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워치 : D.va의 게임 / 8 소설



전편


다시 눈을 뜨자, 낯선 방에 있었다.

옴닉도, MEKA도, 소녀도 없었다. 무채색의 벽지로 둘러싸인 방에는 내가 누운 침대가 놓여있을 뿐 아무도 없이 적막했다. 육중한 파일럿슈트 대신 걸쳐진 환자복이 어색했다. 곳곳에 붕대가 감긴 몸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가 멍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떠올릴 수 없었다. 기억은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했다.

“욱…!?”

일어나려고 했던 나는 그대로 다시 무너져버렸다.
온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기계장치의 신에 깔렸던 팔이, 옴닉의 총탄이 박혔던 가슴이 날카로운 통증으로 되살아나 뇌리를 찔러왔다. 그 통증으로 그제야 겨우 기억해냈다.

“끄윽…!”

죽었다고 생각했다. 방탄판을 뚫은 위력의 흉탄에 가슴을 맞은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있지? 옴닉은? 전쟁은 어떻게 된 거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흐릿한 머리로 필사적으로 집중해보지만, 그러나 상황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문밖에서 벌어지는 소란이 문 안까지 파고들고 있었다.

“…아직 안정도 안 된…!”
“…이건 우리 일…!”
“…그러니까 의사로서 안 된다고 말씀을…!”

쾅!

그리고 문이 예고 없이 열어젖혔다.

“뭐…!”

나는 놀라 몸을 일으켰다. 열린 문 너머에 백의의 슈트를 입은 천사가 있었다. 그제야, 내 목숨을 구한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해낼 수 있었다. 메르시. 이미 사라져버린 오버워치의 영웅. 그녀가 어떻게 지금 여기 있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었지만; 꿈이 아니었다. 분명히, 그녀는 현실로 내 눈앞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 문을 연 것은 메르시가 아니었다.
메르시는 날카롭게 치뜬 벽안으로 앞에 선 중년의 남자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이거보세요 김자점 씨…!”
“아. 거 보라니까. 벌써 일어났잖아.”

중년의 남자가 나를 보고 그렇게 웃었다.

나는 웃을 수 없었다. 나는 이 남자를 본 적이 있었다. 처음 입대해서 국방부에 불려갔을 때였다. 그때도 이 남자는 우리를 내려다보며 지금처럼 이렇게, 가소롭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친 이 전쟁통에서도 먼지조차 없이 깔끔한 남자의 정복 위에는 명찰이 달려 있었다. 그제야 이 남자의 이름을 읽을 수 있었다. 김자점, 이라고.[1] 

“나 국방부 김자점이라고 하네. 여기는 부산국군병원이고. 이시백 중위, 맞지?”
“…충성.”
“응 아냐 아냐. 환자인데 경례 같은 거 시키면 되나. 그냥 꼭 줘야 할 게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여기 계신 메르시 씨의 만류를 뿌리치고 잠시 들어왔지. 자, 여기. 출석통지서.”

갑자기 내밀어진 그 서류를, 알아볼 수 없었다.

“출석…?”
“응, 너무 걱정하지 마. 별 거 아냐. 그냥 좀 확인을 해보자는 거니까. 이를테면 자네들이 중요 전략자산인 무인MEKA들을 파괴한 거라든가, 지휘권자의 명령 없이 자폭 시퀀스를 사용해서 MEKA를 손실한 거라든가, 그로 인해 부산 전선 전체에 심각한 손실을 입힌 거라든가.”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지금, 뭐라고?

“잘…, 못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해킹당한 무인MEKA들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 말고 보다 적절한 조치가 있지 않았을까 이 말이야. 그 많은 MEKA들이 파괴되지 않았다면 옴닉의 공격에도 좀 더 잘 대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 오해하진 말고. 물론 가능성의 문제지. 그러니까 함께 따져보자는 거야.”
“…하하.”

거기서 나는 그만 웃고 말았다.

그러니까, 지금, 책임 전가를 하겠다고?

감시체계는 작동하지 않았다. 방화벽은 단숨에 돌파당했다. 결국 부산해상기지를 잃어버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거기서 죽고, 무인MEKA들을 탈취당하고, 종국에는 인구 오백만의 대도시 부산이 무너질 뻔했다. 그런데, 거기서 목숨을 걸고 싸운 우리에게, 그 책임을 돌리겠다고?

“하하, 하.”

누구지? 누가 이런 역겨운 생각을 해낸 거지? 이 김자점이라는 자? 이 자가 속한 파벌? 국방부? 정부? 아니, 상관없었다. 이것들은 모두 한 배에서 나온 개새끼들이었다.[2]

아니, 나는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영웅이 아니었다. 용기 없었고, 도망치려고도 했다. 그러나 송하나는 달랐다. 고작 이런 걸 위해서, 그 녀석은 그렇게 필사적으로 싸운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것이, 참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그게 잘못입니까? 무인MEKA 전기가 해킹당해서 아군을 공격해오는데 단 두 대의 MEKA만으로 맞서 싸운 게? 목숨을 걸고 자폭 시퀀스를 쓰고, 그 뒤에 수많은 옴닉들이 몰려오는데 물러서지 않고, 초 타이탄 급 옴닉과 싸워서 끝내 이긴 게; 정말, 그게 잘못입니까?”
“아니 그걸 또 왜 그렇게 공격적으로 받아들이나. 그냥, 좀 조사를 해보겠다는 거지. 자네들이 잘못한 게 없으면 겁낼 게 뭐 있겠어. 안 그래?”
“애미—!”

쿵쿵쿵.

더는 참지 못하고 패드립을 박으려던 그 순간, 육중한 노크가 방을 울렸다.

소리 난 곳을 돌아본 나는 숨을 삼켰다.

이미 안에 들어와 방을 가득 채운 거대한 고릴라가 굵은 손가락으로 짐짓 문을 두드리며 주의를 모으고 있었다. 그 위협적인 체구를 감싼 우주복 같은 갑옷을, 안경 너머로 빛나는 인간보다도 이지적인 눈동자를 알아볼 수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나는 이미 이런 고릴라를 알고 있었다.
아니, 세상에 이런 고릴라는 단 하나뿐이었다.

“실례합니다. 그 얘기, 조금만 끼어들어도 될까요?”

그 거대한 고릴라의 입에서 나오는 완벽한 한국어가, 질 나쁜 몰래카메라 같았다.

“윈스턴…!?”
“아, 윈스턴 씨.”

놀라서 비명을 삼키는 나와는 달리, 김자점은 놀라지도 않고 웃었다.

“입국했다는 소식은 들었소. 이거 원. 윈스턴 씨까지 이렇게 모이니까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슨 오버워치 부활이라도 한 줄 알겠어.”
“예. 그 오버워치입니다. 우리는 정보자산을 통해 동중국해상의 옴닉의 움직임을 사전에 포착했고, 수차례 주변국 여러분께 도움을 드리려 했지요. 만약 한국정부가 오버워치의 권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면 부산해상기지에서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가장 큰 책임이 있을 그 관계부처가, 용감히 싸운 젊은 영웅들에게 책임을 돌리려고 하는 것 같더군요.”
“이런, 윈스턴 씨. 아시겠지만 오버워치 활동은 국제법상 불법이오. 그 이상 허위사실을 유포한다면 국내법으로 추가 대응하겠소.”

마치 예상이라도 한 듯한 그 여유로운 대응이, 가증스러웠다.

지금 윈스턴은 분명 오버워치가 도우려 했다고 말했다. 만약 오버워치란 게 아직도 있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면, 그러면 부산해상기지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이 자는 오만과 무능으로 경고를 무시하고 비극을 초래한 주제에 이제 와서 책임을 돌릴 희생양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 모든 게, 가증스러워,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윈스턴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어쩔 수 없군요. 그러면, 사람들이 직접 보고 판단하게 합시다.”
“직접 봐? 대체 뭘—,”
“—그 파일럿슈트, 블랙박스 있죠?”

순간 김자점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 남자에게서 처음으로 여유가 사라졌다. 이내야 겨우 억지로 웃어보지만, 허세였다. 그 웃음으로도 당황은 숨길 수 없었다.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이 있었다.

“하! 윈스턴 씨, 지금 설마 협박하는 거요? 그게 공개가 될 것 같아? 최소 2급 비밀이야!”
“아니오, 김자점 씨, 협박이 아니에요. 저는 그냥 알려드리는 겁니다. 이미 공개는 했어요.”

“…뭐?”

그 아무렇지도 않은 선언에, 김자점은 멍하니 되물었다.
윈스턴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테나? TV.”

그 고릴라 과학자가 자신의 인공지능 비서를 부르자, 예고 없이 홀로그램 화면이 켜졌다.

YTN. CNN. BBC. NHK. 그 외 전 세계 수십 개 채널의 화면들이 일순간에 방을 가득 채우며 어지럽게 떠올랐다. 어느 채널이나 속보 헤드라인으로 뒤덮인 그 수많은 화면들은, 그러나 모두 같은 영상을 내보내고 있었다. 화면 안에는 내 얼굴이 있었다.

이건, D.va의 시점에서 본 나였다.

—너, 송하나, 너 왜 이래. 너도 알잖아. 아무리 너라도 다 구할 수는 없는 거, 알잖아!
—아니, 다 구할 수 있어. 우리나라는 내가 지킬 거야.

스피커 너머에서 나와 내가 사랑하는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송하나 너! 너 왜 이래! 너 이게 무슨 게임 같아!?
—응. 내가 프로게이머니까, 이것도 게임이야. 게임 아직 안 끝났어. 이 게임도 이길 거야.

라이브가 아니었다. 이 대화를,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화면 속의 우리, 게임을 못 하는 프로게이머들은 MEKA의 조종석에 앉아 있었다. 카메라 시점이 돌아가면서 울부짖는 나와 몰려오는 옴닉이 차례로 보였다. 수평선을 가득 매운 강철의 군단 앞에서, 송하나가 숨죽여 웃는 것이 들렸다.

—그래. 그러네.
—그럼, 그때 그 사람들처럼, 우리가 용기가 되자.

지금 TV에서 D.va의 게임이 리플레이 되고 있었다.

그때의 우리가 화면 속에서 다시 하나가 되어 싸우고 있었다. 물러서지 않는 MEKA는 제자리에 방열해 충격포를 뽑아들고 있었다. 기지도 전함도 군대도 모두 무너진 폐허에서 단 1대의 MEKA, 단 2명의 소녀와 소년만이 강철의 파도에 맞서고 있었다. 세계 제1위와 2위 프로게이머 합동의 대마술이, 이제 온 세상 앞에서 다시 펼쳐지고 있었다.

이제 김자점은 더 이상 웃지 못했다.

“…이게, 뭐야.”
“아. 다행히 잘 나왔군요.”

비명처럼 되뇌는 김자점 앞에서, 윈스턴은 남의 일처럼 웃으며 TV를 꺼버렸다.

“현장에서 확보한 블랙박스를 송하나 씨의 계정으로 스트리밍 했습니다. 약 오천만 명이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전부요. 이제는 방송사 중계로 전 세계가 함께 보고 있군요.”
“뭐…!?”

그제야 김자점의 얼굴이 가면이 벗겨지듯 일그러졌다.

“자, 김자점 씨, 이성적으로 생각하세요. 이런 영웅들을 징계위원회에 불러내서 죄인처럼 세워둘 건가요? 최소 장관이 갈립니다. 자칫하면 정권이 뒤집혀요. 김자점 씨 자신 있습니까?”
“이…!”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찼던 김자점은, 그러나 다음 순간 고장 난 인형처럼 멈췄다.

상대는 오버워치의 역전의 용사였다. 달려들 수 없었다. 그 자리에 못 박힌 채로 필사적으로 머리를 돌려보는 김자점이지만, 의미없었다. 교활한 인간과 달리 눈앞의 지적인 고릴라는 허언 따위 하지 않았다. 이건, 이미, 이길 수 없는 게임이었다.

그랬다. 이걸 보고 송하나에게 책임 따위 물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이런 걸 보고 나면, 누구라도 그 소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이, 빌어먹을, 원숭이 새끼…!”

결국 김자점은 싸움에 진 개처럼 으르렁거렸다.

“저는 원숭이가 아니라 과학자지만, 그 혐오발언은 넘어가드리겠습니다. 이번 사태는 한 나라나 한 종족만의 일이 아니에요. 우리는 연대해야 합니다.”
“주둥이 다물어! 너! 네가 무슨 짓을 한 줄 알아!? 이건 명백한 법 위반이야!”
“오버워치는 NGO니까요. 아, 거기다가 지금은 심지어 활동 자체가 국제법상 불법이기까지 하군요. 거기에 한국의 국내법 하나 더 어긴다고 해서 별 큰일이야 있겠습니까?”
“큰일!? 이게 큰일이 아니야!? 너 원숭이 새끼 때문에! 제대로 된 훈련도 안 받고 군기가 뭔지도 모르는 열여덟 살짜리 애새끼들한테 국방을 통째로 들어다 바치게 된 거야! 특히 그 계집애! 오락질이나 하는 계집애가 얼굴 좀 반반한 거 믿고 안 그래도 건방지게 굴더니—!”
“아닙니다.”

그 말을 끊고, 나는 입을 열었다.

김자점이 나를 노려봤다. 나보다 훨씬 높은 계급일 그 중년의 남자의 눈을, 나는 피하지 않고 마주봤다. 열여덟 살 어린애의 치기어린 반항심이라고 해도 좋았다.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었다. 힘주어 되풀이했다. “송하나는, 아닙니다.” 하고.

“비록 오락질이지만 그걸로 수백 수천 수억 명 앞에서 싸우는 프로입니다. 그중에도 단 한 번도 패한 적 없는, 역대 최고의 프로게이머입니다. 그 아이는 그 모든 걸 포기하고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입대한 겁니다. 결국 오늘, 그 아이가 목숨을 건 게임에 그 빛나는 재능으로 승리해서 부산을 구해낸 겁니다. 누구도 못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식으로 말씀하십니까?”
“이 새끼가—!”

쿠웅!

폭발해서 내게 달려들던 김자점을, 바닥을 울리는 충격이 가로막았다.

카두세우스 지팡이가 바닥을 내리치고 있었다. 지팡이를 손에 쥔 메르시의 눈이 파랗게 타오르고 있었다. 아직 발키리 슈트를 입고 있던 그녀의 등 뒤에서 금빛 날개가 다시 전투태세로 펼쳐져 있었다.

일찍이 오버워치를 수호하던 그 전장의 천사는 카두세우스 지팡이를 재차 쿠웅! 내리찍었다. 그 일격은, 명백한, 위협의 의미였다.

“자! 신사 여러분! 환자 앞에서 더 할 말이 있다면 이 메르시부터 먼저 상대해주실까요!?”

“내 생각에도, 이제 그만하는 게 좋을 것 같군.”

그런 메르시의 옆을, 어느새 방에 들어온 중갑의 기사가 지키고 서 있었다.

저 전장에서 처음 봤을 때는 착각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투구를 벗고 백발이 성성한 머리를 드러낸 저 노기사는 역시, 오버워치의 라인하르트가 맞았다. 비록 아까 봤던 거대한 망치는 들고 있지 않았지만, 김자점을 물러서게 하는 데는 로켓해머까지도 필요없었다. 오랜 세월에도 빛 바래는 일 따위 없이 여전히 형형한 외눈은 좌중을 압도하고 있었다.

“자, 친구. 언제까지 거기 서 있을 텐가?”

“이…!”

다시 모인 오버워치 앞에서, 김자점은 무력하게 이를 악물었다. 결국 그 손에 들린 출석통지서가 구겨지고 있었다. 그 중년의 남자가 다시 나를 노려봤지만, 겁나지 않았다. 나는 저 눈을 잘 알고 있었다. 저건 패배자의 눈이었다.

“씨발…!”

마지막으로 씹어뱉으며 그 남자가 자리를 박찼다.

쾅!

문이 거칠게 닫히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김자점은 사라졌다.

그제야 병실에 다시 고요가 돌아왔다.

그제야 나는 겨우 참았던 숨을 토해낼 수 있었다. 메르시도 라인하르트도 저마다 어쩔 수 없이 한숨 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윈스턴: 그 옛 오버워치의 과학자는 “관료들이란…,” 하고 쓰게 웃으며, 나머지 오버워치를 향해 돌아섰다.

“그러면 저는 잠시만 자리를 피해야겠습니다. 저 자가 언제 마음이 변해서 헌병대를 출동시킬지 모르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오랜 동맹국의 군인들과 싸우면 안 되겠죠.”
“아…! 저…!”

간신히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다. 어린 시절 TV로 보던 영웅을 이런 식으로 부르는 건 어색했지만, 말하고 싶었다. 나를 돌아본 윈스턴에게, 나는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고개를 숙였다.

“그 사람이 한 말,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서투른 악센트의 영어였다. 윈스턴이 말해줬던 완벽한 한국어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그 지적인 고릴라 과학자는, 다른 종족인 나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환하게 웃어주었다.

“별 말씀을요. 두 분이 용감하게 싸워주신 덕분에 더 큰 비극을 막을 수 있었던 걸요. 저도, 반가웠습니다, 이시백 씨. —오버워치에서 두 분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내게 인사하는 윈스턴을 보고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돌아서 방을 나가는 영웅의 그 커다란 등을 나는 인사도 잊은 채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가 떠난 뒤에도 그의 말이 방 안에 계속 메아리치고 있었다. 분명히 들었다. 오버워치라고 했다.

정말로, 오버워치가 귀환한 것이다.

“이시백 군…?”

메르시가 걱정스럽게 나를 부르고 있었다. 라인하르트가 조심스럽게 내 안색을 살피고 있었다. 오버워치가, 지금 여기, 내 앞에. 웃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아뇨, 괜찮아요, 메르시…, 아니!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앙겔라…, 박사님…?”

실수였다. 오늘 처음 만난 연상의 어른을 무심코 어린 시절 TV 너머로 부르던 버릇대로 불러버린 것이다. 뒤늦게 고쳐 말한 나였지만, 메르시는 화내지 않았다. 어쩔 줄 몰라하는 내게 그 백의의 천사는 부드럽게 웃었다.

“괜찮아요, 메르시로. 온 세상이 그렇게 부르는걸요. 대신 나도 티거라고 불러도 되죠?”

오히려 내 아이디를 불러주는 그 다정한 목소리에 나는 할 말을 잊었다. 나와 눈을 맞춘 그 푸른 눈동자는 화면 너머로 보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역시 이 사람은 어른이었다. 이 사람의 앞에 선 나는 아직도 서툰 남자아이에 지나지 않았다.

“비디오 봤어요. 충분히 용감하던걸요? 자신을 가져도 좋아요, 티거. 당신은 이미 훌륭한 영웅이에요. 그래, 내가 아는 어떤 해결사의 말을 빌리자면—, 새로운 영웅은, 언제나 환영이에요.”
“감사…, 합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그렇게 대답할 수 있었다. 달아오른 얼굴은 거울로 보지 않아도 빨개진 걸 알 수 있었다. 믿을 수 없었다. 이 사람은 어린 시절 동경했던 나의 영웅, 나의 우상이었다. 그런 메르시에게, 칭찬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라인하르트 님도, 아까는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나도 라인하르트로 괜찮네. …아, 그래서 말인데,”

빙그레 웃으며 눈인사한 그 노기사가 문득, 조금 겸연쩍은 얼굴이 되어 다가섰다.

“실례가 안 된다면…, 혹시…, 티거 군 사인을 좀 받을 수 있을지…?”
“제, 사인요…?”
“라인하르트!?”

그 상상도 못한 말에, 나보다도 메르시가 더 소스라쳤다.

“믿을 수가 없어! 라인하르트! 저 바보 같은 공무원으로도 모자라 당신까지 이러긴가요!?”
“아, 아니, 내가 뭘 했다 그러나…, 나는, 그냥, 좀 개인적인 부탁을…,”
“막 총상을 입었다가 겨우 의식을 되찾은 소년한테 말인가요!? 부끄러운 줄 알아요!”


독일어로 속사포처럼 쏘아붙이는 메르시 앞에서 라인하르트는 제대로 말도 못하고 밀려 뒷걸음질 쳤다. 자기보다 한참이나 작고 어린 그 천사같은 사람 앞에서 쩔쩔매는 노기사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귀여워 보였다. 웃음을 참으며, 나는 메르시를 말렸다.

“아뇨, 저는 괜찮은데…, 라인하르트야말로 저 같은 거 사인이 필요하세요…?”
“아아! 물론이지! 자네만 괜찮다면! 디바 양한테도 티거 군한테도 꼭 받고 싶네!”

“디바…?”

라인하르트가 말한 그 이름에 내 심장이 멎었다.

D.va. 송하나. 내가 사랑하는 그 아이.

그랬다. 나에게는 오버워치보다도 중요한 것이 있었다.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본 그 녀석의 머리에는 상처가 나 있었다. 그 갈색 아름다운 머리칼을 붉게 물들이며 흐르던 피를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깨어난 후로 아직까지, 나는 송하나를 만나지 못했다.

“메르시! 저랑 같이 있던 그 여자애는!? 송하나는요!?”

나는 필사적이 되어 메르시에게 매달렸다. 어쩌면 크게 다쳤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빛나는 모습을 다시는 못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상상만으로 이미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 빛 없이는 살 수 없었다.

그런데도 또 다시 “하여튼, 소년들이란…,” 하고 웃으며 귀여운 것을 보듯 나를 보는 메르시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메르시!”
“걱정 말아요, ‘호랑이’ 소년. 당신과 달리 ‘토끼’ 소녀 쪽은 건강하니까. 내가 영웅은 죽지 않는다고 했죠? 윈스턴에게 몰래 블랙박스를 넘겨준 똑똑한 소녀가 누구일 것 같나요?”
“그럼, 송하나는…!?”
“—아아, 악마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메르시가 대답 대신 웃으며 문 쪽을 돌아보았다.
그 푸른 눈을 쫓아가자 정말로 거짓말처럼, 세상 가장 아름다운 악마가 거기 있었다.



[1] 조선시대 고전소설 “박씨전”(작자 미상)의 등장인물 김자점을 참고
[2] 이 작품은 픽션입니다. 등장인물 및 단체, 기관은 실제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덧글

  • 별일없는 얼음집 2018/06/03 16:37 # 답글

    1편부터 다 보고 왔는데 디바 소설 혹시 있나 찾아보기 잘했네요. 너무 재밌어요. 댓글 달려고 회원가입도 했어요.ㅎㅎ
  • kidovelist 2018/06/03 16:47 #

    재밌으셨다니 무엇보다 기쁩니다. 오늘 올릴 마지막 편까지 즐겁게 읽으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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