.
깜빡임조차 없이 괴수를 노려보는 그 눈은 괴수의 모션을 보고 반응하려는 것이었다.
그 소녀는 아직, 싸우려 하고 있었다.
마치 지상의 항성과도 같은 괴수의 압도적인 질량 앞에, 그 작은 몸으로도 꺾이지 않고 맞서.

“무슨 공격을 하든, 막아줄 테니까—, 내가! 호랭이가 카운터 쳐줄 테니까! 해봐!”

그 소녀가, 나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제야, 나도 이를 악문다.

그렇다. 저 괴수는 거짓 신이다. 내가 아는 유일한 신은 저런 기계장치가 아니라 가련한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지금 바로 내 무릎 위에 앉아 있었다. 송하나의 눈을 따라서 나도 눈을 든다. 질 수 없다. 지지 않는다. 진리는 나에게 있다. 나의 여신이 소리치고 있었다.

“미사일이든, 레일건이든, 열광선이든! 쏴봐! 어서!”

D.va의 선전포고에, 괴수가 움직였다.

쿵.

그러나 괴수의 다음 행동은, 그 무엇도 아니었다.

쿵.

괴수는 고개를 돌리고, 걷기 시작했다. 우리를 지나서.

쿵.

그리고 그와 동시에 모든 옴닉이 괴수를 따라 일제히, 기수를 돌렸다.

두 두두두 두두두두두두!

옴닉들의 발굽소리가 폭풍처럼 몰아쳤다. 군단이 달리고 있었다. 강철 편자로 앞서 죽은 옴닉들의 잔해를 밟아 부수며, 그것들의 발이 부산을 향하고 있었다.

“뭐야—, 뭐야뭐야뭐야!”

크르르르르륵!

기겁해 융합포를 갈겼다. 그러나 반응이 없었다. 아니, 분명히 융합탄은 박히고 있었다. 그러나 장갑이 깨지고 부동액을 흘리면서도 그것들은 더는 움직일 수 없게 되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았다.

그제야 다시 떠올린다. 상대는 고통도 공포도 모르는 옴닉. 그것들이 MEKA로 몰려오고 있었다. 저지할 수 없었다. 온다. 휩쓸린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송—!”

그리고, 충돌은 없었다.

두 두 두 두 두두두두두—,

지축을 울리며 달려든 옴닉들은 그대로 우리를 지나쳤다. 마치 우리가 여기 없는 것처럼.

“—하나…,”

뭐야, 이게.

“무시, 했어…?”

송하나가 숨을 삼키는 소리에, 흠칫 눈을 돌렸다.
그 하멜른의 쥐떼는 인구 오백만의 도시, 부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제야 나도 이해했다.
우리는 무시당한 것이다.
저 기계장치의 신에게.

단순한 계산이었다. 우리가 죽이는 속도보다 군단이 부산에 도착하는 속도가 빨랐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그렇다면 우리를 무시하고 목적인 부산으로 향하면 된다. 저 기계장치의 신은 판단한 것이다. 아무리 날뛰어봤자 고작 MEKA 1대, 고작 열여덟 살짜리 어린애들일 뿐이라고.

확실히 인공지능다운,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용납할 수 없었다.

“ー감히! 우리를 무시해!?”

송하나가 폭발할 듯 고함치며 조종간을 잡아챘다.

콰앙!

급가속의 충격파가 터졌다. MEKA가 새장에서 풀려난 새처럼 쏘아져나갔다. 송하나의 컨트롤에 전력으로 불을 뿜는 부스터가 괴수의 거대한 보폭을 앞질러 나갔다. 어두운 전장 위로 별과 같이 그려지는 소녀의 궤적이, 괴수의 앞을 잡으려 하고 있었다.

“용서 못해ー, 호랭이! 나! 저거 절대 용서 못해!”

분노를 토하는 송하나를 말릴 수 없었다.
아니, 나야말로 참을 수 없었다.

“알아! 나도 아니까, 가!”

그것은 무력감, 굴욕감, 그리고 분노. 머리에 불꽃이 튀는 듯한 이 분노는 내가 인간이기에, 한국인이기에, 프로게이머이기에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이곳 부산은 e스포츠의 성지였다. 스타리그의 영광은 1세기 전 바로 여기에서 시작됐다. 한낱 유희에 불과했던 게임은 이곳 부산 광안리에서 십만의 관중과 함께 스포츠의 영역으로 끌어올려졌다. 그 신화와도 같던 시대 BoxeR[2]와 YellOw[3]가, FlaSh[4]와 Stork[5]가 바로 여기에서 싸웠다. 우리 모든 프로게이머의 고향은 바로 여기였다.

그런데, 무시한 것이다. 이곳 성지 부산에서, 감히 우리를.
감히, 이 세계 최고의 프로게이머를.

“가서! 보여줘! 디바! 네가 누군지!”

콰아아!

기체를 짓누르는 가속도를 뿌리치고 D.va의 날개가 펼쳐졌다.
기수가 돌려지고 조준선 안에 괴수의 마각이 들어왔다.
조준도 필요 없었다. 시야를 가득 채운 그것의 거대한 존재감은 아무렇게나 쏴도 필중이었다. 그러나 노리는 것은 그 중에도 저 눈. 감히 우리를 무시한 저 오만한 눈! 재장전! 재충전!

“송하나!”
“쏴!”

쿠웅!

충격포가 불을 뿜고, 괴수에게 꽂혔다.

카앙!

그러나 괴수가 쓰러지지 않았다.

“뭐…!?”

소녀는 비명을 삼켰다.
나는, 사고가 멈췄다.

아니. 빗나간 것이 아니다. 분명히 맞췄다. 포탄이 날아가 꽂히는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 전열화학—레일건 하이브리드의 대화력을 정면에서 박아넣은 것이다. 그런데도 괴수는 멈추는 일도 기우는 일도 없이 그대로 걷고 있었다.

그 괴수의 위에는 아까까지 없던 푸른 역장이 드리워 있었다.
에너지 방패였다.
그러니까, 막은 것이다. 충격포를.

“아니 씨발 이걸 왜 막—!”

삐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ー!

“크으으으으으윽!”
“아, 아아아아아!”

모든 전자장비가 비명을 질렀다.

괴수였다. 저 괴수가 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한 방해전파를 뿜어내고 있었다. 헤드셋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음이 귀를 찢고 머리를 파고들었다. 조종간을 놓친 MEKA는 지면에 처박혔다.

“으, 그윽!”

나는 온 힘을 다해 헤드셋을 잡아뜯었다. 소음이 멈추고 그제야 간신히, 송하나를 볼 수 있었다. 소녀가 나를 찾아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호랭이, 호랭이이이이잇!”

삐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ー익.

“헤드셋! 송하나! 헤드셋ー, 아니! 이리와!”

송하나의 헤드셋을 강제로 벗기고, 그대로 내 품에 안아버렸다.

그 작은 머리를 힘주어 안고 팔로 소녀의 귀를 막는다. 그제야 간신히, 송하나의 비명은 잦아들었다. 내게 매달린 소녀는 젖은 눈으로 터질 듯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 하앗…!”
“송하나 괜찮아!?”
“뭐야…, 대체, 뭐야…!”

녀석이 울 것처럼 토해내는 질문에, 나는 힘겹게 눈을 들었다.

MKEA와 옴닉의 구분 없이 모든 회로를 무차별로 지지는 방해전파의 폭풍 가운데 기계장치의 신만이 홀로 고고히 서 있었다. 그 거신의 눈은 우리를 보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아닌, 저 공중의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싸우고 있었다.

쌔애애애액ー!

그리고 공중으로부터 날개 있는 것이 추락하고 있었다.

또다. 또 다시 옴닉의 전자전에 당한 것이다.

그러나 흐려진 눈을 필사적으로 치뜨고 추락하는 것을 본다. 뭐지? 뭐가 왔던 거지? 저 매끈한 유선형의 동체. 머리에 달린 저 거대한 탐지기. 분명 시뮬레이션에서 몇 번이고 봤던 익숙한 유닛이었다. 비록 지금은 빛을 잃고 지면으로 추락하고 있었지만, 저건 옵저버였다.

콰앙!

폭발의 불꽃 속에 보이는 동체의 라운델은, 분명히 태극기였다.

“왔다…,”

우리의 혼신의 기도에, 마침내 전장의 신이 응답한 것이다.

“왔다…!”

저 옵저버를 격추시킨 순간 옴닉은 자신의 위치를 자백한 것이나 다름없다. 마침내 저 기계장치의 신이 패착을 둔 것이다. 시야가 밝혀졌다. 이제 곧 포병이 온다. 협상할 수도 기만할 수도 없는 인공의 천둥이! 저 전장의 신이 강림한다!

세계 최강 대한민국의 포병전력이! 드디어 오는 것이다!

“송하나! 봤지!? 지금! 옵저버!”
“좋아! 날려버려! 날려버려날려버려날려버려!”

나도 송하나도 흥분해서 미친 듯이 소리쳤다. 그렇다. 우리가 이긴 것이다. 저 괴물이 충격포는 어떻게 막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지구상의 그 무엇도 대한민국 포병의 대화력에 맞설 수는 없다! 저 무적의 창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똑같은 무적의 방패: 방어 매트릭스뿐이다! 그리고 최후의 MEKA는 우리 손에 있다!

“방어 매트릭스! 송하나! 어서!”
“하! 알고—, 있거든!?”

철컥!

송하나가 MEKA를 일으켜 세운다. 머리 위로 방어 매트릭스가 펼쳐진다.

쿵.

그리고 괴수가, 우리와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쿵.

괴수로부터 무언가 우산 같은 것이 폭발하듯 부풀어 올랐다.

쿵.

거대한 돔형으로 펼쳐지는 그 괴수의 우산은, 지금 MEKA가 펼친 것과 닮아 있었다.

“저게 뭐…?”

설마, 저거, 방어 매트릭스…?

다음 순간 하늘이 불타올랐다.

콰 과 과 과 과 광!

그것은 세계최강 대한육군의 최정예 포병이 전력으로 내리친 일제포화.
인류가 만들어낸 전장의 신이자 고전물리학의 정점.
옴닉에 맞서는 그 테란의 최종병기[6]가, 마치 빗속의 눈물처럼[7] 허공중에 스러지고 있었다.

쿠구궁! 쾅! 콰광!

빗발치는 고폭탄이, 철갑탄이, 집속탄이, 단 하나도 괴수의 방어 매트릭스를 뚫지 못하고 모조리 허공에서 부서져 불탔다. 천공까지 뻗는 레이저가 그 폭발하는 탄두들을 파편의 파편까지 남김없이 요격해 지워버리고 있었다. 유상무상의 구분 없이 모든 공격을 막아내는 괴수의 우산 아래에서, 나는 멍하니 불타는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었다.

저 기계장치의 신이, 마침내 방어 매트릭스마저 구사한 것이다.

“…거, 짓말.”

아니, 그러면 어떻게?
어떻게 쓰러뜨리라는 거지?

음속의 10배속으로 나는 충격포를 정면에서 때려박았다. 인류가 자랑하는 세계 최강 대한육군의 포병화력을 일제히 퍼부었다. 이것이 우리의 전력의 전력이었다. 그런데도, 막은 것이다.

아니, 있을 수 없다. 모순이다. 이러면 설혹 핵미사일을 날린다 해도, 저 거신은 간단히 요격해버릴 것이다.

아니, 안 된다. 저건, 아니다.
저 괴수는 그야말로 기계장치의 신, 불사의 마왕[8]이었다.

쿵.

거신이 다시 부산을 향해 걷는다.

쿵.

그 다리 아래에서 수백 수천 수억의 옴닉의 군단이 재앙처럼 부산으로 몰려든다.

쿵.

인구 오백만의 대도시를 지키는 최후의 방벽으로 기계장치의 신의 거대한 발이, 떨어진다. 그 단순한 행동만으로, 인간이 온 지혜를 짜내 쌓아올린 성형요새가 무너진다. 극동 최후의 보루가 너무도 간단히. 마치 어른의 발길질에 덧없이 무너지는 어린아이의 모래성처럼.

지금까지 수많은 적을 쓰러뜨렸다.
그 모든 위협과 공포에도 굴하지 않고, 우리는 맞서 싸웠다.
그러나 모두 무의미했다. 우리는 결국 패배할 것이다. 저 거신을 쓰러뜨리지 못하는 이상.[9]

“…하.”

그제야 입술을 열고 울 것 같은 숨을 토해내는 소녀가 있었다.

“하하. 하하하. 그러네. 결국 이렇게 되는 거네.”

지친 듯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웃는 송하나의 눈은 떨고 있었다. 드리운 앞머리 사이로 엿본 녀석의 얼굴에는 내가 이제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언제나 자신만만하던 D.va가 거짓말처럼 약해진 그 녀석이, 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릴 것만 같아서; 나는 겁에 질렸다.

“송, 하나…,”
“왜? 호랭이는 안 웃어? 봐. 그렇게나 잘난 척하던 디바 님이 당했잖아? 맘껏 비웃어.”
“아니, 안 웃어! 무슨 소리야! 너 안 당했어! 괜찮아! 아직, 뭔가 방법이—!”

필사적으로 무어라 할 말을 찾지만, 이미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방법 같은 건 없었다. 이미 비장의 수도, 경악의 슈퍼플레이도 전부 써버렸다. 더는 없었다. 나는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그저 내가 이 녀석의 이런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내 제멋대로인 억지라도, 이 녀석을 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아니지. 야. 너 이렇게 안 져. 내가, 너 안 지게 할 거야.”
“하, 하하. 정말? 그치만, 이번만큼은 호랭이라도 어쩔 수 없을걸?”
“웃기지 마! 송하나 너! 넌 나한테 지기 전까진 아무한테도 못 져! 알아들어!?”

나는 상처 입은 짐승처럼 고집스럽게 으르렁거렸다.
고개를 숙인 그 녀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 둘 다 처음 만난 중학생 시절로 돌아가버린 것만 같았다. 아직 D.va가 되기 전의 내성적이던 그 소녀처럼, 몇 번이고 입을 열다 그만두고 입술을 깨물다; 겨우 고개를 든 송하나가,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었다.

“그럼, 혹시…, 호랭이, 혹시 있지? 저기 실드 아래. 저 틈으로 들어갈 수 있어?”
“뭐?”
“그러니까, 저 틈으로 들어가서, 실드 안에서부터 쏘면…, 그러면, 저 괴물, 죽일 수 있어?”

그제야 비로소 보였다. 거신을 덮은 에너지 방패와 지면 사이에 비어있는 좁은 틈이. 실드도 매트릭스도 커버하지 못하는, 완벽한 사각이.

그렇다. 저 아래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거신은 아무것도 가로막는 것 없는 무방비가 된다.
저 안에서라면, 직접 거신의 심장을 꿰뚫을 수 있다.

그러나 좁은 틈이었다. 그 앞은 옴닉의 군단병들이 철의 장막을 이루어 가로막고 있었다. 돌파하려면 복잡한 3차원 기동을 하면서 적탄을 막고, 회피하며, MEKA의 모든 화력을 동시에 쏟아부어 화력통로를 개척해야 했다. 정신분열 수준의 멀티태스킹, 1,000분의 1초 단위 반응속도, 광기에 가까운 전투감각, 말도 안 되는 APM까지 요구됐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우리 세계 최고의 프로게이머들은 그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 그래! 할 수 있어! 해보자! 안 죽으면, 어디 한번 죽을 때까지 죽여보자!”
“아, 하하. 아냐. 나 뭐래. 나 미쳤나봐. 그런 거 안 되지? 아무리 나랑 호랭이라도, 그런 건 안 되는 거, 맞지?”
“아니! 할 수 있어! 믿어봐! 해볼게! 송하나 네가 말하는 거면, 나—!”
“아냐. 미안. 돌아가자. 진작, 이럴걸…, 고집부리지 말고…, 진작…, 호랭이 말대로…, 돌아갔으면…, 좋았을, 걸…,”
“야 너 왜—!?”

송하나의 어깨를 잡아채 내 쪽으로 돌린 나는, 그 녀석의 눈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녀석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아까까지 목숨을 걸고 부산을 지키려던 그 늠름한 소녀하고는 전혀, 전혀 달랐다. 떨리는 어깨로 내게 사로잡힌 지금의 소녀는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가벼워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소녀의 젖은 눈을 보고, 그제야 깨달았다.

이 루트는 일방통행이었다.

들어갈 방법은 있지만 다시 나올 방법은 없었다. 괴수까지 화력통로를 열려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했다. 마지막 마탄으로 괴수를 쓰러뜨린다 해도, 남은 옴닉들이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세이브 로드 따위는 없었다. 우리는 돌아올 수 없었다.

“너…,”

내 표정이 변하는 것을 보고, 녀석이 눈물 고인 눈으로 웃었다.

“봐. 호랭이도 알겠지? 들어가면 다시 못 나오는 각, 호랭이한테도 보이지? 그럼, 돌아가는 게…, 맞는 거지…? 근데, 어떡해…? 근데…, 나…, 도저히…, 그냥, 못 돌아가겠어….”

억지로 웃는 척하며 고백하는 소녀의 눈물 앞에서, 나는 대답하지 못하고 이를 악물었다.

또다.
또 다시, 너는 내가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된다.

그러면 나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억지로라도 너를 끌고 가야 하는 걸까?
아니면, 네가 목숨을 버리는 걸, 나는 그저 지켜봐야만 하는 걸까?

나도 사람들을 살리고 싶었다. 나도 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살아줬으면 했다. 그러나 네가 어떤 마음으로 이렇게 힘들어하는지 나는 알기에, 나는 도저히 그 마음을 억지로 그만두라고 할 수 없었다.

“…호랭이. 우리, 열심히 했지? 우리…, 진짜…, 열심히 한 거…, 맞지?”
“송하나.”
“그러니까, 이제 그만, 포기해도…, 그래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하겠지…?”
“송하나!”
“흑…!?”

대답 대신, 나는 송하나를 안아버렸다.

소스라쳐 숨을 삼키는 소녀를 놓지 않았다. 힘주어 끌어안으며, 네가 나에게 용기이듯 나도 너에게 용기가 되기를 기도했다. 그렇다. 나는 결국 이런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나는 정답을 알 수 없었다. 그러니까 그냥, 네가 원하는 대로 하게 해주기로 한다.

“맞아. 너, 열심히 했어. 내가 증인이야. 아무도 너한테 뭐라고 못해. 그러니까, 나나 다른 사람은 신경 쓸 필요 없어. 송하나 너,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야.”
“호…, 랭이…,”
“돌아가고 싶으면 돌아가. 하지만 계속 싸우고 싶으면, 그렇게 하면 돼. 네가 뭘 하든 나는 같이 가는 거야. —자, 송하나. 말해.”

내가 말을 계속할수록 품안의 소녀는 작아졌다. “웃…!” 하고 어린 새처럼 작은 어깨를 떨며 결국 참지 못하고 숙인 송하나의 얼굴에서 흘러넘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눈물이 슈트를 적셨다. 그러면서도 아닌 척, 젖은 눈을 질끈 감고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도리질치는 녀석이, 주먹을 치켜들었다.

“이, 바보…, 병신…, 호구새끼…,”
퍽.
“이시백, 너 뭐야…, 너, 진짜, 나한테 왜 그래…!”
퍽.
“아무 사이도, 아닌, 주제에…! 맨날…, 나한테…, 지기만 하던, 주제에…,”
퍽…,

힘껏 내 가슴을 때리는 송하나의 주먹은 아프지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나를 때리던 녀석의 손이 결국 힘없이 미끄러졌다.

그 손이 내 슈트를 부여잡았다. 지친 소녀의 머리가 나에게 기댔다. 그 자그만 머리를 나는 손으로 가만 덮었다.

“…나, 갈 거야.”
“그래.”
“하지만 죽으러 가는 거 아니야. 나, 이기러 가는 거야.”
“걱정 마. 송하나 너 안 죽어. 내가 알아.”
“쿡. 뭐래.”

송하나는 나를 밀쳐냈다. 비로소 내 품 밖으로 나온 녀석은 아직 젖은 눈이지만 웃고 있었다.

“호랭이.”
“왜.”
“호랭이. 호랭이. 호랭이.”

노래하듯 나를 부르는 소녀는 마치 그 울림을 기억하려는 것만 같았다. 아무렇지도 않고 잘난 것도 없는[10]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나를 마지막으로 눈에 넣으려는 것만 같았다.

내 얼굴이 비치는 그 아름다운 눈동자를, 나도 굳이 피하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아이는 믿을 수 없게도, 이런 잿빛 하늘 아래서도 여전히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시끄러. 그놈의 호랭이 소리 좀 그만해라. 정들겠다.”
“그럼 어쩌라고. 호랭이는 내 호랭이인데. 호랭이?”
“뭐.”
“GG.”

소녀의 그 마지막 인사에, 간신히,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답할 수 있었다.

“그래. GG, GL.”

송하나는 미소지었다. 그 미소가 내게 용기가 되었다.

더는 망설이는 일 없이, 송하나는 내 무릎 위에 돌아앉았다. 그 재주 있는 손으로 조종간을 잡았다.

소녀의 날개가, 펼쳐진다.



콰아아아아!

MEKA의 부스터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중력의 속박을 뿌리친 강철의 기체가 다시 날아올랐다. 치솟는 열반응에 옴닉들이 일제히 우리를 돌아봤지만, 상관없었다. 수적 열세 따위 프로게이머에게는 참고사항일 뿐이다. 우리의 게임은 그런 단순한 논리로 플레이되지 않는다.

지금부터 펼쳐질 것은, 세계 제1위와 2위 프로게이머 합동의 대마술.

“디바, 온라인! 호랭이!”
“티거! 온라인! 가!”

콰앙!

급가속의 충격파를 터뜨리며, D.va가 최후의 비행을 시작했다.

가속하는 MEKA 위에서 나는 충격포를 뽑아든다. 승률은 얼마나 되지? 1할? 5푼? 그것이 설혹 2.69%의 실낱같은 확률이라도, 0%가 아니다. 불가능이 아니다. 명백한 가능성. 그렇다면 나는 2.69%를 100%로 만들어 보인다. 그 사이 극한으로 펼쳐진 무한을 증명해 보인다. 대재앙의 종결이 이 녀석의 오더라면, 나는 이 녀석과 함께 혼을 담아 기적을 연금한다![11]

“송하나!”
“쏴!”

쿠웅!

충격포가 불을 뿜었다. 전열화학—레일건 하이브리드의 가공할 운동에너지가 옴닉들을 꿰뚫었다. 마탄은 철의 장막을 찢고 기계장치의 신까지 똑바로 날았다. 기계장치의 신에게 한 번 막혔음에도 그 탄도에는 여전히 아무런 미혹도 없었다. 우리도 같았다.

반동을 뿌리치는 MEKA 앞에, 옴닉의 바다가 갈라져 있었다.
화력통로가 열렸다.
기계장치의 신까지 거리, 2,000.

“들어가! 지금—!”

카앙!

순간 방어 매트릭스에 무언가 꽂혔다. 충격이 조종석을 직격했다. 뿌리치고 눈을 들자 전방 240도의 모든, 옴닉들이, 일제히, 우리를 보고 있었다.

“큭…!”

카가가가가가각!

밀어닥치는 미사일과, 철갑탄과, 융합탄에 맞서, 소녀가 방어 매트릭스를 세웠다. 세계 최고의 프로게이머의 손이 조종간 위를 달리며 적탄을 막아나갔다. 그러나 해일처럼 밀려드는 옴닉들은 갈라졌던 강철의 바다를 메우고 있었다. 그 위에서 기계장치의 신이, 마침내 부산이 아닌 우리를 돌아보고 있었다. 그것이 D.va의 죽음을 원하고 있었다.

기계장치의 신까지 거리 1,500.

“송하나!”

카가 각 ! 카가가 가가가가가가가각!

그 이름을 부르며 MEKA의 왼팔을 뽑아 올렸다. 융합포를 긁어내렸다. 분당 4,620발 속사로 불뿜는 푸른 융합탄이 앞을 가로막은 옴닉들을 분쇄했다. 발사관에서 뿜어낸 플레어가 날개처럼 펼쳐지고, 눈부신 백열광으로 타올랐다.

카가각! 퍼엉! 퍼엉! 퍼엉!

그러나, 무의미했다. 옴닉이 자랑하는 무한대의 대물량이 무제한의 화력을 지워버리고 있었다. 충격포로 열었던 좁은 회랑은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았다. 적탄이 빗발쳤다. 기계장치의 신까지 거리, 1,000.

카가가가가가가가가!

“호랭이…!”

그 굉음과 불꽃 속에서, 눈을 치뜬 소녀가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나, 안 멈출 거니까…!”
“알아! 너는 계속 가! 마음껏, 날아!”
“절대…, 안 멈출 거니까!”

콰앙!

부스터가 폭발했다. 플라즈마의 불꽃을 유성처럼 길게 끌며 MEKA가 재차 가열차게 가속했다.

과열 따위 신경쓰지 않는다. 예비 따위 남기지 않는다. 대재앙은 여기서 종결된다.

철컥!

진입하는 D.va에 나는 호응한다. 최후의 최후까지 아꼈던 대화력의 트리거를 올린다. 조준하는 것은 기계장치의 신으로 향하는 직통의 루트. MEKA의 미사일발사관이 일제히 개방, 불을 뿜는다.

전탄발사한 18발의 마이크로미사일이 날아가, 빗나가는 일 없이 정확히, 꽂혔다.

콰 과 과 광 !

폭발하는 미사일의 탄두들이 옴닉들을 쳐부쉈다.
무한대의 물량을 지워버리는 무제한의 화력이 옴닉의 바다를 불살랐다.
강철이 불타고 연기가 휘몰아쳤다. 일순 전장은 짙은 흑암으로 덮였다.

그 흑암을 헤치고, 공성MEKA가 쏘아져나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우리를 본 기계장치의 신의 붉은 렌즈가 처음으로, 흔들리는 것을 본다.
그것은 경악. 인간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미지의 공포.
전 우주 모든 원자의 위치와 운동을 측량해 운명조차 예지하는 저 옴닉의 라플라스 악마적 연산력으로도 감히 예측 못했던; 고작 인간의, 고작 용기가, 여기 있었다.

우리는 용기다.

““가 라아아아아아 아 아 아 아 ! ””

거리 500. 뒤를 쫓는 옴닉의 포화를 몸으로 받아내며 나아간다. 거리 400. MEKA의 다리가, 팔이, 몸이 등 뒤에서 쏘는 총탄에 맞고 부서지지만, 무시한다. 여기가 최후다. 거리 300. 충격포의 포신을 기사의 창처럼 높이 올린다. 거리 200. 우리는 자유. 이 캄캄한 밤의 침묵에 자유의 종을 난타하는 타수. 거리 100. 에너지 방패를 아래로 통과해, 앞으로, 앞으로!

기계장치의 신까지 거리, 제로.

콰아앙!

소녀가 날개를 펼치고 몰아치는 질풍을 맞받아 제동했다. 부스터가 불을 뿜으며 MEKA의 기수를 치켜올렸다. MEKA의 머리 위로 재앙 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기계장치의 신이 저 위에 있었다. 방어 매트릭스도 에너지 방패도 옴닉의 군단도 아무것도 가로막는 것 없이 드러난, 저 거짓 신의 벌거벗은 심장을 향해, 나는 충격포를 들었다.

이제 대단원이다.

“—송하나.”

마지막 순간 나는 내가 사랑하는 여자아이를 불렀다.

손을 더듬어 소녀의 손을 찾았다. 작고, 가녀리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재주 있는 그 손을 잡고 힘주어 쥐었다. 그제야 녀석이 나를 돌아보고, 젖은 눈으로도 사랑스럽게 웃음쳤다.

“뭐야, 이 바보 호랭이. 이제야 겨우 반했어?”

적탄에 맞아 부서져가는 MEKA 속에서, 우리는 손을 잡고 잠시 말도 없이 웃었다.

“송하나.”
“응. 호랭이. —응.”

그리고 우리는 자유의 횃불에 불꽃을 당겼다.

쿠웅!

트리거에서 인공의 번개가 내리치고, 충격포가 천둥을 뿜었다.

더는 통제할 수 없는 반동이 MEKA를 내리찍고 지상에 처박았다.
등을 치는 충격으로 폐에서 숨이 토해졌다.
그러나 우리가 쏘아낸 인공의 별은 스러지는 일 없이 어둠을 꿰뚫었다.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도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는 빛의 궤적을 볼 수 있었다. 기계장치의 신의 압도적인 질량에도 굴하지 않고 신새벽의 서광처럼 나는 철갑탄이, 태양을 가렸던 그 거대한 동체를 똑바로 꿰뚫고 날고 있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초 타이탄 급 옴닉의 붉은 렌즈에서 빛이 꺼져갔다.
사족보행의 거대한 무릎이 천천히 꺾였다.
기계장치의 신은 없었다. 처음 그것이 만들어졌을 때와 같이 한낱 불꽃과 강철로 돌아간 거대한 동체는 중력에 굴복해 기울고, 지상으로 무너져 내렸다.

마지막으로 보인 것은 우리를 덮치는 부서진 신의 거대한 파편이었다.

그리고, 암전.



[1] “Why, man, he doth bestride the narrow world/Like a Colossus, and we petty men/Walk under his huge legs and peep about/To find ourselves dishonourable graves.”(William Shakespeare, “Julius Caesar,” Act 1, Scene 2, Line 135.)
[2]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임요환의 ID
[3]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홍진호의 ID
[4]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이영호의 ID
[5]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송병구의 ID
[6]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이영호의 별명, 최종병기
[7] “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 in time, like tears in rain.”(리들리 스콧, “블레이드 러너,” 1982, 워너 브라더스)
[8]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페이커” 이상혁의 별명, 불사대마왕(Unkillable Demon King)
[9] “수많은 시련을 겪어 왔겠지! 안타깝군. 결국엔 모두 헛수고니까! 너희는 모두 그 분께 무릎을 꿇으리라!”(블리자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불타는 성전,” 2007)
[10]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사철 발 벗은 아내가/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정지용, “향수,” 1927)
[11] “일반적인 프로토스가 5전 3선승제에서 마재윤을 이길 확률/…/2.69%//불가능이 아니다/명백한 가능성/0%가 아니다/2.69%를 100%로/그 사이 극한으로 펼쳐지는 무한/그 존재를 증명하는 자/Extreme 김택용//선대의 모든 프로토스의 숙원/대재앙의 종결/모든 프로토스의 혼을 담아/기적을 연금한다/…/그러나 기억하라/97.31%/공포와 절망은 확률이 아닌 현실이다”(MBC GAME, “곰TV MSL 결승전 예고 김택용 vs 마재윤”(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2051762&lu=m_pcv_main_goOriginLink))

덧글

  • yail0 2018/06/01 03:50 # 삭제 답글

    이번엔 특히 인용이 많네요 ㅋㅋ 즐거웠습니다. 광안리 결승이네요.
  • kidovelist 2018/06/01 18:52 #

    e스포츠의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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