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워치 : D.va의 게임 / 7.5 소설



전편


쿵.

의식이 돌아오고 처음으로 나를 덮친 것은, 통증이었다.

쿵쿵쿵. 쿵.

“욱…!”

끔찍한 격통이 몸을 달렸다. 비명을 지르려고 입을 열었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숨을 쉴 수 없었다. 아프다. 아프다. 차라리 다시 기절하고 싶다. 그러나 이 소리, 머리를 울리는 이 소리가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쿵. 쿵쿵. 쿵.

“크, 윽…!”

이를 악물고 눈을 뜨자, 눈앞에 우리가 쓰러뜨린 신이 보였다.

죽은 기계장치의 신이 MEKA의 위에 쓰러져 있었다. 그 거대한 강철의 유해에 깔린 MEKA가 장난감처럼 휘어 있었다. 조종석까지 밀고 들어온 프레임에 짓눌린 몸이 으스러질 것 같았다.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었다. 불 꺼진 조종석 안에는 죽음 같은 그림자만이 드리워 있었다.

쿵. 쿵.

“송…, 하나…,”

그 짙은 어둠 속에서, 나는 소녀를 찾았다.

기울어진 조종석 아래 소녀가 쓰러져 있었다. 힘겹게 그 소녀를 안아올려 보지만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힘없이 늘어진 소녀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 적갈색 아름다운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부딪혀 찢긴 상처에, 새하얀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붉은 피에,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송하나.

그러나 얇은 슈트 위로 드러난 소녀의 가슴은 분명히 가냘프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살폿 벌어진 그 입술로 미약한 숨결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내 듀오는, 아직, 살아있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그러면, 나는 마지막까지 싸워야 했다.

쿵. 쿵쿵. 쿵쿵.

깨진 캐노피 밖으로 보이는 무인지대는 폐허가 되어 있었다. 통제를 잃은 옴닉들은 날뛰고 있었다. 더 이상 부산으로 향하는 옴닉은 없었다. 어쩔 바를 모르고 방황하며 아무렇게나 쏘고 달리고 뒤엉켜 구르는 그것들에게는 더는 아무런 지성도 보이지 않았다. 옴닉들이 부딪히고 깨질 때마다, 금속을 때리는 소리가 났다. 쿵. 쿵. 쿵.

이 소리였다. 이 소리가 나를 깨운 것이다.
이 소리가, 지금 내 머리 위에서 나고 있었다.

쿵!

눈을 들자 섬멸로봇의 붉은 렌즈와 눈이 마주쳤다.

MEKA 위에 기어올라온 그것들이 있었다. 옴닉 돌격병이, 섬멸로봇이, 절단로봇이, 무기도 쓰지 않고 고장난 인형처럼 MEKA를 두드리며 발톱을 할퀴고 있었다.

그것들이 캐노피에 낸 균열이, 뜯어낸 장갑판이 보였다. 그것들 중 하나가, 캐노피 너머로 우리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직 살아있는 우리를 확인한 섬멸로봇이, 최초로 반응했다.

콰앙!

“큭…!”

MEKA로 철갑탄이 꽂혔다. 충격이 조종석까지 직격했다. 그리고 다시, 콰앙! 방탄 사양의 캐노피가 흡사 유리처럼 깨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 소리에 다른 옴닉들이 잇따라 반응하고 있었다. 마치 피 냄새를 맡은 괴물처럼, 그것들이 차례로 무기를 꺼내들고 있었다.

“씨. 발…,”

손을 뻗어 조종간을 잡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더 이상 MEKA는 없었다. 소녀와 저 강철의 맹수들 사이에는 오직 나뿐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싸워야 했다.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눈이 흐릿해 앞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망가진 몸을 끌고, 소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를 악물고 광선총을 뽑아들었다.

지지 않는다. 질 수 없다. D.va의 게임은 끝나지 않는다.

카앙!

광선총의 섬광이 섬멸로봇의 머리를 꿰뚫었다.
D.va만 보던 로봇은 내 공격에 반응하지 못했다. 로봇은 머리를 잃고, 그대로 무너졌다.
그리고 그제야 남은 옴닉들의 붉은 렌즈가, 나에게 향했다.

그 명백한 악의 앞에서도 나는 광선총을 겨눈 손을 돌이키지 않았다. 두렵지 않았다. D.va 대신 어그로를 끌었다면 원하는 바였다. 타는 듯한 분노가 달리며 망가진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총을 당기며, 나는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다, 꺼져.”
카앙!

지금 이것들이 내게서 D.va를 빼앗으려고 하고 있었다. 내 친구, 내 숙적, 내가 사랑하는 별을. 뺏길 수 없다. 절대로. 절대로다.

“이건, 내 거야.”
카앙!

이 녀석이 돌아봐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나는 그저 아가씨를 동경하는 목동[1], 소녀를 사랑하는 소년일 뿐이다. 이 마음만은 온전히 내 것이다. 그러니까, 다 꺼져.

“아무도 못 뺏어가! 아무도! 아무도—!”

쿵.

머리를 치는 굉음과 동시, 몸이 뒤로 날아가 처박혔다.

등이 조종석을 치고 퉁겨나왔다. 순간 힘이 풀린 손이 총을 놓쳤다. 폐부에서 숨이 토해졌다. 가슴 한가운데가 타는 듯이 뜨거웠다.
내려다본 가슴 아래에는, 옴닉의 철갑탄이 박혀 있었다.

“—하.”

흘러넘치는 피가, 빠져나가는 숨결이, 모두 어딘가 먼 곳의 일처럼 현실감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내 심장을 겨눈 섬멸로봇의 총구를 보고야 간신히 알 수 있었다.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내가 진 것이다. 또 다시.

“욱…!”

눈물이 솟았다. 분했다. 이런 순간까지도 나는 어쩔 수 없는 프로게이머였다. 내가 죽는다는 것보다 졌다는 것이 분했다. 나 때문이다. 내가 더 잘했어야 했다. 내가 더 잘했으면, D.va의 게임은 지지 않았을 것이다.

송하나.
마지막으로 그 소녀에게 닿기 위해, 나는 손을 뻗었다.

사과해야 했다. 아직 이 녀석에게 보여주지 못한 것이 많은데. 아직, 하지 못한 말이 많은데. 송하나. 떨리는 입술로 그 이름을 불러보지만, 잠자는 공주는 깨어나 주지 않았다.

이제 안 된다. 끝이다. 죽음이 다가온다. 섬멸로봇의 총구가, 불을 뿜는다—,



콰앙!

그 순간,
거대한 망치가 로봇을 총구채로 날려버렸다.

“비켜라! 네 상대는 나다!”

우렁차게 으르렁거리는 독일어의 포효가 전장에 울려퍼졌다.

다시 콰앙! 망치가 불을 뿜으며 옴닉을 내리쳤다. 그 가열찬 불꽃 앞에 갑옷 입은 기사의 모습이 드러났다. 거대한 로켓 해머를 휘두르는 그 시대착오적인 중갑의 성기사가, 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

오래전, 옴닉에 맞서 인류를 지키던 오버워치라는 곳에, 꼭 이런 기사가 있었다.

“좋아! 이리 와서, 나와 싸우자!”
콰앙!

달려드는 옴닉을 향해 다시 망치가 가차 없이 날았다. 무인지대를 가득 채운 옴닉들 앞에서도 겁먹는 기색조차 없이 소리 높여 웃는 성기사는 마치 2세기도 더 전의 바그너의 오페라 같았다. 몰려드는 강철의 괴물들에 맞서 기사는 푸른 방패를 세우고, 즐겁게 포효했다.

“자! 형제, 자매들이여! 함께 가세!”

그 우렁찬 호령에 답하듯, 지축을 울리는 소리가 있었다.

쿵.
쿵.
쿵.

무언가가 지상에 발 딛는 육중한 충격음이 차례로 울려퍼지고 있었다.

올려본 하늘에서는, 중갑의 병사들이 유성처럼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옴닉의 우산이 사라진 하늘을 수많은 수송선들이 편대를 이루어 날고 있었다. 그 높은 곳으로부터 아무런 두려움 없이 우레와 같은 굉음으로 강하하는 병사들의 CMC 전투복을, 그들이 굳게 쥔 가우스 소총을 알아볼 수 있었다.[2] 그 육중한 강화복 안에 있는, 옴닉의 해킹으로도 꺾을 수 없는 강인한 병사들을, 나는 알고 있었다.

마침내 대한민국 해병대가 도착한 것이다.

쿠웅!

“9중대 강하 완료!”
“12중대 강하 완료!”
“10중대 강하! 방패, 들어!”
“준비된 사수부터—!”

카가가가가가가가가각!

우레와 같은 굉음으로 불을 뿜는 가우스 소총을 본다.
옴닉들을 정면에서 용서 없이 갈아버리는 그 가열찬 일제사격을 본다.
전투방패를 굳게 세우고 진군하는 해병대의 전열을, 그 무너지지 않는 자유의 대열을 본다.
부산 앞바다를 가득 메웠던 옴닉이, 마치 썰물처럼 쓸려나가고 있었다.

우리가 이긴 것이다.

비록 웃을 수 없는 몸이지만, 할 수만 있다면 크게 웃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마지막으로 송하나에게 사과하고 싶었다. 역시 네가 옳았다고. 이번에도 네가 이겼다고. 너는 영웅이라고.

“허…!”

문득 들리는 탄식 소리에 눈을 들자, 기사의 투구의 눈부신 안광이 나를 보고 있었다.

“앙겔라 양!”
“라인하르트! 왜 당신은 그렇게, 항상 혼자만 앞서서—!”
“앙겔라 양! 여기 치료가 필요하오!”


그 기사의 부름에, 천사가 날아왔다.

눈앞에 백의의 슈트로 몸을 감싼 아름다운 여자가 날고 있었다. 그 눈부신 금발의 머리 위에 얹힌 헤일로의 빛이, 등 뒤로 펼친 찬란한 금빛의 날개가 보였다. 흐릿한 눈으로도 알아볼 수 있었다. 알 수밖에 없었다. 다름아닌 어린 시절 내가 사랑했던 영웅이었다.

내 상처를 보고 푸른 눈을 크게 뜨는 이 백의의 천사는, 오버워치의 메르시였다.

“이런…!”

소스라쳐 숨을 삼키는 메르시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미 너무 많은 피를 흘린 머리는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래. 송하나.

흐릿한 머리로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그 녀석뿐이었다. 송하나를 부탁해야 했다. 아까 그 녀석이 입은 상처를 봤다. 그 녀석을 치료해야 했다.

그러니까, 제발—, 이 녀석을, 송하나를 도와주세요.

그러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닿지 않는 부탁이었다. 그럼에도 내 필사적인 눈빛을 알아본 것처럼, 메르시는 내 옆에 쓰러진 송하나를 돌아봐 주었다. 그 소녀와 나의 상태를 차례로 확인한 그녀는 한숨 쉬었다.

“소년들이란…,” 하고 가만 웃는 그 소리가 바보 같다는 듯, 그러나 그것도 싫지 않은 듯해서.

“걱정 마요.”

손에 든 카두세우스 지팡이를 들어 내게 향하며, 메르시는 한국어로 부드럽게 속삭였다.

“괜찮아요. 영웅은 죽지 않아요.”

그 약속과도 같은 목소리가,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1] 알퐁스 도데, “별,” 1866
[2] 스타크래프트 시리즈(블리자드, 1998)의 등장 유닛 해병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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